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바라본 교회의 현재 모습
나는 지난주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는 나와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두 건물 옆에 있다. 오며 가며 늘 궁금했다. 왜 이곳에 교회가 생겼는지, 누가 다니는지. 오래된 동네 분위기와는 달리 감각적인 간판이 있어 더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교회’라는 단어가 늘 나를 막았다. 교회는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현실에서는 교회라는 이름 때문에 오히려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들어가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앞선다. 이런 사회적 인식, 고정관념이라는 허들을 개인이 한 번에 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믿는 사람만 믿고, 다니던 사람만 계속 다니는 공간이 된다. 성인이 된 후 자발적으로 교회에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은 부모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믿음이 논리적 설득이나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세습되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공동체가 쉽게 닫힌다는 데 있다. 교회에 대한 인식도 결국 그 안에서 형성된 모습으로 굳어지고 만다. 안에서만 반복되는 관계는 점점 외부와 단절되고 새로운 이들이 들어오려 할 때는 높은 문턱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닫힌 공동체는 살아 있는 관계를 키우기보다 자기 안에서만 맴돌며 고여 버린다. 교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바란다면, 무엇보다 스스로를 열어야 한다. 낯선 이들을 환영하는 열린 자리, 누구든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교회는 변한다.
교회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어 누구나 쉽게 올 수 있어야 한다.
형식적이고 격식 있는 공간이 아니라, 동네에서 슬리퍼를 신고 모자를 쓰고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위계적이고 위압적인 건물, 커다란 십자가와 휘황찬란한 광고판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 도시의 리듬에 맞춰 일상적인 건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고 지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도시 숲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 동네 안에 수십, 수백 개의 교회가 있어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커다란 건물과 빨간 십자가를 보면서 교회의 따뜻함보다는 사람을 더 끌어모으려는 욕심만 느껴졌다. 교회에 대한 거부감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만 커질 뿐이다.
교회라는 안락함과 세습된 신앙 속에 숨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와 사람들에 맞춰 혁신되어야 한다.
1년 전, 우연히 부흥회에 간 적이 있다. 사전에는 기존 신자들의 영적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신자를 얻기 위해 열리는 특별한 기도회라고 설명되어 있다. 유명하다는 목사가 와서 예배를 인도했는데, 나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예수를 믿으면 이렇게 된다”는 식의 말만 반복되었다. 목사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신학적 해석은 없고 마치 하나님이 마법사인 것처럼 현상만을 강조했다.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예수님의 모습은 사라졌고 마술적 기적만 남았다. 회중은 서로 소리치며 더 크고 빠른 목소리로 기도했고 그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길인 양 과장된 열정이 강하게 이어졌다. 이것이 새로운 신자를 얻기 위한 예배인 것인가. 내가 아는, 사회가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교회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후 나는 한동안 교회에 가지 않았다.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교회의 이러한 모습과 방식은 지금의 세대와 맞지 않다. 언제까지 마술을 부리는 예수님의 이미지만 강조할 것인가. 언제까지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만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것인가. 교회는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