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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24. 2019

퇴사 후 유럽 - 오스트리아 빈에서

2018.05.19

여행을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첫 여행지였던 스페인의 기억이 꿈처럼 아득하다. 내가 정말 스페인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여행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만 느껴져서 좋으면서도 내심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는데 결국 이렇게 끝은 다가온다.


현실에서 도망치듯 유럽에 오기 전에, 나를 괴롭게 했던 그 모든 것은 한국에 두고 혈혈단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고 싶었다. 실제로 그랬고 홀가분한 기분에 가슴 언저리에 묵직하게 나를 누르던 답답함이 풀리면서 비로소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랬던 시간들도 끝은 있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빈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앞으로 내게 다가올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4시간을 달려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것을 할 수 있을지, 만약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쉬지 않고 떠오르는 질문과 예상되는 여러 상황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다니며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조금은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환경이 바뀌어도 타고난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그 '도전'이 어렵고 힘든 나이가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왔던 경력과 익숙한 업무를 버리고 전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의미는 30대에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사회적인 나이와 지위를 버리고 초심에서부터, 신입직원처럼 일을 배울 수 있냐는 질문에 뭔가 울컥 감정이 쏟아졌다. 자존감은 없어도 '자존심'으로 버티는 꼰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또한 새로운 분야에서 자리 잡고 안정된 수입을 얻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주위의 시선과 평가에 자유로울 자신이 없었다. 


사직서를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난 이 일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페이지를 새롭게 쓰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다 못해 손에 잡힌 듯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난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가 싫었던 것이다. 그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만약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 말고 무엇을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정말이지 아무런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즉각 '혼자 일하고 싶다'는 답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나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부정적인 모습들이 먼저 보인다. 더 이상 그런 것들 때문에 내 삶을 침해받고 싶지 않았다. 각자의 맡은 업무만 하고, 그 이상의 인간관계는 요구하지 않은 곳이라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지.


돌고 돌아서, 나는 '관계'가 참 힘든 사람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혼자가 좋고, 혼자가 주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돼버린 것일까. 나는 혼자 있는 외로움보다 사람이 주는 공포가 크다. 그렇게 심하게 상처 받았던 경험도 없는데 참 유별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긴긴 여행을 나름대로 잘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전공과 직업에는 내 성향이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내가 가진 강점과 적성으로 발휘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급함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지라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모든 걱정과 불안은 한국에 가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는 주문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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