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지가 좋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는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기 전날이기 때문이다. 밤을 좋아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나는 해가 좋고 낮이 좋고 아침이 좋고 따뜻함이 좋다. 이제 해는 길어지고 어둠은 더디게 올 것이다. 동지는 사실상 새해 시작의 순간이다.
처음에는 내가 눈치챌 수없을 만큼 서서히 밤이 짧아지겠지만 어느 순간 입춘이 오고 봄이 완연해질 것이다. 이제 알고 있다. 밤은 아무리 깊어봐야 아침은 오고 말 것임을. 오늘이 동지다. 지금 다섯 시 반이 다 되었는데, 아직 덜 어둡다. 맞다. 내일이 첫날이다.
그동안 7명이 함께 하는 공저과정에 참가했고 며칠 전에 드디어 책이 나왔다.
세상에 책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여럿이서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새롭게 배웠다. 책이 나왔지만 기쁨은 없고 지쳤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1인 사업장에서 혼자 일해 온 나의 문제인 줄 알았다. 아이가 “조별과제를 안 해봐서 그래”라고 말하길래 아, 정말 그런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다 지나고 나서 보니 세상에서 말하는 조별과제는 결국 사람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고, 조별과제에 능숙한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잡음을 내지 않으며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오로지 기한 내에 과제를 내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협업에 적당한 사람이 아닌 건 맞지만, 부당하고 이중적인 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시끄럽고 더디고 그래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위선적인 것에 침묵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 글을 쓴다는 것이 혹은 책을 낸다는 것이 어떠한 인간적 성숙을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역시 배웠다.
공저는 나왔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집약적으로 배운 것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날 것 같지 않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라 애써 잊어버리고 싶어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 가운데 “안 가본 길로 가보자”는 구절이 있었다. 책을 낸다는 것은 참으로 내겐 안 가본 길로 가는 일이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같은 것이었다. 예전의 내가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 가본 길로 가는 그 끝은 역시 혼돈과 불편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던 것만 하고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안 가본 길을 향한 걸음을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물론 나는 힘듦을 감수하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을 찾아갈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동짓날 밤이 되었다. 이제 곧 아침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