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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Park Jul 02. 2024

8. 왜냐면 너는 조종사니까

 얼마 전 읽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미국의 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데이비드는 이 책의 저자가 본인의 인생에서 혼돈을 맞보았을때 기대려 한 영웅이었다. 하지만 파고 들 수록 삶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역사를 보았고, 이후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악의 중간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폭넓은 시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니 한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가 생물분류학 역사에서 보여준 선-영웅, 악-빌런의 공존은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점이 아닐까. 나는 내 학생들과 주변 동료 교관들, 혹은 상사들에게 비슷한 시각으로 접근을 해 본 적이 있다. 조종사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MBTI로 말하자면 ‘너 T야?’ 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매뉴얼에 살고 매뉴얼에 죽는 FM 그 자체여야 하니까. 에어스피드 145를 유지해야 하는 조건에서 143을 찍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이 때의 145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선이고 143은 위험이라는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악이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업무 외의 경우에는 모두가 천차만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당연하겠지. 우리는 한 가지만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존재가 아니니까. 물론 비행 조종에 유리한 성격은 존재한다. 여러 학생을 가르쳐 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매사에 침착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은 확실히 비행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후천적으로 배워서 유지할 수 있지만 확실히 그런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항공사 최종면접 중 본인 성격을 물어보는 질문에 괜히 모범답안이 있는게 아니겠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어느 연예인이 우리나라나 해외 대학교의 여러 학과를 돌아다니며 일일체험을 하는 것이 있다. 학생들을 인터뷰할 때 항상 물어보는 것이 “이 과에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 뭐라고 물어보나요?”다. 그때마다 하는 대답이 한결같이 비슷한 것이 참 흥미롭고 재미있다. 내가 비행기를 조종한다고 하면 대부분이 똑같은 것을 물어본다. 공짜로 비행기 한번 태워줄 수 있냐는 것인데, 저기요 저도 이제 막 입사해서 그런거 없구요 몰라요. 한가지 방법이 있다면 저랑 결혼하는겁니다. 그럼 ZED티켓은 이용할 수 있을거에요.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멋쩍게 하하 웃고 만다. 또 다른 반응은 일단 우와 로 시작하여 대단해요 로 끝나는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건대, 나는 대단한 사람이 절대로 아닐뿐더러 세상에는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수십억 명은 더 있다. 조종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충분히 될 수 있는 직업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에 금전적인 여유는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도 추가하고. 아, 중요한 건 이게 모든 조종사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쉽게 될 수 없는 직업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조종사를 대단하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보통의 생활에서는 겪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희귀하니까 대단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작년즈음에 한 대형종합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일이 있었다. 귀 관련해서 간단한 진단서를 요청할 일이 있었는데, 의사분이 나랑 비슷한 나이또래로 보여졌다.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직업상 필요하다고 했더니 무슨 직업인지 물어봤다. 비행교관이라고 했더니 역시나 우와 로 시작해서 본인도 조종사가 되는게 꿈이었다고 대단해요 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의사선생님이 훨씬 멋있고 대단하시다고 말했고 우리는 서로 아니에요 아니에요를 연발하며 멋쩍게 진료실을 나온 기억이 있다. 나는 진심으로 의사선생님이 훨씬 대단하고 정말 멋있고 지구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느껴지는데. 좀비떼가 창궐하면 조종사와 의사중에 조종사를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망상도 가끔 할 정도로 나는 의사분들을 굉장히 존경한다.


이야기가 잠깐 다른 곳으로 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평가할때 외모와 직업을 본다. 그리고 그 직업에 따른 기대치가 존재한다. 조종사의 목적은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가는 것이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업무중이 아닐 때에도 이 기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조종사가 왜이렇게 뭘 놔두고 다녀요? (자동차키를 못찾는 나에게).

조종사가 왜그렇게 허약해요? (하체 PT 빡세게 받은 다음날 부들부들 떨며 계단을 내려가는 나에게).

조종사 맞어? (드라이버샷 미스나서 해저드로 빠진거 보고 좌절하는 나에게). 아니 이건 무슨 상관인데!


물론 이런 말들은 다들 나쁜 의미가 아니라 놀리려는 웃음포인트로 한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직업을 물으면 그냥 교육관련 혹은 운송관련 일을 한다고 말한다. 비행=운송, 교관=교육, 틀린 말은 아니다. 나를 대단하게 봐주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혹시나 나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가질까봐 그렇다. 조종사니까 라는 수식어가 내게 붙어있는 것을 부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겸손으로 흘러넘길 때가 얼른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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