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야말로 깊이 뿌리내린 대한민국의 스포츠 생태계를 바꿀 수 있을까? 2019년 2월 11일 대한민국 체육계 구조 개혁을 목표로 출범한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 5월 4일 1차 권고안을 시작으로 8월 22일까지 총 7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의 핵심은 기존 엘리트 위주의 한국 스포츠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모두를 위한 스포츠(Sport for All)'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리얼미터에서 혁신위 권고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찬성이 무려 58.9%가 나왔으니, (반대 28.8%, 모름/무응답 12.3%) 스포츠 혁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고 할 수 있겠다. 정부와 국회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개혁에 나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우선 현장의 반대가 극심하다.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의 개혁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2차 권고안이 발표되자마자 국가대표 선수협회 등 8개 단체는 현실과 동떨어진 혁신위의 권고안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대한체육회 역시 일부 사안에 대하여 완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본문에서는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위한 혁신위의 2차 권고안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을 정리해보고, 올바른 개혁을 위한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스포츠혁신위원회 2차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에 대한 권고
∙ 주요 내용 : 학기 중 주중 대회 참가 금지, 최저학력에 도달한 학생만 대회 참가 가능, 대한체육회 및 회원 종목 단체의 학기 중 대회를 주말 대회로 전환 등
2. 체육 특기자의 진학에 대한 권고
∙ 주요 내용 : 체육특기자 경기실적 중심의 진학 시스템을 경기력, 내신성적, 출결, 면접 등이 반영된 종합 선발 시스템으로 전환 등
3. 학교 운동부 운영 및 관리에 대한 권고
∙ 주요 내용 : 훈련은 정규 수업 후에 실시, 합숙소 전면 폐지, 선수 학부모의 비공식적 비용 각출 및 지원 금지 등
4. 학교운동부 지도자 역할과 처우개선에 대한 권고
∙ 주요 내용 : 지도자 처우 개선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예산 지원 방안 마련 등
5. 학생의 스포츠 참여 활성화를 위한 권고
∙ 주요 내용 : 스포츠클럽∙학교운동부 종목별 통합 대회 추진, 통합을 위한 선수 등록제도 개선 등
6. 전국 스포츠대회 (전국 소년체육대회 포함) 운영에 관한 권고
∙ 주요 내용 : 전국 소년체육대회를 학교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 스포츠 축전으로 확대 개편, 초등부는 권역별 학생 스포츠 축전으로 전환 등
| 찬성 의견 (스포츠혁신위원회 등)
지난 6월 4일(화), 스포츠혁신위원회(위원장 문경란)는 학교 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2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후 전국 스포츠 관련 학과 교수 190여 명과 체육 시민연대 등은 본 권고안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냈다. 권고안에 찬성하는 진영의 주요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 엘리트 위주의 선수 육성 시스템은 스포츠 현장에서 구조적으로 선수 인권 침해를 야기한다. 현 시스템 하에서, 학생선수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으며 과한 훈련으로 인한 부상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메달을 목에 건 ‘엘리트’ 선수는 다행인 경우에 속한다. 대다수의 학생 선수들은 다른 진로를 선택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로 중도 탈락을 맛보며 좌절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성공한 선수조차도 각종 인권 문제로 미디어에 등장하기도 한다.
둘째, 일반 학생의 스포츠 참여 기회를 제약한다. 학생 선수들에게 운동 과잉이 문제라면, 일반 학생들에게는 결핍이 문제다. 정부 주도의 학교 스포츠클럽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며 과거에 비해 일반 학생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증가하였지만, 시스템과 문화가 완전히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책 개선과 자원 투자가 필요하다.
셋째, 국가주의적 스포츠 패러다임은 현시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스포츠 발전은 오래도록 국가주의 프레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일정 부분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는데 기여하였고,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선수의 학습권 박탈이나 강압적 훈련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국가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서의 스포츠에서 나아가 보다 건강한 스포츠 발전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 국제 대회에서의 메달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승리 외에도 스포츠에 내재된 다양한 가치들을 느끼며 건강한 체육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들은 국가보다는 개인의 인권에 초점을 두고 승리보다는 스포츠가 주는 다양한 가치에 집중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반대 의견 (경기단체 연합회 등)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안 발표 이후 경기단체 연합회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 안을 내며, 2차 권고안에 대한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 전체적인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스포츠 현장의 역기능만을 바라보고 만든 불균형적인 권고안이라는 주장이다.
첫째, 혁신위 권고안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정작 본인의 인생이 걸린 학생선수나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전문체육인 대표자 등이 배제된 상태에서 혁신위 주최 토론회가 개최되었으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권고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폭력적인 처사이다.
둘째, 판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혁신위의 권고안은 기본적으로 운동부의 지도자와 학교 운동부를 적폐와 개혁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합숙소 존재 자체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니, 합숙소를 폐지하라는 건 너무 극단적이다. 문제가 있으니 폐지하라는 관점에서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운영 가이드라인을 정하거나 교내 기숙사를 학생 선수에게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정책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으로 개혁을 이루어나가는 길이다.
셋째, 학생 선수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은 지지하지만, 혁신위가 밝힌 구체적 실행안은 비현실적이다. 학기 중 대회를 주말 대회로만 개최할 경우 많은 팀과 선수들이 가까운 지역에 모여야 이동이 용이하고 대진 편성도 수월한데, 이런 조건을 가진 지역은 수도권 지역, 일부 종목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종목은 주말에 집중적으로 대회를 하게 되면 경기장 대관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며, 선수단 비용 부담도 늘어나게 된다. 이는 지역 불균형이나 종목 불균형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주중 경기 진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이들은 현장의 의견을 듣고, 판을 깨는 무조건적인 폐지나 급진적인 정책이 아니라 현장을 위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혁신위의 권고안에 반대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조차도 위의 문구를 자주 언급한다. 학생 선수의 인권 존중이라는 대전제에는 이견이 없어 보이며, 현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 개혁은 시대적 과제가 되어버린 듯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는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어떻게든 이 중요한 과제를 잘 해결해나가야 할 텐데, 양측의 주장은 몇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 반대 진영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엘리트 시스템 하에서 크고 작은 성공을 이뤄낸 경기인들이라는 점이다. ‘운동 외길’을 걸어왔음에도 실패와 좌절을 겪고 스포츠 현장을 떠난 대다수 선수 출신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엘리트 선수로서 성공을 이루고 그 혜택을 받아온 소수의 선수 출신들이 내는 반대의 목소리는 그 타당성을 떠나서 일반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이들은 ‘체육인’을 본인들 (혹은 경기단체나 반대 성명서에 지지하는 사람들)로 한정하고 체육 개혁은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체육인은 국민 전체이다. 국민들의 충분한 의견이 수렴되어 체육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찬성 진영은 혁신위를 비롯해 체육학과 교수, 체육 시민 연대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안에 담긴 이행계획은 다소 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혁신위는 학생의 주중 대회 참가 금지 ∙ 합숙소 전면 폐지 ∙ 대한체육회 회원 종목 단체의 초중고 학기 중 대회 주말 전환 권고에 대하여 이행 계획 적용 시점을 2020년 상반기로 설정했다. 즉각적인 주말 대회 전환이 불가한 종목의 경우 심사를 통해 2021년 말까지 유예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지금 같은 속도라면 심사에 얼마나 고려해줄지, 또 고려해주더라도 2021년 말까지 모든 종목의 주말 대회 전환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복싱대회가 64강 토너먼트로 열릴 경우 결승에 오른 선수는 6주간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위와 같은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채 엘리트 체육에 올인하고 있는 학생 선수들에겐 이런 상황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머리를 맞대고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반대 진영의 대표들도 공론 화장에 나와서 현행 제도하에 놓여 있는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하며, 정부와 혁신위도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사안별로 더욱 섬세하게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인권을 위한 개혁이지 않은가? 과정에서도 인권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