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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브잣나무 Jul 27. 2021

곱슬머리

2018-03-22에 작성된 글.

"아아아악! 다 뜯어버리고 싶어!"

비명을 지르고 울고 불다가 눈을 떠보니 내 손에 쥐어진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들.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하루는 매일 절규와 함께 시작되었다.


겨우 일어나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하고 교복을 입은 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이 단계까지는 늘 괜찮다. 문제는 마지막 단계인 머리 손질. 빗을 들고 거울 앞으로 가는 동시에 비치는 나의 모습에 일단 마음이 답답해진다. 한숨을 크게 쉰 뒤 부스스한 사자머리를 천천히 빗어 나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엉켜서 아무리 빗어도 부드럽게 빗겨지지 않는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겨우 빗질을 마치면 팔이 약간씩 아려오기 시작한다. 주변에선 대부분 빗질만 하고 외출한다던데 나도 그렇게 하고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 상태로 나갔다가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온 머리에 받을 것임에 틀림없었기에 고데기의 전원을 켰다.


뜨거워진 고데기로 겉으로만 보이는 곱슬머리들을 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데기도 나의 악성 곱슬 머리카락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여기서 열이 뻗치기 시작한다. 손에 잔뜩 힘주어 머리카락을 쫙쫙 피는데 동시에 느껴지는 팔의 고통에 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열기가 지나간 머리칼은 펴지긴 펴졌지만 지지직거렸고 그 모습조차 보기 싫어서 짱짱한 고무줄을 들고 그냥 하나로 묶어버린다. 이게 나의 아침 일과 시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동시에 가장 소용없는 시간이었다.


내 머리카락이 원래 이랬던 건 아니었다. 사춘기 이후로부터 였을까. 가늘고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소유하고 있던 내게 어느샌가 곱슬거리고 푸석한 머리카락이 찾아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호르몬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전까지 내게 콤플렉스란가 딱히 없었다. 예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 모습에 충분히 만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놈의 곱슬머리가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어떻게 꾸며도 머리카락이 고불거리는 탓에 얼굴이 못생겨 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사자 갈기처럼 부풀어 있는 머리카락. 어떻게 빗어도 차분해지지 않는 머리. 묶어도 지직 거리는 잔머리들. 고데기로 매일 펴 봤자 아무런 효과도 없이 머릿결은 더욱 상해갔다.

학교에서 내 별명은 ‘헤그리드, ‘빗자루’, ‘꼬꼬면’, ‘폭탄머리’. 모두 다 푸석거리는 내 머리카락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학교에서는 여자아이들끼리 서로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기도 했는데 친구들이 내 머리카락을 만질 때마다 “어떻게 머리카락이 이럴 수 있지?”, “이런 머릿결은 처음 봐.”, “만져봐! 완전 수세미 같아.”라고 하며 신기한 생명 보듯이 바라봤다. 하도 놀려 대서 누가 만지러 다가오기만 해도 "만지지 마!" 하며 버럭 했던 것 같다.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만 갔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곱슬머리 피는 법’ ‘머릿결 좋아지는 법’ ‘생머리 되는 법’ 은 다 검색해 봤던 것 같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삭발, 모발 이식, 그리고 매직 스트레이트 펌. 사실 진지하게 삭발을 고민하기도 했다. 새로 자라나는 머릿결이 굵게 나면서 곱슬의 정도가 약해진다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나에게 무모했고 결국 얼마 안가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기로 결정했다. 머리를 피러 동네 미용실에 찾아갔다. 처음 보는 미용사 언니는 내 머리카락을 살펴보며 "이건 매직이 잘 안 먹을 것 같은데. 곱슬 상태가 심각하네요."라고 말했다.

처음 보는 미용실 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창피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 머리카락이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그래도 한 두 달 정도는 가겠죠..?"

"글쎄요, 이 정도면 며칠 안 가서 풀릴 것 같긴 한데.. 해 보면 알겠죠."

"해 주세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지독한 약 냄새와 지끈거리는 두통을 견뎌내고 난 후의 머리 상태는 생각보다 성공적이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 찰랑거리는 머릿결!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걸 어째! 사흘도 안가 파마가 풀리기 시작하더니 곱슬머리도 아니고 생머리도 아닌 이상한 모양을 한 머리카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니 원래 나의 머리카락이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두피 쪽은 곱슬곱슬하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쫙 펴진 모양을 가진 괴상한 형태가 되었다.


아. 이건 답이 없다. 어떻게 스타일링해도 답이 없는 내 머리를 보면 볼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엄마는 "여자애 머리가 이래서 어떡하냐"며 걱정 반 놀림 반의 어조로 말하고 했다. 가뜩이나 화가 나 죽겠는데 엄마가 옆에서 놀리니까 기분이 확 상해서 따졌다.


"엄만 왜 저를 이렇게 낳아 가지고! 아침마다 짜증 나 죽겠어요!!!"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

"니 머리카락이 나 닮았냐? 니 아빠 닮았지?"


아, 맞아. 아빠가 곱슬머리라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거잖아! 이번엔 아빠한테 간다.

"아빠! 제 머리카락 다 아빠 닮아서 이렇게 맨날 스트레스받잖아요!!!"

"어쩌라고."

"못생겨 보이잖아요!!!"

"내가 못생긴 거 아니니까 괜찮아!"


부모님은 아무도 자기 탓이 아니라며 무관심한 태도로 응했다. 물론 거기서 "다 내 탓이다 슬기야 너에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나도록 각종 린스와 트리트먼트를 섭취했어야 했는데. 죽을죄를 지었다."라고 하셨더라도 기분이 절대 좋아지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 못난 머리카락은 누가 책임져?


지나가던 오빠의 한마디

"니 성격이 안 좋아서 머리카락이 그렇게 나는 듯.ㅋ"

"조용히 해!!!"


같은 배에서 태어난 오빠의 머리카락은 그 누구보다 찰랑거렸다. 곱슬머리라는 고통을 겪지 않은 오빠가 그런 망언을 해대며 놀리니 나의 짜증 게이지는 높아져만 갔다.


나 스스로의 콤플렉스도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열 받아서 참 많이도 싸웠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누구에게도 화낼 일이 아니었고 화낸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놀리면 화가 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농담할 수 있는 정도로 진화했다. 하지만 곱슬머리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예를 들면 공연 연습을 할 때. 공연 당일에는 머리 드라이라도 할 수 있는 여건과 의무가 주어지지만 매일 진행되는 공연 연습 때는 머리카락을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덕분에 웃지 못할 사건도 생겼다.


학교에서 올리는 뮤지컬 공연을 연습하던 날이었다. 사회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하고 모자를 써야 하는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는데 남자 주인공이 로맨틱한 대사를 하며 모자를 벗기고 키스를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을 처음 연습하는 날이었는데 '모자를 벗긴다`라는 지문을 본 나는 그 장면 연습 일주일 전부터 혼자만의 스트레스에 휩싸였다. 다른 장면에서는 머리카락을 묶은 뒤 가발을 쓰고 등장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었는데 모자를 벗기는 순간에는 풀러져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할 때문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어야 했는데 숏컷에 곱슬머리면 긴 머리에 곱슬인 것보다 훨씬 잘 뜨고 잘 부풀어 오른다.


연습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어떤 대책이라도 세워야 했다.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기에는 머릿결이 너무 많이 상함을 느꼈고 효과가 전혀 없었기에 대학 들어오고 나선 그 방법은 포기했었다. 고데기로라도 머리를 정돈해야만 했다. 급하게 머리를 핀 뒤 모자를 눌러썼다. 모자를 벗긴 후의 머리 상태도 확인하기 위해 썼다 벗었다 가상 시뮬레이션을 몇 번 해본 뒤 연습실로 올라갔다.


드디어 장면 연습. 한창 아련한 장면이다. 여자 주인공의 정체를 알게 된 뒤 그녀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할 각오가 있고 그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

상대 배우가 말했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던 난 신경 쓰지 않아요."

(모자를 벗긴다)

훽!

....

찰나의 침묵. 곧이어 연습실에 있는 사람 모두가 격하게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이 왔다. 분명 내 머리카락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확인까지 다 했는데?


그 와중에 날 진지하게 바라보는 남자 주인공. 우리 둘만 제외하고 모두가 끅끅대며 웃고 있었다. 피아노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전멸 상태였다. 이제 키스신인데? 어떡해!

어떨지도 모르는 내 머리카락 모양과 그걸 보며 웃음을 참는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아련하게 나를 바라보는 저 친구의 눈빛과 곧 이어질 진지한 키스신을 상상하니 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꾸물꾸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사 좀 봐! 어떤 모습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니! 지금 내 모습은 너무하잖아?


‘안 돼! 참아야 해! 장면 연습 중인 데다가 쟤는 저렇게나 진지한데! 프로처럼 넘겨내자! 슬픈 생각 슬픈 생각… 장면에 집중해!’

하지만 계속 들리는 웃음 참는 소리와 그로 인해 밀려오는 거대한 웃음 파도는 나를 집어삼켰다.

“풉.”

내가 웃자 기다렸다는 듯이 깔깔 웃어대는 사람들. 앞에서 지켜보던 연출부도 이미 웃는지 우는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달려가서 내 머리 모양을 확인했다. 와. 안 웃고 진지하게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본 상대 역할 친구가 대단할 정도였다. 이미 풀려버린 고데기와 모자를 벗겨내는 동시에 생성된 정전기가 내 머리카락들을 공중에 띄어 놓았던 것이다. 그것도 세 파트로 여기저기 나눠져서! 마치 거대한 포크 같았다.


그 후로 그 장면을 연습할 땐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가 이런 내 머리카락에 익숙해지기로 했고… 나도 조금 더 신경 써서 손질을 하기로 했다. 비록 내 별명은 까마귀가 되었지만 공연은 잘 올릴 수 있었고 덕분에 즐거운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곱슬머리를 기르고 있다. 아직 짧은 단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머리를 풀고 다니기에 민망하지만 고데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나의 머리카락 생명줄이라고 여겨왔던 고데기를 사용하지 않게 된 건 뉴욕에 갔다 오고 나서부터 였다. 그곳에는 곱슬머리들이 참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머릿결을 보기도 했다. 아마 많은 인종들이 있고 그들 모두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도시이기에 가능한 스타일링이었겠지만.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태어났다면 고데기를 매일 하면서까지 머리카락 모양에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아마 아니었겠지. 곱슬머리에 대한 나의 스트레스는 과연 누가 만들었던 것일까? 신기한 것 마냥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들? 못생기고 좋지 않은 머릿결이라고 생각하는 가족들의 인식? 예쁘게 스타일링 된 찰랑찰랑한 머릿결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대중 매체? 인터넷에 ‘곱슬머리 피는 법’이라고 치면 나오는 무수한 후기와 정보들? 자신들도 모르게 생머리가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그 인식들을 학습한 나의 열등감과 창피함? 아마 전부 다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내 곱슬머리를 보며 "곱슬머리는 고집 엄청 세다던데." 라며 편견 가득한 말로 내게 상처를 주었던 반면 누군가는 "곱슬머리는 예술가의 머리카락이래." 라며 평생 마음속에 두고 자존감을 높여줄 말을 해주었다. 고데기를 하지 않고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해서 곱슬머리가 주는 스트레스가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아침에 고생을 하고 가끔씩은 찰랑거리는 머릿결로 태어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점점 깨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내 인식의 틀,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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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곱슬머리들을 위한 팁.


아쉽게도 한국 포털사이트에는 천연 곱슬머리들을 위한 팁들이 많이 나와있지 않다. 해외에 비해 곱슬머리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훨씬 적기도 하고, 그 드문 사람들마저 거의 머리를 피고 다니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9일의 추가글 :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곱슬머리 한국 여성들이 자신의 curl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공유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구독하고 있는 곱슬머리 유튜버 분들이다. <박채소>, <연짜이>, <곱슬머리로에>

세 분 다 curl pattern이 달라서 자신과 비슷한 컬을 가진 유튜버분들의 영상을 찾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서 곱슬머리 관리법의 답을 찾았다. ‘How to fix frizzy hair’이라고 검색하면 수분이 부족한 푸시시한 머리를 위한 관리법이 나오고 ‘How to care curly hair’ 이라고 검색하면 다양한 곱슬머리의 사람들이 헤어 시술 없이 건강한 모발을 유지할 수 있는 각종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많은 영상들과 글을 섭렵한(!) 나에게 유용했던 곱슬머리 관리 팁을 몇 가지 말해보고자 한다.

1. 설페이트/실리콘이 첨가되지 않은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2. 머리를 말릴 때 극세사모로 된 수건으로 말린다. 말릴 때 머리카락을 비비지 말고 그저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말린다. (정전기가 생기지 않고 컬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다!)

3. 절대 빗질하지 않는다. 생머리는 상관이 없지만 곱슬머리에 빗질을 할 경우 컬이 바로 풀리고 푸석해진다. 빗질할 거면 머리를 감을 때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선택사항이다.

4. 코코넛 오일이나 아르간 오일(또는 알코올/파라벤/에탄올 등이 없는 에센스나 세럼도 괜찮을 것이다.)을 머리카락에 묻힌 뒤 쥐었다 폈다한다. 자메이칸 캐스터 오일도 좋다.

5.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면으로 된 티셔츠로 머리를 감싸 5~10분 동안 고정한다.(곱슬의 모양이 잡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외에도 컬을 잡아주며 머리를 말려주는 디퓨저나 곱슬의 모양을 보존하게 해주는 스타일러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저 5개만 실행해 보았을 때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나와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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