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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한울 Jul 25. 2019

퇴사 후 유럽 - 오스트리아 빈에서 (2)

2018.05.20

빈에서 초콜릿 케이크가 유명하다는 카페가 있어서 찾아갔다. 그저 조그만 카페를 생각했었는데 굉장히 근사한 호텔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막상 들어가기가 조금 멋쩍었다. 하지만 언제 또 와보겠냐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카페 입성에 성공했다. 클래식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는 음악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어느 하나 소란스럽지 않은 굉장히 고요한 분위기였다. T.P.O에 전혀 맞지 않은 옷차림에 더 멋쩍어진 나는 거의 벌 받는 심정으로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내 앞으로 서빙해 온 케이크는 기대했던 것보다 평범한 것이었다. 그래도 맛은 있어서 어느새 어색함을 잊고 다음 일정을 확인하며 여유롭게 다과를 즐기고 있었는데 케이크 안에 실이 뭉쳐있는 모양의 이물질이 나왔다. 순간 한국에서 길들여진 나의 '고객' 본능이 다시 살아났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이 케이크의 가격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직원을 불러 케이크에 나온 이물질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어떤 설명도 사과도 없었고, 내 의사는 확인도 하지 않고 먹고 있던 케이크 접시를 가져가더니 다른 직원이 새로운 케이크를 가져다주며 짧게 미안하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그 이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새롭게 내 앞에 서빙해 온 케이크를 다시 먹을 수 없었다. 직원에게 내 의사를 밝히고 환불처리를 한 후 매우 우울한 기분으로 카페를 나왔다. 달달한 케이크를 먹고 기분을 전환하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괜히 화도 나면서 별것도 아닌 일인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짢은 기분은 우연히 들른 공원에 핀 장미와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향기에 조금씩 풀렸다. 다시 기운을 내서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에 음악을 듣고 싶어서 검색을 했다. '김윤아'의 노래가 갑자기 듣고 싶어 검색해보니 'Going Home'이라는 곡이 있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잔잔히 귓가를 울리는 김윤아의 보컬과 멜로디를 타고 전해지는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닿았다.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차올랐는데 몇 번을 억지로 삼켰는지 모른다. 눈물이 터져 나오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는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너에겐 충분히 자격이 있으니까'라는 가사가 불안과 싸우는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 무척이나 외로웠고 힘들었다. 음악은 때론 내가 외면하는 감정을 꺼내 보여주곤 한다. 모른 척한다고 해서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며 언젠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부터 점층적으로 쌓아 올라오던 나의 우울감은 잘츠부르크의 청명한 경관에 훌훌 날려 보낼 수 있었다. 이 곳에서 매우 유명한 '미라벨 정원'과 '모차르트 생가'를 지나 독수리 요새 뒤 하이킹 코스로 향했다. 햇빛은 눈부셨고, 하늘은 티끌 없이 푸르렀고, 나뭇잎은 생기 있는 초록빛이었다. 그 모든 게 너무 조화로웠다. 날은 더웠고 햇볕은 따가웠지만 그저 자연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성벽길을 걷다 보니 전망이 좋은 휴식공간을 발견했다. 거대한 산과 그 밑에 초원이 그림같이 펼쳐진 공간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소였다. 성벽길은 더 이어져 있었지만 경관이 멋있어서 여기서 멈추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사람들이 왔다가 쉬었다가, 다시 떠나는 동안 한 자리에서 계속 그 경관을 바라보며 생각을 비웠다.


 5월 20일, 앞으로의 여행은 10일 남짓. 나의 여행이 정말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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