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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림 Nov 09. 2021

사위 눈치는 보여도, 홈쇼핑은 하고 싶어!

친정살이를 말하다.

친정엄마는 건강하지 않다. 허리 수술로 오래 걷기도 힘든 데다가 당뇨로 인해 저혈당 관리를 해야 했고, 간질성 방광염으로 인해 화장실이 없는 거리를 걷는 일은 점점 힘들어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30분 이내 거리도 이동할 수 없었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친정살이 중이라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가거나 20분 거리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나의 개인 시간은 언제나 엄마가 부르면 출동하는 긴급 출동 대기 조여야 했지만.


건강할 때는 발에 불이 날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고, 어디서든 누군가가 자신을 찾으면 열심히 달려가시던 친정엄마였다. 또 사람을 좋아하고 시장을 볼 때면 사과 하나, 애호박 하나도 흠이 있나 없나 잘 찾아보며 신중하게 사는 편이셨다. 그런 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 어디 가기도 두려워지고 아파서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다 보니 집에만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로 인해 인맥은 점점 차단되어 갔고, 집안 자신의 큰방에서 보내는 하루가 전부셨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친구는 남편이 소개해준 핸드폰 게임(만 9년째 진행 중)과 TV를 보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홈쇼핑을 보게 되셨고 어느 순간 우리 집엔 택배 상자가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괜스레 친정엄마와 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 가장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세림아, 엄마가 우리 가정에 필요한 걸 하나 샀는데!"

"있잖아... 아주 유명한 브랜드라서 안 살 수가 없었어~"

"우리 가정에 필요한 물건인데 할부로 사니까 부담도 없잖니?"


친정 엄마가 홈쇼핑을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 한 가지!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저렴한 금액으로 많이 산다는 것'이었다. 물론 친정엄마의 말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다 맞는 말이고, 집에 도착한 택배를 뜯어보면 결국 우리 입으로 들어가고, 일상생활에서 잘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홈쇼핑을 질렀다고 내게 말할 때마다 난 점점 부담감이 늘어 갔다. 굳이 안사면 안 먹고, 안사면 안쓸 물건들인데 사니까 먹게 되고, 사니까 쓰게 되는 느낌 때문에 아까운 돈을 쓰는 기분을 없애기란 힘들었다. 가정주부인 내 마음이 그러한데 남편은 더 했다. 택배가 많이 오던 하루는 남편이 내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 엄마는 홈쇼핑으로 뭘 자꾸 사시는 거야...?? 나 할부 싫은데."


단 한 번도 친정엄마의 홈쇼핑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남편의 지갑을 열어야 하는 나로서 눈치만 보고 지내다가 제대로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날이었다. 분명 남편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고 했지만 나는 안다. 그의 성격을. 그동안 속으로 계속 신경이 쓰였을 것이고, 눈에 거슬렸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라는 걸. 하필 남편이 내게 처음 싫은 소리를 했을 때가 내가 다닌 회사가 파산을 했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내가 실업자가 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니 남편의 그 말은 내게 "집에 가만히 있으면서 왜 돈 쓸 궁리만 하냐!"라고 고깝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친정엄마의 홈쇼핑 주문은 더욱 내게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결국 난 고민 끝에 친정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이번 달은 홈쇼핑 그만 하면 좋겠어. 안 보면 안 사니까 안 보면 더 좋고요!"

"엄마가 필요 없는 거 샀니? 결국 우리가 먹고 우리가 쓰는 거 사는 건데 좋다고 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그러는데!"

"지금 내가 일도 안 하고 집에 있잖아. 돈벌이도 줄었는데 그럼 거기에 맞게 돈도 덜 쓰는 게 맞잖아."

"왜? 엄마가 홈쇼핑한다고 안서방이 뭐라고 해?"


난 정곡이 찔렸다. 굳이 남편 때문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보였던 것이 사실이라.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하면 일이 더 커질 문제다. 선의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이라 직감했다.


"여기서 안서방 이야기가 왜 나와. 그런 게 아니고! 굳이 안 사도 되는 건 안 사는 게 맞지. 그리고 필요한 만큼 사고! 당분간 나도 쉬니까 좀 절약 하자는 말이지."

"안 그래도 안서방 눈치 보여서 엄마가 정말 필요한 것만 사는 건데, 에휴... 내가 눈치 보고 살 나이니?! 알았다!"


이 날 친정엄마와 나의 냉전은 3일 정도 지속됐다. 홈쇼핑이 뭐라고. 이런 불편하고 냉랭한 기운을 온 집안에 퍼트리며 지내야 하는 건지 친정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을 문제라 생각했다.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친정엄마가 서운했고, 홈쇼핑 그거 좀 한다고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들어내는 남편이 미웠다. 마치 나 때문에 집안 분위기를 흐리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 당시 제일 싫었던 건 어쩌면 나였던 것 같다. 돈벌이도 못 하고 남편 눈치 보며 친정엄마를 모시고 산다고 생각했던 자격지심! 그래도 풀어야 한다. 어쨌거나 매일 얼굴을 보고 부대끼며 살아 내야 하는 우리 아닌가. 나 혼자 살았다면, 아니 친정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불편한 감정은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만 우린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지만 한 가족으로 어울려야 한다.


나의 속상함과 서운한 마음을 차한 잔과 책 속 세상을 마주하면서 털어냈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서로가 맞는 말이었다. 벌이가 줄었으니 돈을 아껴야 함도,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사는 것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적당한 중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친정엄마에게 차 한잔 하자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엄마... 미안해. 내가 너무 무 자르듯 이야기했던 것 같아...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됐다. 엄마도 생각해 봤는데, 네 말도 틀린 게 아니고 나도 안서방 눈치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엄마 우리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 어쨌거나 필요한 건 사는 게 맞아! 그럴 땐 나랑 먼저 상의해 보고 고민 좀 하고 사면 어때? 그래야 나도 예산을 잡고, 엄마의 생각도 알 수 있으니까요!"

"네가 바로바로 결재를 안 하니까 엄마가 사는 거잖아. 엄마도 상의하고 싶지~"

"앞으로 나도 엄마의 말에 집중할게요. 우리 조금만 서로 이해하면 좋겠어. 나도 내 입장이 있으니까~"

"어이구... 알았다~ 알았어!"


신혼 때는 친정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남편에게 엄마의 입장을 설명하고, 대변하고, 변명하기 바빴다. 그래서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오롯이 참아내야 하는 건 언제나 남편 몫이었다.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일방적인 배려와 이해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걸.

빈 의자는 채워야 맛이다. 곁에 누군가와 함께

'어른이니까, 이해해!'

'어른이니까, 우리가 배려해야지!'

'어른이니까, 우리가 참으면 좋잖아!'

'나이 드신 분이 바꿀 순 없으니까, 자식인 우리가 바꿔야지!'


내가 남편과 결혼하고 이혼의 위기를 겪기 전까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며 살기 위해 결혼했음에도 난 결혼 후 친정살이 중이었지만 독립적인 가족의 탄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보다 항상 친정엄마가 먼저였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어느새 번외의 외톨이가 되어 갔고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해 겉돌았다. 이걸 깨달을 때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변하니 친정 엄마가 변했고 남편이 바뀌었다. 어렵게 꺼낸 말은 처음이 어렵지 그 후론 거침없었고, 솔직한 표현은 오히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요즘 친정엄마는 즉흥적으로 홈쇼핑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물어보고 함께 상의하며 가정의 물건을 채워가고 가족이 먹어야 할 음식을 구매한다. 여전히 택배 상자가 사위가 쉬는 날 오기라도 하면 사위의 눈치가 보여 구구절절 이게 어떤 물건이냐고 설명하시지만 남편은 그런 장모를 보며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사소한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 덮어 버리면,
어느 순간 그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장애물이 되어 버린다.
보통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서로를 향한 솔직함이며 오해 대신 배려가 물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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