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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브잣나무 Jul 27. 2021

노래의 역사 Part.2

2018-03-13에 작성된 글.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영어 교육에 많은 중점을 두어 각종 영어 관련 행사들을 열곤 했었는데 그중 나의 이목을 끌었던 행사는 바로 <Pop-Song Contest>였다. 전교생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제목 그대로 팝송 부르기 콘테스트였다. 1학년 때는 없다가 갑자기 만들어진 대회였기에 많은 학생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팝송과 영어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도전해볼 만한 대회였다. 예선 대회가 코앞이었는지라 곡 선정이 시급했고 친한 친구들에게 곡 추천을 받았다. 함께 있던 친구 Y는 당시 자신이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인 <Glee>에서 접한 곡 중 나의 목소리와 잘 어울릴 것이라며 한 곡을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그때 추천받은 곡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곡인, 바로 ‘Defying Gravity’였다.


우리는 교실 책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핸드폰으로 노래 영상을 보았고 그 순간, 나는 그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고음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나와 찰떡같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학교 음악실에 몰래 홀로 남아 노래 연습을 한 것은.


연습하던 중 하루는 운이 좋게도 무료 레슨(?)도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께! 다니던 중학교 바로 옆에 고등학교가 붙어있었고 아마 음악실은 문 하나를 두고 같이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음악실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노래를 불러댔지만, 혹은 아무도 없기를 바라며 노래를 불러댔지만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께서는 근무하시는 와중에 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의 노래를 계속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연습 열심히 하는구나.”

한 번도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고 혼자 노래하던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인사를 했다.

악! 안녕하세요.. 여기서 연습해도 되나요?”


선생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 대신 나의 노래에 대한 코멘트를 몇 가지 해주셨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코멘트가 있었는데, 영어 발음에 관한 것이었다.


“영어 노래를 할 때 ‘t’ 발음이 끝에 들어가는 경우 ‘트’ 발음을 자연스럽게 강조해주면 훨씬 더 원어민과 흡사하게 들려. 예를 들면 단어 ‘Instinct’의 발음을 할 때 인스팅-트 가 되는 거지. 신경 써서 처음부터 한번 불러볼래?”


누군가에게 이런 구체적인 노래 팁, 심지어 노래할 때 영어 발음까지 코칭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선생님은 나의 노래를 다듬어주셨고 그건 나에게 꽤 좋은 도움이 되었다. 음악실에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 한 이후로 쑥스러운 마음에 다른 공간을 찾아 헤맸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학교 강당, 빈 교실, 과학실들을 찾아다니며 연습을 했다. 등교와 하교를 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가며 노래를 흥얼거렸고 저녁에 가던 학원을 마친 후에는 늘 그 노래를 들으며 집에 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해 본 적은 오랜만이었다. 열심히 연습하니 자신감도 붙었다. 그렇게 대회가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대회는 대예배당에서 진행되었다. (미션스쿨이던 우리 학교는 일부 건물들을 교회와 함께 공유했다.) 팝송 콘테스트는 <English Festival>이라는 행사에 포함된 대회였고 거의 마지막 순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어 골든벨, 영어 스피킹 대회 등 각종 행사가 진행되었다. 1500여 명의 학생들은 무대에서 어떠한 해프닝이 일어날 때마다 격한 호응을 보여주었다. 어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 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부담감 반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제 여러분들이 제일 기대하는 순서가 왔습니다! Popsong~contest!”

진행을 맡은 두 명의 학생이 팝 콘테스트의 시작을 알렸고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반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학교 합창단에 속해 다 같이 노래를 부른 경우는 많았지만 나 홀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대 옆에 있는 성가대 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외부와 연결된 문이 조금 열려있어서 찬 바람이 들어오곤 했고 그 덕에 몸과 마음이 긴장으로 얼기 시작했다.


그룹으로 나온 학생들, 솔로로 나온 학생들, 간단한 춤과 곁들어 노래를 하는 팀들.. 가지각색의 팝송을 준비한 참가자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내 순서가 다가올 때마다 입은 바짝바짝 말랐다. 참가자 중 좀 잘한다 싶은 학생들이 있으면 ‘제발 삑사리 나거나 가사 까먹어라’ 라며 사악한 소원을 빌기도 했다.


금방 다가온 나의 순서.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물을 한 입 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으며 엉덩이는 곧 의자와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2학년 박슬기 학생의 솔로 무대입니다! Defying gravity!”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응원의 환호성과 친한 친구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준비된 마이크를 잡고 암전이 된 무대로 올라갔다. 깜깜하고 조용해진 공간. 피아노 반주로 된 MR이 들려왔다.


‘그래, 연습한 대로만 하자. 가사에 집중하고. 당찬 레이철처럼.’ (미국 드라마 <Glee>에서 Defying gravity를 부른 캐릭터 이름)


음악 선생님이 알려주신 팁을 기억하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연습하면서 자신이 없었던 부분도 잘 이끌어갔지만 점점 말라오는 입 안과 풀리지 않은 긴장은 연습할 때보다는 좋지 않은 무대를 만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집중을 놓지 않았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고음 부분을 깔끔히 소화했다.


쏟아지는 박수들, 친구들의 열정 어린 환호. 연습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스스로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홀가분했다. 이제 남은 일은 다음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며 즐기는 일과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2등 상을 받게 되었고 덤으로 친구들의 부러움과 선생님들의 칭찬, 그리고 문화상품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Defying gravity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상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제2회 <Pop-Song Contest>가 열렸다. 제1회 콘테스트에서 느낀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였다.


3학년이 된 나는 조금 변해있었다. 계속되는 부모님의 싸움과 별거, 개인적인 고민들,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공부.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어떻게든 늦게 들어가기 위해 학교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는 했다. 즐거워서 하게 된 연습이라기보다는 유일한 도피였고 그 연습은 방황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나의 상황과 흡사한 가사의 팝송을 찾게 되었는데, 바로 Kelly Clarkson의 노래 'Because of you'였다. 그 곡은 어린 날 부모님의 이혼에 상처 입었던 가수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곡이었다.


아무도 없는 빈 강당에서 누가 볼까 노심초사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그 연습들에는 늘 눈물이 함께했었다. 가사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상황이었다. 그전까지 이토록 공감하며 불렀던 곡이 있었던가? 대답을 말하자면, 전혀 없었다. 사랑 이별 노래 따위들을 부르며 슬퍼했던 적이 있었지만 가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슬픈 멜로디에 취해 울컥했을 뿐이었다.


노래에 공감을 하니 가사 한 줄을 그냥 흘려 부르는 게 아까워졌다. 모르는 단어들이 있으면 제대로 알 때까지 익혔고 그 과정들은 공부라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의 고통을 노래로 말하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흐르고 노래는 불러진다. 다가온 경연대회. 타고난 목소리를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들이 나의 고통을 들어주길 바랬다.


코믹한 시작이었다. 미리 준비된 재치 있는 영어 자기소개 영상이 나왔고 무대 위에 올라온 나를 환호해주는 친구들을 향해 ‘브이’를 날렸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담담하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야.’


누가 코치해주지도 않았고 다듬어주지도 않았지만 나름의 설계를 해갔다. 그 설계라는 게 그다지 구체적이거나 전문적인 건 아니고 단지 내가 가사에서 느끼는 감정의 기복을 기반으로 기승전결을 구성한 것이었다. 그 설계와 가사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노래 불렀다.


“And now I cry in the middle of the night for the same damn thing”

노래의 절정 부분에서 온 마음을 담아 목소리를 쏟아내었고 친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순간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그들이 나의 상황을 알고는 박수로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호흡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갈 길이 먼 아마추어였다. 음이 떨리고 어긋났다.


시간이 지나고 많이 듣게 된 조언이 하나 있다. 노래할 때 슬퍼도 자신이 울어서 노래가 흔들리면 관객들이 슬퍼하기는커녕 집중이 깨져 잘 컨트롤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 무대에 대한 후회는 남지 않는다. 처음으로 공감하고 진심을 다해 부른 곡이었으니까.


결과 또한 1등이었다. 지치고 힘든 내게 주어진 보상 같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나에게 주어진 큰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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