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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Dec 10. 2024

좋은 습관

12월 10일

프리랜서인 나는 마감이 급할 때 종종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이것저것 골라서 오므라이스를 주문하고 나서 나는 여유롭게 글을 쓰고 있었다. 전화가 와서 보니까 배달 기사였다. 왜 안 들어오시고 전화를 할까, 현관 비밀번호를 모르시나 가볍게 생각한 내 귀에 황당한 말이 들렸다.     


“여기 00교회로 올라가면 되는 거예요?”

“00교회요?”     


난데없이 무슨 교회냐 싶다가 벼락같이 내 실수를 깨달았다. 교회학교 교사인 나는 돌아오는 주,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교회 교육관에서 피자를 시켜 먹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피자 배달이 되는지 알기 위해 배달앱 주소를 교회로 해 놓고는 깜박 잊고 도로 우리집으로 바꾸어 놓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니 엉뚱하게 배달이 교회로 간 것이었다.     


“아, 저, 그게, 제가 잘못 주소를 적어놔서요. 그냥 1층에 두시면 찾아갈게요.”

“거기는 어디신데요?”

“여기는 00아파트 0단지인데요.”

“아, 여기서 머네요. 제가 다른 배달이 없으면 갈 텐데.”     


다행히 친절한 아저씨라서,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고 자신이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것이 립서비스라도 나는 내 실수에 짜증 안 내고 그렇게 반응을 해주는 배달 기사 아저씨에게 고마웠다. 그건 그렇고, 시간 아끼려고 배달을 시켰는데 교회에 가고 오느라 시간이 더 들게 되어 버렸다.     


‘아니 이럴거면 가서 먹지.’     


나는 투덜거리며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교회는 우리집에서 멀지 않았다. 넉넉잡아 10분 걸어가면 나온다. 음식은 얌전히 놓여져 있었다. 덜렁덜렁 들고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교회가 가까웠지. 아저씨가 친절하게 전화를 해서 다행이기도 해. 그냥 두고 갔다면 나는 왜 안 오냐고 하다가 시간만 까먹었겠지. 왔다갔다 하니 환기도 되고 운동도 되어서 좋았고, 헷갈리지 않고 음식을 잘 찾아서 다행이었고, 아무 사고 없이 집에 돌아온 것도 좋네.     


아이를 위해 읽은 책, 김붕년 교수의 <4-7세 조절하는 뇌, 흔들리고 회복하는 뇌>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하면 그쪽으로 대로가 뚫린단다. 그래서 계속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긍정적으로 바꾸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자꾸 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마치 풀로 가득한 들판에 길을 내듯이 자꾸만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쪽으로 길이 뚫려서, 점차 그것이 ‘억지로’가 아닌 저절로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나는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그것의 최악의 상황을 늘 상상하면서 미리 두려워하였다. 내가 예상치 못했던 일이 터졌을 때는 그것이 내 계획을 망친 것을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되짚어 보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질책하거나 그렇게 상황을 만든 타인을 원망했다. 그러니 남편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아이도 부정적인 감정을 자주 표현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어른의 말씀을 잘 듣는 바른 어린이로 크라고 가르쳤기에, 그것에 반박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자라면서는 억압했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건강한 것이라는 가르침이 유행을 했다. 어른이 된 나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남편에게도 내 감정을 받아주기를 강요했다. 나는 내가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지만, 또한 내가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했다.      


요즘은 뭐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아마도 부정적으로 해석했던 습관을 지울 수 있을 만큼 오래 이런 훈련을 해야 할 듯하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만큼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가족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남편이 내가 하는 ‘고맙다’ ‘감사하다’ ‘수고했다’는 말에 제 뼈라도 갈아넣을 듯이 집안일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이도 부정적인 감정 표출이 줄고 ‘사랑해’ ‘감사해’라는 말을 종종 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다른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거나, 선생님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나 한 사람의 변화는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듯이, 꾸준히 긍정적인 사고의 습관 근육을 키워내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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