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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브잣나무 Jul 27. 2021

지기 싫은 마음

2018-03-16에 작성된 글.

초등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은 무척 많았다. ‘슬기로운 생활’, ‘다슬기’ 등 슬기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별명들도 있었지만 실제 불리던 대부분의 별명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너 죽고 싶냐!”


앙칼지고 다부진 목소리. 질끈 묶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복도를 활개 치고 다니는 12살의 나.

“으악! 조폭 마누라다!”

킬킬거리며 뛰어가는 짓궂은 남자아이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깡마른 한 여자아이에게 제압당하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


어릴 적 나는 남자아이들과 곧장 잘 지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티격태격 자주 싸우며 놀았다. 그들은 나를 놀리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그들을 응징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탓에 붙여진 별명들은 무려 10가지가 넘는다. ‘HP무한’, ‘조폭 마누라’, ‘무적의 사나이’, ‘불멸의 사나이’, ‘전설의 사나이’ 등.. 죄다 하나같이 과격하고 마초적인 별명들 뿐이다.


그들이 그런 별명들로 놀릴 때마다 나는 싫다는 듯이 잔뜩 찡그린 표정을 하고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고는 했다. 엄청 마른 몸이었지만 워낙 활동량이 많기도 했고 운동을 좋아했기에 또래 여자아이들에 비해 힘이 센 편이었다. 그랬기에 웬만한 또래 남자아이들과 힘을 겨뤄도 맞먹을 정도였다. 그들은 그런 나를 무서워했지만 동시에 나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매일 같이 놀리고는 했다. 그들은 놀리고 나는 응징하고. 초등학교 시절 나의 일상이었다.


지금에서야 나의 진심을 말하자면, 사실 그 별명으로 불리는 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즐겼다. 심지어는 그런 별명을 가진 내가 자랑스러웠고 그들이 계속 그 별명으로 나를 놀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싫은 척을 했고 그 싫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들이 나를 놀리는 별명의 성격을 띄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 별명이 좋은데, 싫은 척하고, 그 별명처럼 굴고. 심리학을 배워야 이런 심리를 알 수 있으려나. 하지만 다른 곳에서 해답을 얻고 싶지는 않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내자식 같다는 말을 매일 같이 듣고 자라곤 했다. 나의 ‘사내자식 같은’ 성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건 아마도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친오빠의 존재였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오빠의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았고 오빠를 따라 태권도를 배웠으며 오빠가 보는 애니메이션을 보곤 했다. 물론 나에겐 엄마가 사 준 바비 인형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그런 ‘여자 아이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는 걸 들키는 게 싫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잘 보지 않을 때 몰래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굳이 몰래 가지고 놀던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 당시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던 색깔, 장난감, 오락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면 혐오했다. 다행히 그때의 생각들은 꽤나 선명하게 남아있어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부모님께서 책가방을 사 주신다고 했다. 아마 엄마와 함께 매장에 갔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 아이들을 위한 가방 코너에는 온통 핑크 빛에 레이스가 잔뜩 달려있고 공주 그림이 그려진 가방들 뿐이었다. 어디에도 초록색이나 파란색 바지를 입은 공주는 없었다.


결국 공주 그림 그려진 분홍색 가방이 싫다고 엄마한테 울면서 막 떼를 썼던 게 기억이 난다. 본능적으로 나의 성별에 맞게 강요되는 것들을 거부했던 걸까? 참다못한 엄마는 ‘다른 여자애들은 다 이런 거 좋아하는데 너는 왜 그러니?’라고 하셨고 나는 ‘사람 취향이 모두 같을 순 없잖아요.’라는 말을 내뱉기엔 너무 어렸고 생각 없이 본능에 충실할 나이였다.


색깔뿐만이 아니었다. 여자 아이들과 조용하게 놀기보다는 오빠와 함께 놀이터에서 동네 남자아이들 무리에 속해서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어쩔 때는 여자 아이들 무리를 엄마가 종종 하던 말인 '남자아이들에 비해 의리가 없고 속이 좁다.'라는 말로 비판하기도 했으며 일부러 털털하게 보이기 위해 내가 가진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쌓이다 보니 부모님은 나에게 ‘기집애가 그게 뭐냐.’, ‘넌 여자애가 왜 그러냐’라는 말들을 줄곧 하셨다. ‘기집애/여자애’ 같은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말 때문에 더욱 ‘기집애’ 가 되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내자식 같다는 게 칭찬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여성스럽다/기집애같다/여자애같다 라는 말이 결코 매번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는 지금도 나에게 ‘여자애가 애교가 없다.’ 고 하지만 나는 애교를 부리는 행위가 곧 피권력자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나의 발 사이즈가 크다며 (심지어 240mm로 큰 편도 아니었다.) ‘가스나 발이 그게 뭐냐.’라고 했고 나는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려면 수많은 틀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또한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늘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 어른들과 남자아이들, 그리고 늘 요리를 하고 전을 부치는 여자 어른들과 여자 아이들을 보며 더더욱 ‘여성스러운’ 삶을 살아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오빠와 내게 주어지는 일들은 조금 달랐다. 엄마가 가족 전체의 빨랫감을 널거나 갤 때면 항상 나만 부르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귀찮음 반, 의구심 반으로 엄마에게 물어보고는 했다.


“왜 오빠는 안 시켜요?”

그럼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오빠는 남자잖아. 남자애들은 이런 거 잘 못해.”


하지만 성격이 그리 순하지 않은 나는 항상 그 말에 대들곤 했다.

“그건 해 봐야 알죠. 그리고 여자들은 뭐 다 잘하나?”


엄마는 단지 내가 집안일을 돕기 귀찮아해서 그런 식으로 대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나는 정말 궁금했다. 과연 남자들이 못 해서 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불편한 의구심.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때부터 '사내자식'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남자아이들처럼 굴어야 여자아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의무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기에 여자아이들에게 강요되는 색과 장난감과 놀이들이 싫었고 어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반항의 수단은 오직 남자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을 좋아하는 '척'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정말 좋아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랬기에 이미 남자 아이화 된 내가 여자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들을 좋아한다는 건 무척 자존심 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세일러문>의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었으며 바비 인형을 사 달라고 부모님께 말하고 싶었다. 내가 애교가 많아서 그런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세일러문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바비 인형의 옷을 다양하게 갈아입히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런 나의 행동은 여자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없어진 것 같다. 나를 과격하게 놀리는 아이들은 없었고 여자아이들과는 싸울 일도 없었다. 그렇게 지기 싫은 마음을 점점 잊어나갔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지기 싫은 마음' 이 사라졌을 리는 만무하다. 지기 싫은 마음과 나의 진심을 구별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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