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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un 19. 2021

4. 누구나 대체될 수 없는 노동자이고 싶다

나의 직업은 내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이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의 소망이겠지만 그냥 꿈이다. 시간과 형태의 문제이지 이 세상에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체될 수 없는 직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나의 직업은 내가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이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를 깨닫게 되어 참 다행이다.

    우리가 흡족할 정도로 노동자의 권익이 보호되는 사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의 권리를 강하게 보호하기로 알려진 스웨덴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시간과 절차가 얼마나 걸리고 이를 합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감시체제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주는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IT 거품이 터지면서 에릭슨 등 대기업에서 정리해고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크고 작은 기업들은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하고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2008년 이후에는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로 인해 회사 상황이 어려워진 기업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덩달아 여러 가지 이유로 소소하게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직원들을 내보낸다. 이런 역사적인 큰 사건이 없을 때에도 기업들은 꾸준히 각종 혁신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직원들을 해고해왔다.

    스웨덴 노동법에 따르면 "사실 근거"가 없이 "개인적인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회사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거나 자동화, 조직변경으로 인해 특정 부서나 직무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면 기업은 구조조정 절차를 통해 보상금을 주고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다만 노동법에서 정한 고용인은 직원의 노동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서 바로 해고하는 대신 다른 부서 재배치 (이 과정에서 좀 더 쉬운 업무를 주고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합법적이다)를 우선 권해야 한다.

    해고 대상자를 선정할 때 직원의 근무한 시간 (근무 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일수록 해고하기가 쉽다), 건강 상태 (오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좀 더 강한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육아 휴직 (육아 휴직 중인 사람을 근거 없이 해고하면 챠별방지법에 따라 기업은 고소당할 수 있고 직원이 승소하면 기업은 상당한 금액의 피해 보상금과 이미 일어난 피해와 예방 차원에 가중된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결국 시간을 들여 이 모든 절차를 거치고 나면 해고를 할 수 있다.

    몇 년간 공부를 하고 자격시험을 합격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규칙을 적용해 전산화할 수 있는 업무는 안타깝게도 언젠가는 자동화가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어 왔었다. 예를 들어, 예전에 특정 업무를 하는데 100명이 필요했다면 자동화 이후 20명만 필요하다. 그러면 나머지 80명은 같은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대표적으로 회계팀, 프로세스 팀 등이 그렇다. 실제로 일반 회계 처리는 결산시스템 도입으로 자동화되었다. 그래서 힘들게 공부해서 자격증까지 딴 회계사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몇 명 안 되는 회계사 출신 전문가가 담당하는 업무는 회계 처리가 아니라 손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회계 지식이 아닌 정성 평가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아주 특수한 사례이다.

노동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를 목격하다

    19세기 20세기 소설 및 문학 비평서를 읽으면서 "인간 소외" 등의 표현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소설과 비평서를 읽으면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던 이 표현. 멋지게 들리나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실체를 알 수 없던 이 표현. 내가 읽었던 러시아 및 서구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난에 찌들어 있고 소외된 사람들이거나, 이런 사회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었다. 시. 공간적으로 너무 동떨어져 있는 소설 속 이야기어서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뛰어난 교수님 역시 인간 소외와 거리가 먼 삶을 사셨기에 그럴 듯한 설명을 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차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IMF의 관리를 받기 시작하던 1997년 말에 공채시험을 보고 한 공기업에 취직했다. 당시 사회에 첫 발을 들인 내 눈에는 여러 가지가 이상해 보였다. 그중 하나는 사무실에 용모가 단정한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이 여자였다. 회사 매니저들은 자기가 직접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일들 (커피 타기, 부서 간식 사기)등의 일을 그들에게 시켰다는 점이다. 나와 선배들, 팀장, 임원 모두 우리는 매일 보고서 작성과 분석 업무는 물론 전시회, 상담회 준비에 늘 일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저녁 9시 10시까지 퇴근도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그 여직원들에게는 절대로 우리가 하던 일을 나눠주지 않았다. 그들은 5시 45분 정도만 되면 가방을 정리하며 퇴근 준비에 들어갔고 6시면 칼퇴근이었고 상사들은 그들을 붙잡지도 못했다. 과연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년쯤 지나서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나보다 6살쯤 많았던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XX 씨, 우리 호칭이 좀 애매하죠. 나를 그냥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예전에는 우리가 사무실에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갔어요. 우리도 오피스 레이디라고 불리며 대접받으면서 일했어. 보고서 타자 작업을 우리가 다 해줬으니까 우리가 없으면 보고를 할 수가 없었지. 그런데 요즘은 부장도, 대리도 다들 컴퓨터로 직접 작성하니까... 그리고 자기랑 달리 우리는 초과 근무 수당도 안 나와요. 그래서 6시면 칼퇴근하는 거고......"

   "언니, 우리가 무슨 우주선을 개발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가 직무 교육만 시켜주면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내 말에 그 언니는 " XX 씨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고맙네. 그런데 회사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라고 했다.

    1990년대 중반 개인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많은 이들이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고 한때 없으면 안 될 일을 하던 그들은 그렇게 노동에서 소외되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소외 

   2000년대 IT 거품이 터지면서 많은 기업, 특히 IT기업은 대량 해고를 추진했다. 그때 해고를 당한 엔지니어, 고급인력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다른 기업으로 재취업을 하거나, 직업 교육을 통해 직종을 바꿔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개인 사업을 시작하거나 1인 회사 형태로 여러 기업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 스웨덴에는 컨설턴트가 많은데 이는 매킨지나 보스턴 컨설팅 그룹 같은 경영 컨설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을 하면 부담해야 할 여러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정규직원이 육아 휴가, 병가, 휴직을 했을 경우, 혹은 마감 기한이 정해진 프로젝트에 인력이 필요할 때 한시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계약직 인력이다.

    그 후 디지털화, 중앙화, 노동비가 낮은 국가로 기능 이전 등 방법으로 기업은 비용 감축을 하면서 직원들을 계속해서 해고한다. 기업은 이런 직원들을 재교육을 통해 이전 업무와 가치가 비슷한 새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에서 혁신이라고 하면서 실제 업무나 프로세스 혁신이 아닌 단순히 저인건비 국가로 기능을 이전하면서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은 회사들은 또 해고를 감행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로 경영상황이 악화된 산업군에 속한 회사들은 노동시간 감축을 통해 급여를 줄이거나 해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기가 쉽다. 엉뚱한 이유를 마치 "사실 근거"인양 포장해서 사람을 해고하는 기업도 꽤 있다고 한다. 개인의 업무량을 줄이거나 더 어려운 일을 안 줘서, 즉 노동에서 점차 소외시켜서 스스로 퇴사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회사는 나가줬으면 하는 직원을 정하면 티타임에 초대를 안 하거나 회의하는데 부르지 않는 등 정말 유치한 방식으로 분위기를 안 좋게 만들어 직원이 스스로 나가게 하는 방법도 많다고 한다. 구조조정의 경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법에서 규정하는 절차를 모두 시행해야 하고 보상금도 줘야 하지만, 직원이 스스로 퇴사할 경우 보상금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직. 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니 그 어떤 국가도, 기업도 한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경제적 이익이 각종 의사 결정의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것도, 안타깝게도 실용주의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인간성에 대한 호소보다는 숫자의 논리가 더 강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것을 계속 보다보니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계속해서 이익을 내야 하고 기업은 가치를 올려야 하는 걸까? 어짜피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익을 공정하게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사회 공공의 선을 위해 분배되는 것도 아니다. 세금을 통해 정부에 이 부가 들어가서 정부에 의해 여러 형태로 분배되지만 사실 모든 기업은 세금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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