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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l 11. 2019

내가 틀려서 다행이야.

요가만 열심히 했던 뉴욕에서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세요!!! 하는 말이 마치 축복의 인사처럼 전해지곤 한다. 여행이야말로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이란 걸 체감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여행에서 오래도록 꺼내고 또 꺼내보는 시간들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했던 순간들이었다.


맨해튼의 요가 선생님


나의 첫 해외여행은 2013년 9월에 Aerial 요가를 하기 위해 떠난 미국 뉴욕의 맨해튼이었다. 정신없이 회사 생활을 해내기 바쁘던 당시에 Aerial 요가는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수년간 매트 요가에 익숙했던 터라 해먹을 이용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몸을 쓰는 과정은 내게 적당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하루 종일 요가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 하나로 뉴욕행을 아주 쉽게 결심했다.


전 세계에서 지도자 과정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 요가 인스트럭터들이 하루 평균 3-4개의 수업을 듣는다고 하는데, 그저 취미 삼아 요가를 하는 나였지만 하루 3개 이상의 수업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수업이 없는 날에 브루클린과 롱 아일랜드를 다녀왔고, 수업을 마치고 나서야 현지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맨해튼 구경은 요가 학원을 오가며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창 밖이 보이는 곳이라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 앉아 거리를 감상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참 감동적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바쁜 이곳에서 눈곱도 안 뗀 채로 요가를 하기 위해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특권 같았다.


요가 인스트럭터들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수업에서 수련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렇게 매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음에 놀라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업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매력적이었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강아지도 수업이 익숙한 듯 스튜디오 한편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동작의 앞, 뒤, 좌, 우 방향을 지정해주지 않을 때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얼굴을 마주하기도 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참 좋기도 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요가 선생님들은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남과 비교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요가에 임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만큼은 꼭 다 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이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내 능력이나 수준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손하게 거절을 하는 내게 요가 선생님들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다음엔 조금 더 용기를 내보세요." 하고 긍정의 말을 해 주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실크 Silk 요가 선생님은 조금 달랐다.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천을 이용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오로지 나의 근력으로만 매달리고 떨어지는 과정을 통제해야 하는 실크 요가를 처음 경험했다. 실크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오는 기본 동작을 배울 때 '나는 여기까지만 할 수 있겠다' 하고 아주 빠르게 단념했다. 다음 수업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아껴야 하고, 아직 나는 이 정도의 수업을 소화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수업은 실크를 타고 올라가서 단단히 한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렸다가 다시 올라와서 묶인 발을 풀고 내려오는 동작으로 넘어갔다. 내 차례가 되자 "저는 어깨 힘도 약하고 팔 근력도 부족한 데다가 이걸로 지지해야 할 지방은 너~무 많아서 무리일 것 같아요. 못하겠어요."하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백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너는 왜 네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코어랑 등을 사용하는 방식과 힘을 다 봤는데, 내가 보기에 이미 아주 충분해. 할 수 있어. 일루 와. 내가 도와줄게. 일단 해 보자." 하며 실크로부터 도망가는 나를 붙잡았다.


그 순간 '응? 나한테 그런 힘이 있다고? 내가 이미 충분하다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저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따르는데 집중했다. 한쪽 발을 실크에 의지해서 거꾸로 매달린 채로 본 풍경이 눈에 선하다. 사람들이 환호해주었고, 선생님의 미소에 나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다시 올라가지 하는 염려도 잠시, 다시 선생님의 지도에만 귀를 기울이면서 동작을 완성하고 무사히 땅으로 내려왔다.  


선생님은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한 사실을 본 대로 이야기하며 내가 시도할 수 있도록 그저 지지해주었다. 거기엔 어떤 의심이나 회의가 끼어들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내가 틀려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포기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욕심내는 일을 구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나는 종종 내가 이건 도저히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 때마다, 이때를 떠올리곤 한다.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조금 더 힘을 내는 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고마워요 Anya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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