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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브잣나무 Jul 27. 2021

공기업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2018-08-31에 작성된 글

내가 다녔던 서울 방송고등학교는 ‘선(先) 취업 후(後) 진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방송영상과, 방송콘텐츠과, 방송시스템과, 방송연예과 이렇게 총 4개의 학과로 이뤄져 있었으며 졸업 후 취업을 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생들보다 조금 더 많았다. 심지어 내가 속했던 방송연예과에는 재학 중 이미 현장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아예 다른 길로 전향하는 학생들 또한 있었다. 취업률을 높이는 게 목표였던 학교인 만큼, 전공과는 상관없는 공기업이나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잘 마련되어 있었고 이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만든 반을 '공개 채용반'이라고 불렀다. 기업에서도 특성화 고등학교 출신 혹은 고졸학생들을 위한 전형이 따로 있었고 이런 정보들은 고3을 앞둔 내게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


뮤지컬밖에 모르다가도 막상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현실이 다가오니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바로 여기 안정적인 곳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높고 험하게만 느껴졌다.


공개 채용반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내게 취업을 하되 취미로 뮤지컬을 하는 게 어떠냐고 강력히 제안했다. 예체능 쪽 분야는 워낙 경쟁률도 높고, 좋지 않은 소문들도 넘쳐나는 데다 돈과 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엄마의 의견이었다. 그럴 바에는 낮에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동아리 같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나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또한 괜찮을 것 같다며 공개 채용반에 대한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학교에서 받은 상이 많고 학생회와 선도부 경력이 있으며 내신 성적이 좋았던 나는 고졸 취업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그렇게 선생님은 따야 하는 자격증들과 공부해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친한 친구였던 C는 나를 말렸지만 당시 돈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던 나는 결국 공개 채용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같은 반에 공개 채용반을 준비하기로 한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방과 후에 연습실로 올라가 무용, 보컬 수업을 들을 동안 그 친구와 나는 독서실로 내려가 공기업/대기업 취업을 위한 공부를 했다.


그렇게 몇 주는 잘 버텼던 것 같다. 그저 시키는 공부를 하고 내신 관리를 하며 같이 공부하는 공개채용반 친구들과도 재밌게 지냈다. 저녁을 먹으면서 ‘언제 끝나냐.’ ‘빨리 끝나고 집 가고 싶다.’ 등의 말을 하면서도 끝까지 공부하고 즐겁게 하교했다.


하지만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몸이 찌뿌둥한 느낌을 받았고 그러면서 드는 생각.

‘반 애들은 지금 위에서 무용 수업 듣고 있겠지? 재미있겠다.’


문득 가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무용하는 친구들을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손에 잡고 있던 샤프를 내려놓고 의자를 소리 나지 않게 살짝 뒤로 뺀 뒤 까치발로 살금살금 독서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무용 실습실이 있는 5층까지 우다다닥 순식간에 달려갔다. 그리고 문에 나 있는 조그마한 유리창으로 수업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왁자지껄한 소리들. 저곳에 미친 듯이 속해있고 싶었다.


그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그리고 나를 눈치챈 친구들이 ‘들어와’라고 말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문을 살짝 열어 연습실을 들여다보았다. 주황색 조명을 틀어놓은 실습실 안은 춤을 추던 친구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문 틈 사이로 친구들에게 시선을 보내는 나.


“어, 슬기다!”

“야~ 들어와!”


친구들과 선생님은 나를 발견하고선 들어오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문을 활짝 열고 연습실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는데, 갑자기 복받치는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나는 원래 여기 있어야 하는데, 여기 있고 싶은데..’


울컥함과 답답합에 주저앉고는 펑펑 울면서 “나도 여기서 무용 수업 듣고 싶어”를 네댓 번 말했다.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하나둘씩 다가왔고 나를 토닥여주며 "그럼 같이 하자" 고 말했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공개 채용반을 그만 둘 궁리만 하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깨달았고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엄마한테는 어떻게 이야기하지? 공개 채용반 선생님께는 뭐라고 하면서 그만둔다고 해야 하지? 취업공부를 억지로 하라면 할 수는 있었지만 내게는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저 위에서는 좋아하는 수업들이 매일 진행된다니 억울한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두 달이 안되어서 나는 담당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다시 원 상태로 복귀했다. 엄마한테도 내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감당하겠다고 했다. 되돌아보니 나름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대로 계속 공개 채용반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안정적이고 튼튼한 기업에 다니고 있을지 몰라도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였다면 아무리 좋은 곳에 취업을 했어도 얼마 못 가 퇴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좋은 곳에 취업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모든 미래는 불확실하다. ‘안정적이다’라는 건 사실 없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에 자신이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차라리 그걸 하는 게 훨씬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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