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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Aug 17. 2021

고양이 싫어하는 남편,두 번째 이야기

제법 잘 맞는 부부




고양이 싫어하는 남편, 두 번째 이야기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 남편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괄괄하고 드세고 백번 불러도 안 오고 깨무는 거 좋아하는 우리 집 고양이 '점순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점순이의 말괄량이 같은 면이 좋았는데 남편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고양이랑 같이 사네 마네, 한참을 싸웠고 4년이 접어들고 나서 우리는 안정기를 찾았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말이다. 


# 고양이 싫어하는 남편, 남편 싫어하는 고양이

우리 남편은 고양이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고양이도 우리 남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명확하게 안다! 


우리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누군가 오는 소리에 예쁜 자태로 현관문 앞에 앉아있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 온 주인공이 내가 아닌, 우리 남편이라면?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은 뒤 점순이는 깨닫는다. '아! 밥 주는 집사가 아니구나!' 그리곤 곧바로 세상 도도하게 흥! 고개를 돌리고 구석으로 가서 철퍼덕 눕고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집에 사람이 오면 발냄새, 손냄새부터 맡는 점순이


집사가 아닌 집사 남편이면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누워버린다


어쩌다, 정말 어~~~ 쩌다 우리 남편이 간식을 주면 의심부터 한다. 이 간식이 먹어도 되는 간식인지, 먹으면 안 되는 간식인지. 그래서 일단 입을 벌러서 간식을 먹긴 하지만 엉덩이는 바짝 세우고 있다.  그리고 남편이 조금이라도 손가락을 움직이면 와자작! 깨물어버린다. 


어쩌다, 정말 어~~ 쩌다 우리 남편 배 위로 고양이가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면 남편은 '웬일이야?' 하면서 쓰다듬어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방팔방에 털이 풀풀 날리자 남편은 이내 '저리 가!' 하며 고양이를 내쫓는다. 그러면 점순이는 홱 뒤돌아보며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도도하게 갈길을 간다.

아, 그렇다! 점순이는 우리 남편을 살짝 떠 본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집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모님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고양이가 근처에만 와도 소리를 우악!! 지르시는데 그걸 아는지, 점순이는 우리 부모님이 집에 오면 방 한 구석으로 총총 걸어가더니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누워있는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간식이니 장난감이니 엄청 챙겨주는데 별 반응이 없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면 그때서야 다시 펄쩍펄쩍 신이 나서 날아다닌다. 


참 신기하다.

고양이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안다.


# 정이 들래야 들 수 없는 사이 

사실, 4년을 같이 살았으면 웬만큼 정이 들만도 한데 둘의 관계는 아직도 밀당 중이다. 가끔 점순이가 남편 옆에 와서 비비적비비적하면서 예쁜 짓을 하는데 그때는 남편이 귀엽다고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딱 그것뿐. 한번 더 부비적거리면 털이 날린다고 '저리 가'하며 내쫓는다. 남편이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살짝 했지만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둘의 관계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한 번은 점순이가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야 해서 남편한테 차를 태워달라고 했는데 남편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택시 타고 가. 택시 불러줄게"


"... 남편, 태워주면 안 돼?"


"너 나랑 결혼하고 고양이는 네가 다 책임진다고 했어. 이건 선 넘는 거야"


매정하게 들리긴 했지만, 어찌 보면 내가 우겨서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거니까 반박하지 않았다. 싫은 사람한테 억지로 같이 고양이를 키우자고 해놓고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혹시나 이건 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결혼 첫해에 곧바로 깨닫고 그 이후로는 점순이의 병원 진료, 목욕, 집짓기 등등 일들도 군말 없이 혼자 했다. 우리 남편도 나에게 내가 싫다는 것을 강요하지 않듯이 나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남편과 고양이는 서로 선을 긋고 밀당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고 나는 중간에서 내 역할을 충실하게 잘 해내고 있다.  4년 동안 딱 두 번 남편에게 고양이 밥 주기와 모래 치우기를 부탁했는데 그때도 '당연히 해줘!'가 아니라 '정말 미안한데 부탁할게'라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이번뿐이야' 라며 부탁을 들어줬다. 


우리 남편은 고양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밥을 주는 것조차 정말 싫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감흥도 없는 반려 동물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바꿔 생각하면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당연히' 해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해준다고 생각한다. 


반려 동물 때문에 의견 차이가 있는 커플, 부부들이 꽤 많을 것이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애호가로서 조심스레 한마디 한다면, 반려 동물은 내가 키우는 것이지 남이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직접 키우겠다고 다짐했으면 그 책임은 '나 혼자' 끝까지 지어야 한다. 그 책임에는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정답이고 '100% 맞아요 이렇게 하세요 다들!' 이라고 절대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강요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고 이 태도가 분명 우리 부부에게 시너지 효과가 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노력하는 것 보다 더 노력해야 할 테지만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건 절대, 남에게 싫은 걸 강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집사의 사랑을 듬뿍 받는 점순이, 앞으로도 건강하게 함께 잘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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