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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미 Sep 18. 2023

치밍아웃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야!(2)

아이의 시중을 드느라 나의 욕구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렸다. 조그마한 아이는 엄마에게 밥을 먹을 시간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아주아주 지독한 상전이 따로 없었다.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점심도 거른 채 저녁으로 라면을 대충 끓여먹다 보면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뿐인가. 변의가 느껴질 때 화장실에 바로 가지 못하니 변비가 생겼고,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던 치질이 악화되어 결국 병원을 찾았다. 세상 밖으로 터져나온 나의 그것을 본 의사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부위와 달리 항문은 유난히 부끄러운 신체기관이었기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남편에게 입단속을 단단히 일렀다. 그러나 이제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는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나 보다.



엄마가 운영하는 동네 옷가게는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다. 김 아무개의 딸이 치질수술을 해서 엄마 집에 얹혀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중에는 분명 초중고 동창의 엄마들이 있었고 심지어 내가 전에 가르쳤던 아이의 학부모도 있었다. 나는 수치스러웠다. 엄마에게 제발 좀 그만 떠벌리라고 애원했지만 돌아온 건 엉덩이 위에 손을 얹은 안수기도였다. "아줌마들은 그런 거 아무 상관없어. 얼마나 흔한데." 내가 상관있다고요 엄마… 헛웃음이 나왔다. 어떤 분은 내 항문을 위해 묵주기도 사십 단을 바치셨다고 했다. 너무 감사했지만 그런 기도는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철저한 무관심과 잊혀짐이었다. 이런 얘기를 들은 남편은 왜 본인만 입단속을 해야 하냐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동네에 내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 때쯤 나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다른 수술 후기를 읽어보니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해서 헤드셋을 끼워주기도 한다는데 내가 수술하는 병원은 그런 서비스는 없었다. 약간 긴장하고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양쪽에서 내 엉덩이를 벌려 찌익- 박스테이프로 고정했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나는 이 일을 글로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이 일은 웃긴 일이다. 아빠 말대로 지역방송에 방송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웃긴 수술은 금방 끝났다. 마취가 잘 되었고 엉덩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제왕절개 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마취가 이렇게 좋은 것이라니. 약 개발하신 분 복 많이 받으세요.     



(이미지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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