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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송 Aug 28. 2021

관계의 유통기한

#Episode 1



내가 스무 살 때, 그러니까 14년 전에. 

일터와 배움터 양쪽에서 '신입' 명찰을 달았던 시절,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6살 많은 남자 사람이었는데 온몸에 에너지를 몰고 다녀서 대부분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좋아하고,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었을 거다. 나는 Y와 성씨의 초성이 같고,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란히 학번을 같이 했다. 자동 배치되는 전공수업을 같이 들었고, 집 가는 방향이 같았고 , 둘 다 똑같이 노래를 못하는 주제에 같이 교내 축제에 가요제까지 나갔었다. 



그런데도 내가 두 학기를 채우고 급히 휴학을 해야 했을 때, Y한테 따로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여러 수업을 같이 들었고, 어쩌다 우르르 떼 지어 밥을 먹을 때 같이 먹었으며, 나보고 커피 좀 사라고 외치던. 하지만 나는 절대 사지 않았던. 그런 대상이었으니까.



꾸준히 연락한 것도 아니면서. 

뻔뻔하게 나는 Y한테 내 결혼식의 사회를 부탁했다.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뛰어넘어서. 그는 내 결혼식의 하루 전날, 내 결혼식 장소에 가 있었다. 토요일 예식에 차가 막힐까, 늦을 까 싶어 그랬다고 나중에 들었다. 크게 고마웠는데 표현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다 했다. 




그리고 아빠가 갑작스레 떠나신 날. 

나는 다시 Y에게 연락했다.



당연스레 알려야 할 상대 같아서 부고를 전했고, 그는 동기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무리 지어 빈소로 찾아왔다. 와서는 부산 사투리로 '아이고'와 '어쩌지'를 반복했다.



이듬해 봄, 같이 관악산에 올랐다.

의도치 않았던 이야기들을 술술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우리에겐 '우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시렸던 겨울에 그 친구가 주는 말을 귀에 담았다. 미련한 선택은 뒤로 미뤄도 늦지 않은 거라며 자신의 치부를 일부로 꺼내 다시 고민하도록 자리를 만들어준 것도 그였다.



애써 공들인 적은 없어도. 아꼈었다. 적정한 거리를 두면서, 적당히 챙겨가면서 삶의 소소한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얼추 잘 엮여있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끝이 났다. 끝난 이유를 향해 물음표를 계속해서 던져봐도 이유가 되지 않는 이유였다.





그냥, 관계의 유통기한이 

다 됐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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