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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브잣나무 Jul 27. 2021

수학에 흥미는 없지만

2018-03-12에 작성된 글.

고등학생 이후의 나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를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별로 없었다. 피아노를 포함한 악기 연주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음악은 그냥 들리면 듣는 거였고 노래에도 별다른 열정이 없었다. 연습을 하는 경우도 드물었고 그저 주위 어른들이 어린아이 북돋아주기 용으로 했던 노래 잘한다는 소리에 나중에 가수'나'하면 되겠지 하는 허황된 미래를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튼튼하고 좋은 목소리는 분명 엄마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성악 전공을 하신 엄마는 나중에라도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면서 오빠와 나를 위해 직접 피아노를 가르쳐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고 게을렀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 당시에는 피아노를 치기가 그렇게도 싫었다.


초등학생 시절 일주일에 2-3번씩 엄마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지만 그중 많은 시간이 다툼으로 소비되었다. 그 다툼의 대부분은 내가 연습을 잘 해오지 않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수업에서 내준 과제를 평소에 열심히 하지 않아 연습량이 부족했던 나는 엄마와의 수업에서 버벅대기 일쑤였다.


피아노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몰랐을뿐더러 흥미를 전혀 붙이지 못했다.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단 수업에서 요구되던 멜로디가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피아노 스케일 연습을 위한 필수 교재인 ‘하농’ 은 같은 멜로디를 반복 연습하도록 되어있는 악보인데 당시 나에게는 그 연습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계속되는 오빠와의 비교. 실제로 오빠는 나보다 피아노 앞에 자발적으로 붙어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그랬기에 우리의 피아노 진도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나보다 5배는 성실한 오빠는 늘 연습을 열심히 해서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내가 혼날 때마다 항상 그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오빠는 항상 자기 할 거 딱 연습해서 오는데 넌 도대체 왜 이러니?"

“오빠는 벌써 체르니 50 마쳤는데 넌 언제 할래?”

“오빠는…”


“아,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가 그 말을 꺼낼 때마다 나는 더욱 심하게 반항했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엄마는 미래의 나를 위한 마음으로 시간과 재능을 투자해 가르쳐 주신 거지만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분명 그 점이 답답하셨을 테고 그 답답함의 표출은 곧 싸움으로 이어졌다. 피아노 수업 시간의 3분의 1 정도는 아마 울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싸움이 지속되자 원래 좋지 않았던 피아노와 나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엄마도 나를 슬슬 포기하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엄마의 피아노 수업은 중단되었다.


신기하게 오히려 누군가의 간섭이 없어지니 피아노에 붙어있는 시간이 늘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이후에 음악을 듣다가 치고 싶은 곡이 생기면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아 똥땅거렸고 그 연습량은 적어도 엄마와 수업할 때 보다 많았다. 물론 또 엄청 열심히 친 건 아니었지만.


음악에 푹 빠져 틈날 때마다 피아노와 꼭 붙어있는 지금의 나로서는 무척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지금 상태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감사합니다 하며 열심히 쳤을 텐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비슷한 사례로 수학 점수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다. 초등학교에서 전교 석차에서 놀 정도로 공부를 곧장 잘했던 나는 모든 과목의 점수가 우수했다. 딱 한 과목만 빼고. 바로 수학이다. 고학년이 될수록 어려워지는 수학 문제에 풀고 싶은 의욕이 떨어졌을뿐더러 소질도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80점대로 떨어지던 과목이었는데 그 80점은 부모님의 기준에서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점수였다.


당시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이제껏 다닌 학원 중 제일 재미있게 다녔던 만큼 태권도를 좋아했다. 흰 태권도복을 입고 날이 갈수록 달라지는 색깔의 띠를 허리에 질끈 매고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심지어 소질도 있었다! 깡다구가 있고 날렵한 몸을 가졌던 나는 남자아이들과 겨루기를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태권도 학원을 일정 수학 점수 이상 넘지 못하면 그만두게끔 한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우린 이 문제로 엄청 싸웠다. 나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수학 과목의 점수를 높이고 싶지 않았고 높일 자신도 없었다. 그저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태권도 학원에 계속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완고했다. 그 완고함의 배후에는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오빠가 있었다. 오빠는 늘 수학 점수 100점을 받아왔고 전국 석차 100위안에 들기도 했으며 지금은 명문대 공대에 다니고 있는 인재이다. 나는 유독 수학 점수가 잘 나오지 못했으며 그런 내가 오빠와 비교당하는 건 일상이었다. 아니, 비교 대상 수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닌가.


눈물과 회초리를 넘나드는 긴 싸움 끝에 나는 엄마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다음 시험에서 수학 90점을 무조건 넘겨야 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죽어라 공부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태권도를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즐거움을 위해서 쓴 맛을 굳이 견뎌야 했던 것일까. 나는 인생의 낙을 포기할 수 없었고 열심히 수학 문제들을 풀었다. 다행히 성적은 커트라인 이상이었고 엄마는 자신의 작전이 통한다는 걸 아셨는지 그 뒤에도 조건을 거셨다. 하지만 그 작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기도 했고 수학에 대한 흥미는 점점 더 떨어져 갔기 때문이다.


여전히 다른 과목의 점수들은 90점 이상을 유지했지만 끊임없이 수학 점수로 고통받았고 결국 2학년 1학기, 수학 48점을 받는 사상 최악의 점수를 받게 되었다. 같은 날, 오빠는 수학 100점을 맞아왔다. 성경책에 있는 악보로 찬양을 부르던 엄마의 곁에 다가가 울면서 수학 점수를 고백했고 엄마는 앞에 놓은 성경책을 탁 접더니 그걸로 내 머리를 퍽. 때리셨다... (같은 날, 나의 도덕 점수는 100점이었고 엄마의 도덕점수는...)


가끔 엄마에게 “그때 저를 왜 때렸어요. 수학 점수가 그렇게 중요했어요?”라고 묻고는 한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수학 점수와 전혀 상관없는 길이다. 반면에 끊임없이 나와 비교가 되었던 오빠는 정말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주어진 재능이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 부모님은 나에게서 오빠의 재능과 모습을 기대했다.


당시 나에게도 남들보다 잘할 수 있었던 게 두 가지 있었는데 바로 노래 부르기와 철봉을 이용한 묘기였다.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재능들은 오빠에게 강요되지 않았다. 학벌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좋은 대학에 가는 데 아무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재능들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흥미 없는 경쟁사회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어떠한 학습을 강요했기에 흥미를 붙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거나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좋은 학교에 진학해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직장을 얻길 바라셨기에 그랬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 강요에 의한 학습은 효과가 거의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이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피아노이던 수학이던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배워야 성과가 좋다는 걸 경험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곧 흥미를 가져야 즐겁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때 엄마가 형식적이고 딱딱한 ‘하농’이나 ‘체르니’를 가르쳐주시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게끔 도와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기본을 쌓는 데 그 교재만 한 것들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피아노와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도 치기 싫던 피아노를 지금은 좋아라 치고 있으니 혹시 모른다. 먼 훗날 수학 문제 풀기에 푹 빠져버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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