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왜 미국 반인종차별 시위는 폭력적인 반면 우리의 촛불집회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졌을까? 이 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여기에 있다.
경찰의 폭력과 폭력시위
코로나19가 전 세계 사람들을 불신과 고립의 섬으로 몰아넣는 사이, 북미에서는 한 흑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고립의 섬에서 탈출하여 반인종차별 시위에 연대하도록 만들었다. 인권의 보편성과 천부성이라는,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간단하고 명료할뿐더러, 그 메시지가 갖는 도덕적 가치와 목표 역시 순수하고 고귀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 눈앞에 드러난 현실은 그만큼 우아하거나 고상한 모습은 아니다. 시위를 하는 시민들은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들과 폭력적으로 충돌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시위대들 중 중 일부는 값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이나 서민들의 생활용품을 다루는 곳까지도 파괴하고 약탈했다.
집단은 폭력적인가
여기에서 생기는 하나의 의문점은 “시위대들은 왜 폭력적인가?”이다. 이에 대해 오래전 르봉(Le Bon, 1895)과 같은 학자는 그 대답을 집단의 비이성적 본질에서 찾는다. 그들은 집단이 기본적으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얼마 전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촛불집회만 보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그 유효기간이 이미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설명은 시위대의 폭력을 그에 대한 공력권의 폭력적 대응에서 찾는 것이다. 미국 반인종차별 시위의 폭력성을 분석한 최근의 한 기사(한국일보, 2020, 6. 7일 자)에서 김호기 교수와 김석호 교수 등 두 사회학자는 평화적으로 시작한 시위가 그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공권력 때문에 폭력적으로 바뀐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타당하겠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폭동은 집단적으로 공권력에 대항하여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폭력 행위인데, 프랑스혁명처럼 역사적으로 이와 유사한 행위에서 출발한 혁명이 적지 않다. 여기에서 폭력의 시발점은 공권력이 아니라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있다.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쿠데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분석의 또 다른 한계점으로, 만약 시위대의 폭력이 공권력의 폭력적 대응에 의한 것이라면, 미국의 시위대들은 그들의 폭력을 경찰이나 군인과 같은 공권력에 한정해서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부 시위대들은 약탈, 방화, 파괴와 같은 폭력적 행위를 공권력과 무관한 사람들을 향해 저질렀다.
상황마다 다른 규범
그렇다면 왜 미국 시위대들은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심지어 공권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물건을 부수고 약탈할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사회심리학적 설명 중 하나가 규범출현이론(Emergent Norm Theory, Turner & Killian, 1972)이다. 즉,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적합한지 그에 대한 규범이 즉석에서 만들어지거나 구체화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미국 시위대에 적용해 보면, 공권력에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하다는 공유된 인식이 시위대들에게 생겼고, 그래서 그들은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근간에는 가깝게는 시위의 도화선이 된 흑인 사망 사건일 수도 있고, 좀 더 멀게는 지금까지 장기간 부당하게 받은 차별일 수도 있다.
상점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위가 공권력에 의한 작금의 차별에 대한 저항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오래 동안 당한 부당한 차별에 대한 보복이나 저항의 표현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파괴와 약탈이 정당하고 심지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비이성적인 폭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촛불집회도 다르지 않다. 수백만 명이 참가한 이 집회에서 폭력 행위로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0명이었으며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저지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은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정당성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러한 행동이 옳고 필요하다는 인식 즉 규범을 공유하고 있었다.
같은 사람, 다른 행동
반대로, 매년 여의도 벚꽃축제에 놀러 오는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자. 이 사람들도 동일한 시공간에서 벚꽃을 즐기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 또 하나의 집단이다. 그런데 촛불집회와는 달리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일 정도로 평소에 2배 이상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과 벚꽃축제에 놀러 온 사람인 완전히 다른 사람일까?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이 두 사례를 비교해 보면, 주어진 상황에서 작동하는 규범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변화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 부합하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규범을 만드는 것이 곧 발전이고 성장이다. 그러한 규범을 만드는 것이 곧 발전이고 성장이다. 그것이 쌓이면 지켜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 된다. mind
<참고문헌>
한국일보(2020, 6. 7일 자). 미국 인종차별 시위 격화에 재조명된 한국의 탄핵 촛불집회.
Le Bon, G. (1985). The crowd: A study of the popular mind. New York: Ballantine.
Turner, R.H., and Killian, L.M. (1972). Collective Behavior, 2nd ed. Prentice‐Hall, Englewood Cliffs, NJ.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 사회 및 문화 심리 Ph.D.
정태연 교수는 사회심리학의 주제 중 대인관계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하고, 현재 중앙대 심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사회 및 문화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기초로, 한국인의 성인발달과 대인관계, 한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리학적 지식을 군대와 같은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심리학」(2016), 「심리학, 군대 가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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