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말이면 아무 하는 것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들뜬다. 곳곳의 트리와 현란한 장식.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길거리 캐롤은 없지만 내가 유투브로 찾아서 들으면 되니 연말 분위기는 충분히 낼 수 있다. 캐롤을 들으면 왠지 더러운 마굿간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처럼 절망 속에서 소망이 피어 오르는 기분이 들곤 한다.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한창 전쟁 중이었던 때, 크리스마스 때문에 기적적으로 전쟁이 멈춘 적이 있다는 이야기다. 때는 1914년, 한창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세계가 전쟁의 공포 아래 있던 때였다. 영국군과 독일군들이 대치하던 어느 전선에서 12월 24일 밤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독일군들이 초를 밝히고 캐롤을 부르기 시작하자 영국군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제까지는 서로 총칼을 겨누던 이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이전과 달라졌다. 그들은 서로 만나 작은 선물을 교환하고 축구 경기까지 했다. 불행히도 지도부에서 이 일을 알게 되어 엄격히 금하는 바람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일은 당시의 영국군 독일군의 마음에 오래도록 깊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대의 크리스마스는 솔직히 말하면 상업성의 끝판왕이 된 듯하다. 산타클로스 때문에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으면 어른들은 죄인이 되어 버린다. 나도 오늘 쿠팡에서 아이에게 줄 작은 강아지 인형을 결제했다. 그날 유명 호텔 방값은 두 배가 넘고 유명한 케이크들은 이미 살 수가 없다. 무언가 꼭 사야 하는 날, 그러지 않으면 이 신나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소외되는 기분을 느끼는 게 과연 옳은가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 들뜨는 기분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또 우스운 생각도 든다.
그날은 남들 다 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것은 어떨까. 오래 연락하지 않던 가족에게 연락을 한다든가, 한 해 동안 고생한 나에게 편지를 써 본다든가, 가족 끼리 둘러앉아 노래자랑을 한다든가, 내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본다든가(어쩐지 나는 '나 홀로 집에'를 볼 것 같은데).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나만의 기념할 만한 날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