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섬에서의 하루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홍콩에서 런던 가는 기내에서 쓴 홍콩 체류기
내게 홍콩은 ‘세계에서 제일 비좁으면서도 비싸게 살아야 하는 나라’이자 동시에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 속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의 삶이 녹아있던 곳이었다. 홍콩을 여행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한 번쯤은 홍콩의 야경을 직접 눈에 담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 런던 여행이니만큼 직항 대신 홍콩을 경유하는 캐세이 퍼시픽을 선택했다. 홍콩에 7월 21일 일요일 오후 1시에 도착해서 다음날인 7월 22일 월요일 오전 9시에 떠나는 일정으로 20여 시간을 체류할 수 있었다.
내가 홍콩에서 기대했던 것은 홍콩섬에서 1박을 하면서 세븐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넘어가 번화가를 한 번 거닐고 홍콩섬을 바라보며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새우 완탕면 한 그릇, 로컬 드리프트 맥주, 홍콩 대표 맥주인 블루걸, 흑당 버블티 한 잔을 할 수 있으면 좋고 굳이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본국 송환 법안에 대한 시위가 홍콩섬에서 주말마다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이 올려준 정보를 다방면으로 확인해보니, 내가 고려하는 동선에 겹치지 않았고 나의 숙소의 위치와도 거리가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별 기대도, 준비도, 걱정도 없이 홍콩 공항에 도착했다. 홍콩 공항에서 만난 홍콩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어릴 적 비디오에서나 보았던 홍콩 사람들의 일상과 도시의 모습이 떠올라서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기대감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에 여행에 대한 감흥이 떨어질 즈음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곳이 주는 적당한 긴장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홍콩을 떠나는 지금 나는 잠깐이지만 하루 동안 보고 들은 것이 도저히 마음에서 정돈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홍콩이 기대보다 별로라 했고, 또 어떤 이는 홍콩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그 모든 홍콩 여행에 대한 감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온갖 비즈니스가 일사 분란하게 이뤄지는 홍콩 답게 공항에 도착해 AEL을 타고 30분도 안되어 도착한 홍콩섬에서 H2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호텔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수월했다. 셔틀버스 안은 에어컨을 한 가득 틀어서인지 추웠다. 추위에 양 팔을 쓰다듬어가며 처음 만난 홍콩섬의 풍경은 주말이면 거리에서 생활한다는 '아마'라고 불리는 필리피노들이었다.
가사계의 멀티플레이어인 그들은 홍콩법에 의해 주말이면 일을 할 수 없다. 주거 공간이 곧 업무 공간이기에 주말이면 집을 나가야 하는데, 대부분은 홍콩의 높은 숙박비를 감당하는 대신 거리에서의 하루를 선택한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홍콩섬의 습한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호텔 정문에 셔틀을 세워준 덕분에 곧바로 로비로 향하는 중에 찰나의 더위를 느끼며, 거리를 한 가득 메운 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마'들이 생각나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종종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잘 모르겠다. 친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웃는 낯을 하고 있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자격이 내게 있는 걸까. 나도 모르게 현재의 내 처지를 안도하면서 오만한 값싼 비교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각자가 감당할 삶의 몫이 다를 뿐인데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고상한 척을 하고 싶은 건지. 마음을 쓰거나 무심하거나,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온전한 마음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참 알 수 없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올라오니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는 홍콩의 높은 건물들이 시야에 가득한 시티뷰가 반긴다. 먹고살만한 나라에서 밥벌이를 하는 덕분에 하루나마 나 홀로 홍콩에서 이만한 공간을 점유하는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샤워를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 도심을 구경하고 든든하게 배도 채웠다.
다양한 종류의 고급 외제차들의 바로 옆엔 종이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지나가고 있었다. 시원한 곳에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칼질하는 레스토랑 바깥엔 후미진 구석에서 실외기 바람을 쐬며 빵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와 시간차를 두고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익숙했던 삶의 모든 모습들이 이곳에선 압축적으로 다 펼쳐져 있었다.
빼곡한 고층 건물들 사이에도 공원과 놀이터는 있었다. 벤치와 나무들은 도시의 바쁜 모습과의 대비가 극명했다. 그래도 이곳의 사람들도 잠시 앉아서 쉬어갈 여유는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한 잔 했다.
잠시 쉬다가 7시 반쯤 밖으로 나오니 거리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시위가 센트럴 역에서 섬 안쪽을 향해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내 숙소 인근인 셩완역을 한참 지나서까지 시위대의 행렬이 이어졌다. 침사추이로 가기 위해 스타페리를 타려면 시위대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기에 이대로 숙소에 들어갈까도 싶었다. 시위대를 얼마간 지켜보니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시위대의 일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길을 건너도 되는지를 물어보니, 웃으며 시위대를 가로질러 지나가도 된다고 알려주기에 이대로 길을 나서기로 했다. 페리 선착장까지 30여분을 걷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시위 행렬에 종종 발걸음을 멈춰 서곤 했다.
도대체 홍콩이 중국이야? 아니면 별개의 국가인 거야? 하는 궁금증에 대학생 때 홍콩에 대한 얇은 책 한 권을 봤던 기억이 난다. 영국이 중국에 반환했지만, 홍콩의 특수성을 생각해서 외교권을 제외한 법령을 50년간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기에 홍콩은 중국이면서도 중국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었다. 중국이 약속한 50년의 절반 정도가 지난 지금 앞으로 중국과 홍콩의 역사가 어떻게 쓰이게 될지... 거리로 뛰쳐나온 홍콩의 젊은이들을 보니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이들의 시위를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세븐스 타페 리에서 본 화려한 홍콩섬의 야경을 어떻게 경험했을까? 도시의 마천루를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치열한 삶의 투쟁이 묻어난 듯 각종 인위적인 불빛으로 물든 야경이 처음으로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침사추이의 쇼핑센터와 거리 곳곳은 쇼핑백을 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미 7주째 시위가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홍콩 거주민들과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기에 바빠 보였다. 지하도엔 오늘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듯한 포스트잇이 가득했고 사람들을 오며 가며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나와 같은 구경꾼인 듯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덥고 습한 공기의 분주한 거리를 거닐자니 목이 탔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흑당 버블티 한 잔과 함께 다시 홍콩섬으로 넘어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페리를 기다리며 TV를 보는데 Live 뉴스가 심상치 않다.
혹시나 하는 염려를 안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선착장에 내렸다. 선착장 인근은 다소 한산했다. 간간히 관광객들인 듯한 무리들과 시위대의 일원인듯한 사람들이 오가곤 했다.
마카오로 가는 페리를 탈 수 있는 페리 터미널과 쇼핑몰인 션탁 센터가 이어진 건물 인근에 도착하니 최루탄의 흔적이 묻어나는 냄새와 함께 쑨원 공원 너머까지 행렬을 이어갔던 시위대가 경찰에 밀려 이곳까지 내려와 있었다. 시위대는 검은색 티셔츠, 바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기자들은 Press가 적힌 조끼, 마스크,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관광객임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잠시 대피했다. 나 또한 이곳에서 발이 묶인 채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시위대 중 일부는 우산과 방독면을 착용한 채 양 팔을 랩으로 휘감고 최루탄을 쏘는 경찰을 향해 전진을 시도하며 시민들과 시위대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 뒤로 물러가다가 다시 전진하다가 서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나는 경찰이 지나간 후에 지하철로 향하는 지하도를 통해 건너편으로 넘어가 숙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낮에 사람들과 차로 북적였던 도시가 참으로 고요했다. 아마 시위 현장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바로 옆 도로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편안한 숙소의 침대에 누워 대자로 뻗은 채 오늘 내가 본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싱숭생숭한 마음과 대화를 시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공항으로 향하는 AEL을 타는 곳으로 가기 위한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본 거리는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