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도서관 우수 회원이라고 문자가 왔다. 우수 회원은 내가 뻔질나게 책을 빌리고 다시 갖다 주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다 읽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심보선 시인은 내게 유일한 시인인데, 어떤 시인이냐면 내가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 사야지' 하고 서점에 가서 아무 시집이나 들고 읽기 시작하다가 '오 이 시 좋은데' 하고 산 시집을 쓴 유일한 시인이다. 이름을 알고 샀거나, 아니면 어디서 사라고 해서 샀거나 하는 것 외에 유일하게.
그래서 심보선 시인을 볼 때 나는 '내가 발견한 시인'이라는 왠지 모를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심보선 시인은 그전에도 매우 유명한 시인으로 나에게 발견되지 않아도 충분히 시 잘 쓰고 잘 살고 있는 시인이지만 그래도 그냥 나는 그렇게 생각하련다. 심보선 시인만 이 사실을 모르면 된다.) 그 시인이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 강연을 한다는데, 내가 안 갈 수가 있나. 마침 시간도 괜찮은 것 같아서 얼른 가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 강연 날짜가 되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가기 싫었다. 요즘은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고 얼마 전에 읽은 시집은 예스24에서 주는 후기 쓰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억지로 읽은 것이 전부였는데 무슨 시인의 강연회를 가나 싶어서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런데, 혹여 내가 가지 않았을 때, 갔을 때에 얻을 경험치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물론 거기 안 간다고 도서관에서 우수회원에서 나를 제명시킨다든가 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꾸역꾸역 십 분이 지나서야 강연장에 도착한 나는, 도서관의 기묘한 디자인 때문에 등받이 없는 의자에 당첨이 되어서(아니 강연하는 곳에 왜 대체 등받이 없는 소파를 이토록 많이 가져다 둔 게요. 나는 등이 굽은 여자요.) 마음으로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설상가상으로 심보선으로 추측되는(실물을 본 적이 없다) 인물은 우리는 보지도 않은 채 모니터를 보고 무언가를 줄줄 읽고 있었고, 앞에는 ppt는 커녕 아무 화면도 없었다. 대체 뭐 하는 상황인가? 강연 끝날 때까지 저렇게 읽고 있을 생각인가. 그냥 조용히 도망가야 하나. 별 생각을 다 하는데 심보선 시인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었더니 아는 사람이었다! 뭐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모니터 보고 얘기할 때도 얼굴은 다 보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끝까지 보고 읽는 것은 아니었고. 심보선 시인은 한 시인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시인이 70살에 한글을 배워서 시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70살에 한글을 배워서 그게 가능한가. 한글을 모르는 것이 평생의 트라우마였는데 동네에서 한글 가르쳐주는 곳이 시 창작교실밖에 없었단다. 그런 놀라운 우연으로 이춘자 시인은 시인이 되었다.
심보선 시인은, 마치 명절에 집에 놀러온 삼촌 같았다. 두서 없이 이야기를 꺼내다가 느닷없이 시를 읽어 주었다. 그게 강연회였다. 근데 그게 신기하게 재미있었다. 원래 명절에 손님이 오는 건 재밌지 않나. 그것도 삼촌은 더 재밌다. 먹을 것도 이야깃거리도 잔뜩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별 얘기 안하고 시시덕거려도 재밌다. 강의안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시집 한 권 달랑 들고 온 모양새인데, 또 끊임없이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을 보면 과연 문학인은 문학인이다 싶었다.
새로 나온 시집도 재미있었다. 처음 타이틀 시(그 시집 제목으로 나오는 시를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냥 타이틀곡처럼 이름을 붙여봤다)를 읽을 땐 이유도 모르고 눈물이 났고, 그후에는 웃음이 났다. 시가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또 우리들 얘기라서 좋았다. 심보선 시인의 시에는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 심보선 시인의 아버지 역시 시를 썼었다고 한다. 그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고 한다. 문학을 좋아했고, 아들이 시인이 된 것이 좋아서 몰래 라디오 방송에 전화해서 인터뷰까지 요청했다는 아버지.
원래는 좀 일찍 나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끝까지 있었다. 문학이며 책에 관심이 많은 이들 사이에 앉아서 있으니 혼자 나가기 좀 어려운 분위기이기도 했다. 질문 시간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느냐'고 말한 사람을 보면서는 그런 책을 읽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해서 말을 한다는 것이 꼭 진짜 호모 사피엔스라도 본 것마냥 신기했다. (여기까지 쓰고 호모 사피엔스가 혹시 현생 인류를 뜻하는 것인가 찾아보니 호모 사피엔스는 인류의 조상이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금 인류라고. 아이고 어렵다.)
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심보선 시인은 별 준비를 안 한 것 같은데, 왜 강연은 재미있었고 유익하다 느꼈나. 알고 보니 심보선 시인은 사회학과 교수였고(시인이면서 시와 상관이 없는 학문의 교수라는 것은 반칙이다. 그냥 내가 주는 반칙이다. 그냥 그렇다고.)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더 익숙했고 자연스러웠을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내가 강하게 느꼈던 것은, 심보선 시인은 강연 내내 '청중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며' '그들을 믿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고, 그들과 소통하려고 했다.
명절에 놀러온 삼촌은, 자기가 가져온 이야기보다도 그 이야기로 조카들을 즐겁게 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그가 조카들에게 환영을 받는 이유는 그가 먼저 조카들을 환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청중을 대하는 자의 기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