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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태훈 Aug 09. 2022

성공과 성격의 관계에 대해

H팩터의 심리학을 읽고, 통계와 인간의 결단에 대한 에세이

ㅁ table of content

H팩터의 심리학

성격에 대한 오해

심리가 전부다.

우리는 평균이 아니다

복잡한 세계, 다양한 위계와 기회

삶을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정리


2019년경 다른 플랫폼에서 쓴 내용을 옮겨쓴 내용입니다.


H팩터의 심리학

최근에 ‘H팩터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기존 서구 심리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BIG5 모델(친화성, 신경성, 외향성, 개방성, 성실성 등으로 유명한)에 한국과 캐나다의 조사사례를 바탕으로 정직성이란 요소를 추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정직성에 대해서 길게 소개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 연달아 읽어본 책에서 얻은 성격에 대한 관점과 그리고 성격과 성격의 관계에 대해 글로 정리해보려고 글을 쓰고자 한다.  


성격에 대한 오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오해를 풀었으면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인간의 심리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그중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건 성격이 모났다거나, 이상적인 성격의 표준에 빗대어 결함을 발견하면 그걸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서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이상적인 표준은 주로 정주영 같은 죽은 영웅들이다. 죽은 사람에 대한 집단의 기억은 보통 조작된는걸 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몰이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성격을 바꿨더니 인생이 바뀌었어요!’라는 네러티브를 동원한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잘 들어 보면 그들이 바꾼 건 성격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인식의 전환, 행동들이다. 과학 연구에 따르면 성격은 50%는 유전자로 결정된다. 나머지는 성장기 초반에 달려있으며 그리고 일단 성인이 되면 인간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성격의 실체는 외부 자극에 대해 추동되는 생리학적 반응, 인지패턴, 진화적인 이익에 따른 프로그램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중에 심장박동수나 인지패턴을 마음 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기계는 없을 것이다. 즉 성격은 바꾸는 대상은 아니다.


심리가 전부다

우리가 성격을 바꾼다고 표현 할 때 실제로 바꾸는 것은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행동할 것인가’와 같은 주제에 대한 개인의 느낌 및 결단이다. 이것을 과학적으로는 심리라고 부른다. 마음이라고 불러도 좋다. 중요한 건 성격과 심리는 다른 것이란 것이다. 좋은 삶을 위해서는 성격은 파악하고 이해해야할 대상이다.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는구나”라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면 자신의 성격이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은 반문 할 수 있다. 자기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각자의 성격에 대해 장단점이 있고 그것을 활용하기는 자신에 달려있다. 이런 시도들이 최근에 몇 번 있었다. ‘Quiet’와 같은 책들이 그런 시도들의 일환이다.

이런 시도들을 들으면 여러가지 반박들이 떠오를 수 있다. 특히나 현실을 평균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려는 신경성이 높은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우리의 한계를 규정짓는 이야기들에 대해 어찌 반발심이 들지 않겠는가. 최근에 조명받은 조던 피터슨(『12 rule for life』저자)은 커리어에 있어 근면성과 IQ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고 주장하며 조그만한 절망을 선사주었고. 나아가 한국언론들은 심심하면 "강남에서 SKY..." 이런 레퍼토리 시작하는 불평등의 경향성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며 우리의 성취가 사실은 수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런걸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사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평균이 아니다

일단 안심하시라 다행히 그런 사실들은 경향성에 대한 사회학적인 접근에만 유용한 거지 우리 삶과는 무관하단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삶은 경향성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당신은 자료에서 평균을 읽지만 실제 삶은 언제나 정규분포 그래프의 양쪽 끝단에 있을수도 있다. (특히 당신이 별난걸 기꺼이 사랑하는 개방성 높은 인간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면에선 특출나고 어떤 면에선 평균이다


“남성이 여성을 착취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현실의 인간을 관찰해봤자 나오는 결과는 착취하는 남자도 있고 아닌 남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더 깊게 보면 사실 착취는 성별에 무관하다. 『H팩터의 심리학』에 따르면 착취는 착취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직성 낮은 인간과 그것에 대응하지 못하고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취약한 개인의 조합으로 일어난다. 인간을 둘러싼 깊은 진실은 추악한 진실은 알아도 당장에 대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면죄부를 주는 사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진보적인(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그런것같다.

‘SKY에 강남 애들만 간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관찰해봤자 나오는 결과는 강남 애들도 있고 아닌 애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사실 절망할 이유도 기뻐할 이유도 없이 다음을 말할 뿐이다. ‘통계는 사회학적 의미는 있는 자료지만 나의 소망이나 욕망과는 무관하다.’ 인간이 통계를 근거로 무언가를 설명하려 들 때는 그런 활동들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이나 해야 할 일, 현실 인식을 회피하기 위해 또는 인식을 편집할 근거들을 집요하게 수집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세계, 다양한 위계와 기회

세계는 복잡하다. 운이 좋은 투자가 30년의 커리어에서 나온 임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도 한다. 신경증이 높은 사람은 일반적 커리어(지저분한 회사생활)에는 알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예술로 두각을 나타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자신이 잘났다고 믿고 그걸 힘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지만 조직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시사회에서 이런 특성은 항상 골칫거리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야망이 있어 보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직무적 성취는 외향성이 높은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보통 수준의 외향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큰 성취를 얻는다. 높은 외향성은 높은 감염율과 사고사망의 원인이자 깊은 고찰없는 빈껍데기같은 삶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커리어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럼 커리어는 만능인가. 커리어를 얻어도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 이외의 가치를 찾을 수 없어 좌절하고 커리어를 걷어차고 자신의 재능을 다른 방향으로 발휘하기를 선택하여 커리어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는반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가치가 반영되도록 약간의 변형을 주는 것으로 다시 만족을 얻은 사람도 있다. 또 커리어를 향한 전쟁에서 탈피해 자신들이 꾸려낸 가족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커리어에 인생에 바친 사람들이 불임에 시달리고 결혼 적령기를 놓치거나 커리어만을 위해 구축해놓은 견고한 가치관으로 인해 파혼하는 케이스도 많다. 반면 커리어 따위 신경을 안 쓰고 태평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태평하게 살던 날들 속에 갈고닦은 기술이 세계에 주목받아서 인기스타가 되기도 한다.

 더 높은 자리에선 이런 복잡성은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는 건 쿠데타 출신의 부모를 잘 만나서이기도 하고 양심을 다 팔아먹고 자신의 성공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CEO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고졸인데 자기 양심만 믿고 마음껏 살다가 그 행적이 인정받아서이기도 하고 탄핵 후 착한 구세주를 기다리는 대중에게 추대받아 권력에 대한 꿈도 꾸지도 않던 사람이 우연히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삶을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

 결론을 내리자면 경향은 경향일 뿐이다. 삶은 통계함수에 자신의 ingredient를 넣은 다음 결과가 짜잔 하고 나타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오만한 유물론적인 관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한국언론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분석이라 열심히 하는 것들이(이번 정부에 SKY출신이 얼마나 있는지와 같은) 얼마나 쓸모없이 느껴지는가. 결국 숫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를 알 수 없어서 좋은 학벌이나 좋은 직업을 선택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란 미신을 지지하는 교보재에 불과한 것이다.

 삶은 끝없이 시간과 환경, 기회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에 대한 감각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다잡는 과정이다. 인간은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통제 할 수도 없다. 이점은 약간 짜증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능케하고 그 겸손함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가끔 기적 같은 날이 오고 어느 순간에는 우주를 기적으로 체험하기도 한다. 경향성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도 자신의 근거도 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어떤 경기장에서 보내면 좋은지 고려하는데 쓸만한 참고 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 당신이 경향성에 관해 서술하는 자료에 좌절하거나 기뻐한다면 그 자료를 만들어낸 사람이 당신을 조정하려 하는 의도를 가졌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통계는 지금 당신이 느끼는 이 순간(심리, 마음)과는 무관하다. 그러니 연연하지 말고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또 숫자로 인생을 알 수 있다고 오만하게 굴지 말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론정리

1) 성격을 바꾼다는 관점에서 벗어나라. 대신 생각과 평가는 자신의 필요와 소망에 따라 바꿔라. 

2) 성공의 방정식은 알 수 없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세계에 어떻게 조명받을지는 천명에 달렸다. 

3) 그저 겸손하게 할 바를 다하라.


마지막으로


그냥 일어서라. 운이 안좋은 날은 그냥 훅훅 털고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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