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장보기] 배추부터 파, 깻잎 등등 마트에 안 오른 것이 없습니다
딱히 의도치 않아도 세월은 가고 온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명절은 돌아 오고 있다. 며칠 후면 한국의 고유 명절 추석이다.
주부들에게는 명절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모이면 음식 준비를 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즐겁기도 하지만, 요즘은 물가가 너무 비싸 걱정스럽다.
미국부터 해서 딸들 가족이 멀리 살고 있어, 평소 그립고 보고 싶던 가족들이 모일 생각에 마음은 벌써부터 설렌다. 하지만 가족들이 만나면 먹어야 하는 음식 신경부터 쓰이는 게 보통 주부들 마음이다.
밥상 반찬의 기본이 되는 김치 종류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추석이 오면 김치 종류를 담가 놓아야만 명절을 제대로 맞는 것 같다.
이제 노부부만 살게 된 우리 집 밥상은, 실은 김치가 없어도 별반 불편하지 않다. 가끔은 옛 어른들이 하신 말씀들이 생각나고는 한다.
"늙으면 밥상 김치도 반갑지가 않고, 남의 살인 생선이나 고기가 자꾸 입맛 당기지" 하시던 말들. 젊었을 땐 몰랐는데 내가 나이 든 노인이 되고 나서야 그 말에 실감이 간다. 전과 달리 이제는 밥상에 김치가 없어도 그다지 아쉬움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사람의 입맛이란 것이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나는 무용 축제 행사에 참여하는 관계로 이것 저것 연습을 하느라 하루 온종일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추석 때 딸들 가족들이 오면 함께 먹어야 할 김치를 담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추석엔 김치라도 담가야 하는데
며칠 전 하루 쉬는 날, 시장을 나갔다. 단골 야채 파는 가계에 갔더니 그날 배추는 떨어져서 없고 내일 아침에 새로 가져와야 한다는 대답이다. 그러면서 주인 말하길 " 배추 한 포기에 만 원인 것 알지요? 내일은 더 비쌀지도 몰라요" 한다.
파도 한 눈에 봐도 500그램이나 될까 말까 하는데, 그게 2만 원이라고 하니 헉 소리가 나온다. 깻잎도 6~7장 묶은 것이 천 원이란다. "내일이면 깻잎도 천 오백 원 될 거라고 하네요"라면서, 나처럼 배추를 사러 왔다는 다른 할머니들도 가게 앞에서 가격 때문에 어찌해야 하나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나 역시 쉽사리 '내일 사러 오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배추를 사려고 호기롭게 끌고 갔던 손잡이 커다란 쇼핑 가방을 텅텅 빈 채로 끌고 집으로 다시 향하는데, 어느 가게 수조 속에 살아있는 게가 보인다. 값을 물어보니 게 1kg 두 마리에 22000원이라고 한다. 그만하면 괜찮은 가격인 듯 싶어서, 나는 얼른 게를 2kg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냉동실에 게를 넣어 놓고 나서는 다른 동네 식자재 마트로 향했다. 그날은 꼭 김치를 담가야 할 것 같았다.
명색이 가을로 치는 9월이 왔는데도, 여전히 한낮이면 아직 폭염으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덥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추석에 먹어야 하는 것은 먹어야 하고, 먹거리 준비는 준비대로 해야 하는데.
그래도 '때를 잘 맞춰서 준비하자'는 생각으로 조금 가격이 싼 마트에 갔다. 마트에도 물건은 많았는데, 이리저리 보니 가격이 비싸지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야채가 얼마 전보다 많이 비싸다. 배추를 보니 겉 잎들은 여기저기 상해 있고, 누런 잎들도 많아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
밥상 물가가 비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언제 이렇게 비싸진 걸까. 마트 점장인 듯한 한 분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죄송한데, 배추가 많이 상해 있네요. 혹시 좋은 건 없나요?"
"아, 날이 많이 더워서 배추도 상했네요. 저 쪽으로 한번 가 보세요."
칸막이가 되어 있는 곳은 신선 식품 보관하는 곳인가 보다. 가보니 배추 겉잎도 싱싱하고 아까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가격은 세일을 하고 있어서 '배추 한 망 세 포기'에 18900원, 가격만 보고 언뜻 싼 것 같은 느낌이라 얼른 담았다. 무는 그래도 살 만한 가격, 1900원이다. 쪽파? 쪽파는 너무 비싸 도저히 살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패스했다. (관련 기사: 쪽파 한 단이 2만 원대? 파김치는 포기했습니다 https://omn.kr/2a5go ).
가격이 괜찮은 대파 한 단을 바구니에 담았다. 우선 필요한 김치 담글 준비만 해서 배달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는데, 마트에서 배달이 왔다. 배추를 절여야 하기에 급하게 배추 겉 잎을 떼어내고 칼집을 넣어 두 쪽을 내니, 속이 성하지가 않은 모습이다.
배추가 너무 속이 차지 않고 겉 잎만 무성한 상태였다. 여름 배추라서 아직은 속이 안 찼나, 생각했지만 배추를 잘못 샀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배추가 비싸고 아까워 겉 잎을 모아 모두 삶았다. 삶은 겉 잎은 깨끗이 씻어 쫑쫑 썰어 된장과 멸치 가루와 들깨 가루를 넣어 주물럭 주물럭 해서 지퍼백에 소분해 담아 냉동고에 넣었다.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입맛 없을 때나 국거리 없을 때 꺼내어 시래깃국을 끓여 먹기가 좋다. 보통의 고깃국보다도 구수하고 맛있다. 어렸을 적 엄마가 끓여 주던 된장 시래깃국 맛이 나고는 한다.
힘은 들지만, 가족들 먹을 생각에
배추가 비싼 만큼 이번엔 정성을 다해 김치를 담그려 그 비싼 배와 사과도 양파랑 믹서에 갈아서 넣었다. 사온 무로 깍두기를 해 소금에 절여 놓고, 배추는 포기가 그다지 크지 않아 숨이 빨리 죽길래 씻어 놓았다. 음식은 정성을 다 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 김치, 깍두기만 담가 놓아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추석 김치 담기
김치는 담그고 만드는 데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일단 해두면 다른 사람들이 잘 먹는 모습에 기분이 좋다. 추석이 오면 지금 이 김치들이 상 위에 올라 가족들을 맞이해줄 것이다. 자녀들이 건강히 모이는, 이렇게 평범한 날들이 주는 기쁨에 만족한다. 앞으로도 작은 기쁨들을 잘 모으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김치를 만들어 나누고 싶다. 돌아오는 명절에 가족들이 탈 없는 모습으로 함께 모일 수 있다는,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