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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마망 Feb 09. 2022

마흔의 아내를 위한 남편의 육아휴직

"내가 육아 휴직할게! 걱정 마"



1년 반을 꼼짝하지 않고 집에서 육아를 했고 일을 했다. 처음 6개월은 육아와 집안일만 했고 그 후로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재택근무로 맡은 프로젝트로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아침 8시부터 9시까지는 아이의 밥을 챙기고 씻기며 등원 준비를 했고 등원 후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려 장을 본 다음 집에 돌아와서는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간단한 반찬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전 10시부터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만 일을 해야 하기에 점심밥을 챙겨 먹을 여유는 없었다. 밥이 너무 먹고 싶은 날엔 밥에 물을 부어 그냥 마시다시피 했다. 4시가 되면 컴퓨터 전원을 끄고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신나게 웃는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가서 1시간 남짓 놀다가 더 놀겠다고 떼 부리는 아이를 달래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씻기고 갈아입히고 블록놀이를 하고 있으면 퇴근한 남편이 집에 도착한다. 저녁밥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아이와 놀이를 하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오늘의 육아는 끝난다.


하지만 낮에 못다 한 일들이 있기에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일찍 마무리하고 자는 날도 있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누울 수 있는 날도 있었다. 아이가 아파서, 코로나 영향으로 등원을 못하게 될 때는 꼼짝없이 육아에 매진해야 된다. 육아가 1순위였기에 재택근무로 하는 일은 최소한만 하겠다 생각했지만 내 마음 같지 않은 담당자는 수정 사항을 계속 전달했고 한 번은 욕심이 앞서 의뢰 들어온 일을 다 받았다가 잠 한숨 못 자고 아이 등원 준비를 할 때도 있었다. 태어날 때 부터 통잠이 없던 아이는 매일 새벽 꼭 한번은 일어나 울었고 성장통 있는 날은 더 자주 깨서 울었다. 아이가 아파 고열이 있는 날은 불침번을 서야 했다.

내가 있기에 아이는 아파도 참지 않아도 되었고 늦잠을 자도 괜찮았고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있지 않아도 되었고 하원 후 놀이터에서 마음껏 신나게 놀 수 있었다. 남편은 편히 잘 수 있었고 급하게 휴가 쓸 필요도 없었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남들이 볼 때는 육아도 하고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고 엄청나게 알찬 1년 반을 보냈다.

그러나 나는 체력의 한계를 느꼈고 정신력은 마른 땅처럼 갈라졌다. 집 앞 카페조차 마음 편히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지도 못했고 남은 시간에 집안일 하나 더 하려고 애썼고 아이의 일상을 함께하기 위해 바둥거리며 매일 같은 일과를 빽빽하게 보냈다. 누가 칭찬도장을 찍어주는 것도 아닌데.

나의 마지막 서른 한 해를 나 없이 그렇게 보냈다.


마흔의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복직의 기회가 찾아왔고 남편이 말했다.

"내가 육아 휴직할게! 걱정 마!"


아직 서른 중반인 남편은 회사에서 첫 남자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마흔인 나는 회사로 출근을 했다.

나의 이른 출근 준비로 인해 남편은 아이의 방에서 잠을 잤고 아이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하원한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놀아주었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서투른 솜씨로 그럴싸한 저녁밥을 차려놓았다.  편하지만 불편한 일상으로 보름이 지났다. 남편은 용돈이라도 벌 생각으로 평일 오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작년의 그땐, 나 자체로는 너무 힘들었고 두 번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지만 아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시기였고 덕분에 아이도 잘 자랐고 남편도 마음 편히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지나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괜찮았다.

그렇지만 남편은 나처럼 하지 않았으면 했다. 여유 없는 그런 하루를 보내지 않길 바랬다.

나중에 지금의 오늘을 떠올렸을 때 나와 아이가 행복했던 만큼 남편도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남편은 작년의 나를 기준으로 맞추기 위해 힘들게 애쓰고 있음을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보낸 서른의 마지막 한 해의 아쉬움까지 남편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고 싶지 않았다. 남편 자신에게도 소중한 서른의 한 해이기에.


아이가 잠들고 우리는 잠들지 못한 밤,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준이를 챙기는 일만 해도 힘든 거 알아. 그러니깐 집안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녁밥도. 나와 준이는 당신이 육아휴직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고마워.

내가 빨리 퇴근하니 저녁밥 준비는 내가 할 수 있어. 그리고 다 만들어서 먹지 말이제 간편하게 사 먹자. 알바를 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취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아님 뭘 배우거나 하면 어떨까. 노후도 준비할겸 나중에 혹시 모르잖아.

나는 그때 조금 후회했어. 좀 내려놓고 살 껄 그랬어. 너무 욕심부렸더니 내가 없더라. 당신은 자신도 챙기면서 보내면 좋겠어. 그러니깐 육아 휴직답게 육아하고 휴식도 했으면 해."


남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때 내가 너무 미안해. 그냥 편해서 모른 척했었어. 미안해."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 집안일보다는 아이에게 집중했고 꼭 챙겨 먹어야 되는 밥은 다양한 밀키트와 동네 반찬가게의 도움으로 시간과 체력을 절약했다. 

아이는 네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고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유아체육 보다 더 강력한 아빠 체육으로 튼튼해졌고 자신감도 높아졌다. 나는 회사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아이가 아플 때만 사용했던 연차는 가족 여행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남편은 준이가 유치원에 있는 시간 동안에 제일 하고 싶었다던 PT를 받으며 헬스장을 다녔고 볼링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남편의 여유로움 덕분에 우리는 캠핑을 하게 되었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캠퍼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남편은 부캐를 위해 새로운 배움을 시작했다. 어제 저녁밥을 먹으며 남편이 말했다.


"나 육아휴직을 하길 잘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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