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라미 Sep 08. 2023

세 시간마다 차오르는 '젖'과의 싸움(3)

조리원이 천국이라고?(3)

그러나 육아는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이는 보다 적은 힘으로도 빨 수 있는 젖병을 택했고, 나는 수유 3개월 만에 단유를 시작하게 되었다. 단유 또한 쉬운 것은 아니었다. 직접수유를 단번에 끊자 엄청난 젖몸살이 다시 찾아왔다. 결국 유축기의 힘을 빌어 서서히 유축의 간격을 벌리면서 단유를 하게 되었는데, 완전히 단유가 되기까지는 또 3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뜻밖의 상실감에 당황했다. 단유를 하는 일이, 엄마인 나에게 큰 슬픔이었던 것이다. 



보통 돌 넘어까지 엄마의 젖을 먹던 아이들이 단유를 할 때 큰 상실감을 겪는다고 한다. 엄마의 젖이 단순한 식량을 넘어 애착의 대상이 되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아름이에게 여건이 허락하는 한 길게 모유수유를 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분유보다도 모유가 좋다는 믿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아름이의 젖 먹는 예쁜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는 마음. 물기 싫다는 아이의 입에 억지로 젖을 물려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물지 않는 젖을 유축하고 있는데 매트 위에 누워 혼자서 놀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서야 이 짓을 관둬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이 시간을 아껴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사랑해줘야지. 



단유를 하며 다소 상실감에 젖어있던 나는 공감을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에 다음과 같이 검색해보았다. ‘단유 슬픔’. 많은 엄마들이 단유를 하며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깊이 빠져들어 여러 글을 눌러보던 나는 하나의 글을 보고 엉엉 울고 말았다. 



태중에서 유산이 되는 경우나 사산을 하는 경우에도 출산을 한 것으로 인식하는 몸이 모유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엄마들이 단유를 하는 내용이었다. 

‘아기 아빠는 아기 얼굴을 봤는데, 저는 볼 자신이 없어서 보지 못했어요. 너무 예뻤대요. 천사가 된 아기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사랑스러웠대요.’

이런 내용의 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댓글들이었다. 나도 한 마디 위안을 건네고 싶었으나 빈 댓글 창에 커서를 올려두고 한참을 울기만 했다. 그 상실감과 슬픔을 어떻게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좋은 것을 하나라도 더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사랑이다. 주고 싶었던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마음의 불편함은 욕심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에게 이상한 욕심을 부리는 나를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었는데, 이것 역시 사랑이 아닌 욕심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단유하는 마음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내 마음은 끝없는 화수분이었다. 수유는 그 중 하나일 뿐, 단유를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내 사랑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줄 수 있는 사랑을 주기만 해도 차고 넘친다. 




이미지출처 :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세 시간마다 꼬박 차오르는 '젖'과의 싸움(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