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전혀 새로운 단어는 아니다.
보통 세로형의 짧은 영상을 말하는 숏폼의 대표주자는 TikTok이다. 이후 유튜브의 쇼츠(Shorts),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 등으로 확장되었다. 숏폼의 지표를 보면 더욱 놀랍다. 유튜브의 1일 쇼츠 조회수는 700억 회 이상, 쇼츠만 보는 사용자도 전체의 16% 수준이라고 하니 숏폼의 인기가 대단하다.
초기 숏폼은 롱폼을 유도하는 미끼 콘텐츠에 가까웠다. 롱폼의 일부를 자르거나 편집해서 극적인 후킹 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각종 밈, 유머부터 댄스챌린지까지 다양한 숏폼 콘텐츠로 확장되며 숏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이자 트렌드가 되어갔다.
그런 숏폼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 같다. 크게는 두 가지 변화가 있다. 하나는 숏폼의 기업화, 나머지 하나는 숏폼 드라마의 등장이다.
- 개인 중심으로 생산되던 숏폼은 최근 눈에 띄게 규모화되었다. 사실 이건 숏폼뿐만 아니라 유튜브 중심의 영상 생태계에서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에서도 '개인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온라인 영상 시장은 현재 유튜브 전문 제작사부터 기성 방송사, 대기업까지 참여한 양상이다. 기업화가 되었다고 해서 개인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장 파이가 커지면서 개인과 기업이 함께 공존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 숏폼 콘텐츠가 기업화된 것은 숏폼의 퀄리티와 장르적 커버리지가 상당히 다양해졌음을 의미한다. 개인은 제작할 수 없는 영역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건데 문제가 한 가지 있다. 현재 디지털 영상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유튜브 주도의 생태계에서는 규모 있는 매출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튜브 채널의 수익은 무료로 영상을 제공하고 조회수 광고료 또는 브랜디드 콘텐츠, PPL 등을 통해 monetization한다. 이런 형태의 수익구조는 이익의 질이 높다고 보기 어렵고 기업이 뛰어들기에 볼륨이 작다.
- 이 field는 개인 채널을 운영하거나, 소규모 콘텐츠 제작사가 진입하기에는 효율적인 시장이다. 하지만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던 큰 규모의 테크기업이나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의미 있는 수입을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브랜디드나 PPL 등은 영속성이 없는 일회성 매출이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의 리소스 투입도 늘어난다. 그래서 숏폼 업체들은 마케팅, 커머스 등 매출 영역을 다각화하여 이를 돌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 하지만 OTT나 웹툰 플랫폼과 같이 숏폼 콘텐츠 만으로 플랫폼을 만들고 수익화에 성공한 사례가 나타났다. 이는 과거에도 Quibi 등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는데, 중국 업체들이 그걸 해냈다. 숏드라마다.
*Quibi Case study
- Quibi는 2019년 설립되어 디즈니, 골드만삭스, 소니, 타임워너 등으로부터 17.5억달러의 투자를 받으며 엄청나게 많은 주목을 받았던 미국 숏폼 스타트업.
- Quibi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약 10분 정도로, 광고포함 월 $5, 광고 제외 $8라는 OTT보다 저렴한 구독료를 내세웠음
- Quibi는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음
-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콘텐츠 타깃설정의 오류. Quibi는 좋은 제작진, 배우들로 OTT와 같은 Major platform과 유사한 형태의 highbrow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였음
- 하지만 기존 경쟁구도에 Quibi의 자리가 없었으며, OTT보다는 밀도가 떨어지고 유튜브 보다는 비싸고 접근하기 어려운 애매한 포지셔닝이 되어버림
- 좀 더 니치 한 마켓을 공략하지 못했고 오히려 시장을 너무 크게 판단하고 접근했음. 너무 큰 펀딩이 독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음
- 반면 최근 주목받는 숏폼 드라마 서비스는 자극적이고 매니아틱한 스토리들을 풀어내며 수익화에 성공했고, 이 부분은 ReelShort 경영진에서도 언급하였음
- 중국의 릴쇼츠(Reelshort), 드라마박스(Dramabox) 등은 1,2위를 다투는 대표적인 숏폼 드라마 플랫폼이다. 중국 업체들은 양이나 시장규모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여 숏드라마 시장을 개척해가고 있다. 중국의 숏드라마 시장규모는 7조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 중국의 숏폼 드라마 콘텐츠는 ①Tencent, iQiyi, Youku, Manggo TV 등 4대 메이저 동영상 플랫폼에서 서비스하는 10분 안팎의 드라마, ②틱톡 등 숏폼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드라마 ③Reelshort 등과 같은 숏폼 드라마 전용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드라마로 나뉘는데, 최근에는 숏드라마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 숏드라마는 1~2분짜리 영상 100편이 한 시리즈다. 보통 10편 정도를 무료로 볼 수 있고 이후에는 별도 과금이 붙는다. 웹툰 결제방식과 동일하다.
- 대표적인 업체인 릴쇼츠는 COL Digital Publishing(中文在线)이 운영하는데, 웹소설 IP를 기반으로 인터랙티브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다. 결국 갖고 있는 오리지널 IP를 여러 2차 판권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는 셈이다.
- 릴쇼츠는 '22년 3분기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에 진출해 '23년 글로벌 다운로드 2,400만 건(700만 건이 미국, 이후 인도>필리핀 순. ex China), 11월 앱스토어 엔터부문 다운로드 1위를 찍고 '24년 1분기 한화 약 7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 서비스 75%가 여성으로,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OTT가 편안한 환경에서 시청하는 콘텐츠라면 Reelshort는 버스정류장, 화장실 등 잠깐동안 머물고 제한적인 공간에서 시청하는 영상이라고 회사는 말한다. 숏폼 특성을 통해 완전한 니치마켓을 공략한 것이다.
- '24년 1분기 기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는 66개의 숏드라마 앱이 등록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24년 7월 스푼의 비글루가 런칭되었다.
- 숏드라마는 다른 콘텐츠와 확실히 다른 문법을 갖고 있다. 기존 드라마와 영화가 스토리의 서사와 캐릭터를 함께 강조했다면 숏드라마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깊은 서사나 캐릭터 설명은 중요하지 않다. 극적인 사건이 이어지고 빠른 전개와 컷전환, 몰입감 있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 하지만 숏드라마 플랫폼을 향한 우려도 있다. 첫 번째는 수익성에 대한 의문인데 콘텐츠 서비스 특성상 막대한 마케팅비 투입이 불가피한데 제대로 된 수익이 나느냐 하는 것, 두 번째는 장르의 확장성이 제한적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숏드라마는 대부분 복수, 재벌, 치정, 불륜, 로맨스와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결국 이 두 가지는 숏드라마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 숏폼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콘텐츠 트렌드와 제작비의 영향도 있다.
- 영상이라고 영상끼리만 경쟁하는 게 아니라 웹소설, 웹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TV, 유튜브, 숏폼 등 온갖 콘텐츠들이 고객을 24시간을 두고 싸워야 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어떤 콘텐츠가 트렌드를 이루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는 확실히 숏폼(릴스, 쇼츠, 숏드라마 등)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 또한 웹툰, 웹소설은 원천 IP로써 여전히 주목받고 있지만 글로벌 침투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지 않고, 성장이 정체되거나 역성장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높아진 퀄리티와 이에 따른 제작비 등의 이유로 공격적인 투자가 어렵고 수익성도 위협을 받는다. 실제로 많은 웹툰 업체들이 제대로 된 이익을 내지 못한다. AI 등을 활용해 웹툰을 만들겠다는 업체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영상화, 게임, 상품판매 등 2차 창작을 통해 판권 가치를 높이고 수익을 다각화하는 게 중요해진 시점이다.
-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낮게는 10억원에서 높게는 40억에 이른다. 영화도 50~100억이 보통이고 규모를 조금만 키우면 150억원을 훌쩍 넘는다. 분당 제작비가 드라마는 1천만원~3천만원, 영화는 8천만원에서 3억원 수준이다.
- 반면 숏드라마의 경우 100화를 제작하는데 중국은 평균 2천만원~1억, 국내는 5천만원~1억5천, 미국은 2~4억원 수준이다. 기존 콘텐츠와 비교하면 제작비가 월등히 낮지만 과금 체계를 보면 편당 400~800원 수준으로 매우 높다. 그럼에도 결제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콘텐츠 시장에서 숏폼의 상대적 매력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하지만 숏드라마는 양적인 측면에서 공격적인 제작이 필요하다. Cost는 낮지만 Quantity가 많으니 결국 제작비 부담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릴쇼츠가 '24년 글로벌 타깃으로 제작하겠다고 밝힌 콘텐츠 양이 최소 100편이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될 것이다.
- 문제는 인건비가 핵심인 영상제작 특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비용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
- 개인적으로는 숏폼 애니메이션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아직 이쪽을 제대로 공략하는 곳이 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분명 산업이 커지면 버티컬이 생겨나면서 이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들도 나타날 건데, 숏 애니메이션은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웹툰 호흡이 한 편을 읽는데 몇 분정도이니 이걸 영상화하여 제공하는 방식이 될 거다. 표준이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길이가 보통 20분 정도인데 분량 대비 호흡이 길고 내용의 밀도가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흥행작일수록 연재 자체를 길게 하려는 의지가 반영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숏애니메이션은 이보다 훨씬 짧은 1~2분 길이의 영상에 높은 밀도로 제공해 볼 수 있다.
-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장르의 다양화다. 숏폼 드라마로 제작하기 어려운 로맨스 판타지, 액션, SF, 재난 등 다양한 장르물을 제작할 수 있어 보다 많은 사용자를 유입해 볼 수 있다.
-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아버스(Storiaverse, https://www.storiaverse.com/)는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전달하는 서비스다. 올해 생긴 신생기업으로 숏폼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지향한다. 회사는 읽고-보는(Read-Watch) 컨셉을 도입하여 스토리를 읽거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삽입된 애니메이션을 통해 시각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삽화 정도의 수준이고, 주로 독립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작업한다.
- 숏폼은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드라마 제작사, 웹툰, 웹소설 등 영역의 IP홀더와 플랫폼들이 과거 많은 주목을 받으며 의미 있는 성과와 문화적인 트렌드를 만들고, 또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숏폼도 비슷한 흐름을 보일 수 있으며, 그 잠재력은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분명한 한계점도 있다. 콘텐츠 산업 특유의 불확실성과 제작비에 대한 부담, 장르적 한계 등이 있을 수 있다. 콘텐츠 사업은 성공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워 다양하고 많은 시도를 꾸준히 하는 게 필수적인데, 결국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게 숏폼을 포함한 콘텐츠 사업에 큰 숙제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