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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마고 Mar 14. 2021

온기를 내며 기다리고 있어

비리프 L005 / 이케아 텔뷘 플로어스탠드


빛을 내고 열을 내는 것들은 의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있는 듯이 그리고 생각하는 듯이.

그래서 자꾸 딱딱한 물건들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진다.

새로 온 여섯 번째 등에게는 세 글자 중국식 이름을 붙여줬다. ‘等等我 덩덩워(날 기다려줘)'.


집 안에 배어있는 온기가 사람을 보살핀다는 건 할머니한테서 배웠다. 고등학교 때 반년 정도를 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집 전체가 나를 천천히 끌어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 손을 탄 물건들이 내는 윤기, 발바닥에 닿는 장판의 온기, 커다란 냄비 뚜껑이 달그락대는 소리, 집 안을 가득 채운 반찬 냄새, 머리와 등허리를 쓸어주던 할머니의 손. 집 안의 모든 것이 살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 같은 풍경.


지금 집엔 할머니가 안 계시지만 혼자서도 집을 달구는 흉내는 낼 줄 알게 됐다.

먼저 집 안에 죽어있는 부분이 없도록 노란 등을 구석구석에 둔다.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외출할 때 두 개 정도를 켜놓고 나간다. 이제 어떤 일이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지친 날에도 울고 싶은 날에도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내가 덥혀놓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날일수록 문을 열었을 때의 충만함이 크다.


마지막으로 자고 있는 뜨끈뜨끈한 고양이 둘을 한 번씩 껴안아 주고 나면 세상에 잊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게 된다. 온기 있는 것들은 모두 위로가 되니까.



물건의 장점 : 두 등 모두 조립이 엄청 간단하다. 5분 컷! 비리프 L005는 하부가 나무로 되어 있어 우리 집의 원목 까페장하고 잘 어울린다. 텔뷘은 디자인도 레트로 한데 옛날 형광등처럼 줄을 잡아당겨서 껐다 켰다 하는 방식이라서 재밌다.


물건의 단점 : 둘 다 단독으로 사용해도 충분할 만큼은 밝지 않다. 여러 개 사면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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