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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Apr 23. 2024

벚꽃 엔딩2

일주일의 시간이 흘렸다

원래대로라면 일본을 여행하고 있어야 할 부부가 그 짧은 시간에 격변하여 서로가 도저히 견디지 못할 존재가 되어 떨어져 지내고 있다.

만기 된 여권을 우편으로 받아보면서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는 걸 실감을 했다.

받아둔 휴가에 외국으로 가지는 않더라도 양평에 있는 친구를 보고 와서 발길 닿는 어디든 여행을 가려하였지만 중도에 돌아왔다.

혼자서 가는 여행이라는 것이 너무 부질없어 보이고 마음이 행복하지 않았다.

길은 너무 밀리고 평일이어도 관광지는 사람이 넘치고 딱히 내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어디 좋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산의 문수사에 잠깐 들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기 집도 전과는 같지 않고 마음 한켠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낮술을 조금 먹고 무언가를 끄적거려야 마음이 가라앉을 듯 해서 브러치를 들어왔다.

지금 다른 생각과 주제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h가 남기고 간 긴 파장은 낮지만 깊게 오래오래 진동을 하고 있었다.

어딜 간다고 도망갈수도 없고 지워버리려 애써봐도 시간이 흘러야할지 싶다.

요 며칠을 퇴근하여 돌아오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집터를 발굴하듯 흔적들을 지니치며 생각이 떠오른다.

어차피 h와 10여 년의 결혼생활은 완성되지 못한 채 미루어두고 있었다.

결혼식을 치르고 주위에 혼인을 만천하에 알리고 하였지만 실제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불신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선택지의 비상구를 막아 놓고 싶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절세의 목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택을 처분할 때까지 그럴 수도 있지 이해를 했지만 좀 더 법적으로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서로를 옭아매고 있었다면 우리의 이별은 많이 늦춰졌을 수도 있을법하지 않았나 싶었다. 

반면에 좀 더 더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인류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갈등과 애증의 표본을 만들어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시비의 문제는 아니지만 결국은 시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해를 하고 역지사지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해도 오해도 나의 가치관과 생각이 넓어지든지 바뀌어야 한다.

시비는 아니지만 정답이 아닌 해답을 구하고 서로 인정을 하는 거는 쉽지 않다.

결정과 판단은 각자가 해야 되는 것이기에 서로의 인생에 맞춰지지 않은 작은 자잘한 것들 하나하나 깊은 통찰과 이해 연민보다는 선택과 자기중심의 시비의 문제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어찌 되었건 완전하게 서로가 올인을 하고 서로의 인생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인생의 여지를 두는 것이 잘된 것 또는 잘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감정이 무딘 듯 하지만 늦게라도 생겨나는 감정들에 한참을 흔들리는 스타일이다.

이별이라는 것이 매우 덤덤하고 비즈니스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후의 일련과정과 일어날 일어난 일들의 처리와 계획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먼저 했던 것 같다.

h가 가정 속에서 부부라는 관계의 위선과 스스로 괴롭고 행복하지 않아 구원을 얻기 위하여 나간 것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속세에서 떠나 해탈과 열반을 위한 출가를 하듯 h가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

신혼 초 같이 내가 무조건 다 맞춰주고 위해주고 무엇이든 어떤 어려움이든 다 감내하여 h의 행복을 위하여 감내하고 희생하겠다는 마음이 이제는 생기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과 희생은 당연하고 아름다운 응대이고 반작용이라는 것을 믿었다.

내가 변하였는지 모르지만 h 또한 변하였고 서로에 대한 맹목적이고 반사적인 행동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가장 본능적인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판단하고 따른다 점에서 나의 판단이나 h의 결정을 존중하고 뒤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살아왔던 부스래기들이 다 치워지지 않았고 앞으로 영원히 말끔하게 치워지지 않으리라는 것 하나의사물과 장소와 특정한 시간에 뿌리내린 감상의 찌그러기들은 죽음이 오는 순간까지 나를 둘러쌓고 맴돌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불현듯 나는 깊은 우울과 무기력으로 빠져 들어간다.

h의 짐은 거의 전부다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

감정적으로 사람과의 단절을 선택하였지만 나 또한 수긍하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매일매일 h의 분신들에 둘러싸여 긴장을 세우고 있다.

예고 없이 조용히 다가오는 암살자들을 나는 잔뜩 경계하고 방어를 하지만 매번 속절없이 난도질당하고 피를 흘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h의 짐이 거짓말처멈 싸악 사라진다면 물건들이 빠지고 난 빈 공간의 결계에 걸려 더 아프고 비참하게 쓰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가 오버랩된다.

그 시절에 부모님들의 트러블이나 몇 달의 어머니가 없던 몇 달간 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고 스스로 어른스럽게 잘 자 낸다고 보여주려 했던 치기와 오만들, 위선들, 어느 수간부터 사라져 가는 동심들. 

그때는 난 조숙하고 이미 세상과 어른들의 부조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으로 견뎌왔다.

그것이 먼 훗날 진짜 어른이 된 후에 내가 결핍되고 채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둔 채로 커버렸다는 것을 알아채고 무척 당황했었다.

지금도 나는 그런 면에서 너무 많이 두렵다.

 혼자 다 알고 의미 없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저 시시한 거라 오만하는 중년 남자는 실제로는 불행하고 어리석은  그 시절 꼬마와 같아서 작지만 진액 같은 코어 같은 인생과 사랑의 작은 무엇인가를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지.

 또 먼 훗날 시간이 지나서 후회와 회한의 글썽임을 하지 않을지...


싸움은 괴롭고

이별은 외롭고

참 여리고 어리석은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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