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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미 Sep 11. 2023

조리원 퇴소 후 펼쳐지는 충격적인 나날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야!(1)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에 오자마자, 나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충격적인 육아현장으로 ‘내던져’졌다. 출산을 앞서 경험한 친구들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육아’라는 일이 어렵고 고단함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만이었다. 내가 실제로 겪어내야 했던 구체적인 고통에 비하면, 그동안 내가 상상해왔던 육아의 힘듦은 커다란 찰흙반죽처럼 뭉뚱그려 묘사돼있던 것이었다. 



일단 내가 원하는 만큼 푹 자고 일어나는 일부터가 불가능했다. 언제나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을 억지로 깨야 했고,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켜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우유를 타주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니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날은 아주 드물었다. 남편이 육아를 함께 해주는 주말은 좀 더 푹 잘 수 있지 않냐고? 엄마의 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아주 예민해진다. 나는 주말에도 항상 남편보다 일찍 깨어 아이를 돌보았다. 잠귀가 밝은 나의 기질이 원망스러웠고, 잠귀가 어두운 남편의 기질이 너무 얄미웠다. 



이렇게 잠을 깨고 나면 종일 아이의 시중을 드는 일에 나의 모든 에너지가 투여된다. 까꿍놀이, 책 읽어주기, 몸개그 등 엄마는 아이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엔터네이너가 되고, 중간중간 아이가 토한 것을 치우거나 똥싼 것을 치워준다. 아이의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히거나 씻기는 일도 추가된다. 하루에 빨래를 두 번씩 하는 날도 있었다. 또 잘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어쩜 그리 잘 어지르는지 수시로 정리정돈에 바닥청소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아이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일이 정말 고됐다. 식재료를 깐깐히 고르고 씻고 자르고 끓이고 갈아서 이유식을 만들면 설거지가 싱크대에 넘쳐났다. 먹이고 돌아서면 설거지하고 다시 먹이고 돌아서면 이유식을 만들고… 인간은 도대체 왜 삼시 세끼를 먹도록 만들어진 건지 그 비효율성에 의문을 품는 날도 있었다. 동물들은 한 끼를 먹으면 하루를 살고 때로는 이틀 사흘도 굶을 수 있지 않던가. 한 인간을 먹이고 치우는 일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아이는 잘 먹지 않고 편식이 심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이유식이 그대로 싱크대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힘들게 만든 음식인 만큼 잘 먹어주기라도 하면 보람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아 더욱 힘들었다. 고기를 필수 단백질로 꼭 섭취해야 한다는 육아서를 읽을 때마다 아이를 잘 먹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이가 낮잠을 평소보다 늦게 자거나 아예 자지 않는 날에는 감정이 폭발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이의 낮잠 시간이건만, 그 시간만을 위해 오전의 돌봄노동을 견뎠건만 그 기대가 무너지면 나도 함께 무너지곤 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에게 인상을 쓰고 때로 화를 내고 그러고 나면 후회하면서 잠든 아이의 귀에 미안하다고 속삭이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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