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생일에 초대되어 가족들 만남
작은집 동서 생일에 초대받고 병원 예약도 할 겸 서울에 올라갔다. 둘째 딸이 용산으로 이사를 온 후로 서울 가는 일이 여행 가는 것처럼 설렌다. 멀리 이동할 때는 버스보다는 기차를 타는 것이 훨씬 운치 있고 여유롭다. 아직 남겨진 가을은 겨울의 문을 닫고 있다. 늦가을, 남편과 함께 용산행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간다.
기차를 타면 창 쪽을 선호한다. 왜냐 하면 창밖 경치를 바라보며 사색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 들녘은 가을 추수가 끝나 빈들이다. 빈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수많은 세월을 우리의 생명인 먹거리를 내어 주는 논과 들은 자기 할 일을 마치고 겨울 동안 휴지기에 들어갈 것이다. 쉰다는 것, 우리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필요한 시간이다. 너무 바쁘고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여유로움을 잊고 삶의 방향을 잃을 수 있다.
물이 높은 데서 흐르듯 시간도 그렇게 흐르고 세월도 흐른다. 그 흐름 속에 자연은 소리 없이 날마다 새롭게 변하고 우리의 삶도 변하고 있다. 수 없이 많은 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채워 주고 비워내고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고 어느 날 우리의 삶도 소멸되고 사라 질 것이다.
용산이란 낯설기만 했던 곳이지만 딸이 이사 온 후 올라다니다 보니 어느 사이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이면 화려한 네온사인도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걸음도 모두가 낯설고 왠지 마음이 초조해진다. 어둠이 찾아드는 시간 용산 역에 도착하니 둘째 사위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들면 낯설고 밤이 오는 시간이면 알 수 없는 불안이 감싼다. 그래서 나이 들면 익숙한 고향이 좋은 가 보다.
우리 집 딸넷 가운데 막내 사위는 세프다, 금호동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은 인터넷 예약만 받고 저녁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몇 년 운영하다 보니 꽤 이름이 알려져 단골들이 찾아와 조용히 맛있는 음식과 선호하는 와인 한잔을 마시며 정을 나누는 아지트 같은 곳이다. 우리 가족들도 연말이면 한 번씩 모인다.
삶의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으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거라 응원을 보낸다.
작은 집 시동생은 일부러 우리 막내 사위 식당에 예약을 해서 동서 생일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우리 부부도 생일에 초대에 참석하기 위해 세쨋딸과 사위가 분당에서 달려와 우리를 케어해서 만남의 장소를 찾아간다. 지금처럼 바쁘고 서로 만나기 힘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동생의 철학을 가족이란 만나고 살아야 한다. 가족도 만남이 없으면 남 보다도 못하다는 원칙을 가지고 산다. 감사한 일이다.
멀리 곳곳에 살고 있는 작은 집 가족들이 16명과 우리 부부 세쨋 딸 부부 막내딸 부부 작은 식당 안이 꽉 찬다. 언제나 만나면 반가운 가족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덕담을 하고 이만 하면 삶이 넉넉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부부와 시동생 부부는 작은 집 둘째 아들의 안내로 다음 날 여행을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세쨋 딸과 함께 용산 둘째네 집으로 와서 용산 가족 공원 산책을 했다. 입동이 지났지만 전형 적인 가을날이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드문 드문 산책들을 하고 소풍 나와 즐기는 가족들도 눈에 띈다. 가을은 무엇이던 내어 주는 결실들이 풍성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 나무에 매달린 아기 사과와 모과도 사랑스럽다.
용산 가족 공원의 가을 풍경들
가을도 늦은 가을 입동이 지난날이지만 지금도 장미가 피어 있고 계절을 잊은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가을이 물든 잔디를 바라 보아도 마음이 편안하다. 만나야 할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시간들, 나는 내 삶의 소소한 기쁨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