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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브잣나무 Jul 27. 2021

교복 바지

2018-01-24에 작성된 글.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무려 1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여자 중학교였고 동시에 어마 무시한 규정으로 동네에서 유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게 꼭 있어야 하나?' 싶은 규정들이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똥머리 금지, 머리카락 길이가 어깨선에 닿으면 묶기, 살색/검정 스타킹 착용 금지 (진회색 스타킹만 가능했다.), 무늬가 없고 발목을 덮는 흰 양말 외에는 착용 금지, 구두(학생화) 신기, 겨울에 패딩 착용 금지(모직 코트만 허용), 치마 길이는 무릎 반 이상 넘어가게 입기, 손톱 짧게 유지하기 등등... 염색, 파마, 액세서리 착용은 당연히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저걸 다 지키며 어떻게 살았나 싶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다녔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품었던 한 가지 욕망이 있었다!

+++++교복 바지를 입고 싶다!!+++++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자전거 통학을 했지만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며 나아갈 때면 앞 뒤로 주름진 치마가 펄럭거리며 의도치 않게 다리가 드러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한 손으로 치마를 부여잡아야 했다. 그때부터 한 손으로 자전거 타기 스킬을 습득했던 것 같다. 학교의 3분의 1 정도 되는 학생들이 자전거 통학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들 모두 한 손 자전거 타기 정도는 거뜬히 해낼 것이다.

둘째, 추웠다. 한겨울에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걷거나/ 뛸 때면 다리는 얼어붙었다. 스타킹 하나로는 살을 에는 바람을 견디기 힘들었다. 너무 추워서 몰래 체육복을 치마 안에 입고 교문 앞에서 급하게 올리는 모습을 들켜버리는 날엔 벌점을 피할 수 없었다.

셋째, 불편했다. 언급했듯이 앞뒤로 주름치마에 무릎을 덮는 길이의 치마였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면 치마를 품에 안고 있어야 했다. 말 그대로다. 치마를 모아서 꼭 붙든 뒤 품에 안았다! 그 외에 치마가 주는 불편함은 여자들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그래서 난 선도부 선생님께도 부탁해보고, 교장선생님께 <교복 바지를 입어야 하는 10가지 이유>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그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거나 흉터가 있는 학생들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흉터가 있다고 거짓말을 쳐 볼까 하는 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커다란 의문이 들었다. 왜? 왜 그들만 가능한 거지? 그리고 바지를 입는 학생이 있다면 전교생이 그 학생의 다리에 무언가 있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억울함과 분노와 걱정스러움이 동시에 들었고 나의 의구심을 해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규율이니 따르라, 였을 뿐.

실제로 학교에서 교복 바지를 입는 단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를 발견하게 된 이후로부터 나는 가끔 그 친구의 숨겨진 다리에 대해 몰래 궁금해했다. ‘왜 저 아이만 입고 다니는 거지?’  ‘다리에 끔찍한 흉터가 있는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 아무도 밖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 아이가 지나갈 때마다 ‘쟨 뭐지?’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는 했다.

나 또한 그 아이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분명 그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이 글을 빌어서라도 사과하고 싶다.


많은 불편함이 있어서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니는 학생의 다리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전교생이 다 알도록 만들었다. 그 구조 속에서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결국 중딩 슬기의 교복 바지 입기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고딩 슬기의 교복 바지 입기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물론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학생이 한 명도 없었기에 선생님들께 허락을 받아야 했지만 애초에 학교 규정이 꽤 자유로운 편이었고 남녀 공학이었기에 교복 바지가 허용되었다. 바지를 입고 등교하는 날이 많아졌고 나를 따라 교복 바지를 구입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복 바지 또한 그렇게 편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냥 교복은 어느 정도 다 불편한 거였다.

지금 난 교복을 벗었다. 하지만 아직도 교복을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대딩 슬기의 교복 벗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쭉 진행될 것이다. 평생!

P.S. 그렇다고 내가 치마를 싫어한다는 게 아니다. 멋 낼 때 입는 짧은 치마 그리고 여름에 입는 얇고 긴치마를 매우 사랑한다. 하지만 전 그때 바지를 입고 싶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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