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고보 11 - 완결

사랑의 비대칭성

by 나무나비

혼자 가는 길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예수가 떠난 후로는 늘 요셉과 함께 가던 길이었다. 그래서인가, 말은 많지 않아도 언제나 든든했던 형이나, 때로 귀가 따갑지만 그래도 덕분에 웃게 되는 동생이 생각났다.

“잘 있는 거지?”

야고보는 하늘을 보고서 물었다. 동생들은 나무에 달렸으니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메시아 노릇을 하다가 결국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으나 야고보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고 왔다고 하니 하나님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을까. 그저 야고보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어쩐지 익숙한 향기가 나서, 야고보는 고개를 돌렸다.

“샬롬.”

누군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샬롬.”

야고보는 마주 인사했다. 샬롬은 평안을 비는 이스라엘식 인사였다.

“어디 가십니까?”

남자는 야고보의 곁에 서며 물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쩐지 느낌이 친숙했다.

“일하러 갑니다.”

“어디로요? 혹시 세포리스 가십니까?”

남자는 자연스럽게 야고보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빙긋이 웃고는 야고보의 가방을 가져다가 제 어깨에 메었다. 야고보의 미간이 좁아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나도 그쪽으로 갑니다. 일거리를 찾는 중이죠.”

“나사렛 사람입니까? 나는 댁을 처음 보는데.”

낡긴 했으나 야고보의 가방에 든 공구들은 그가 아끼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형인 예수가 직접 만든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야고보에게는 소중했다.

“가방은 주십시오.”

“원래 이곳에 살았었습니다. 멀리 다녀오는 길이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야고보를 피하듯 빠르게 걸었다.
“아니 이 사람이, 가방 달라니까.”

야고보가 발걸음을 빨리하며 말하자 남자가 웃었다.

“가방에 무슨 귀한 거라도 들은 겁니까?”

“내 형이 쓰던 물건이란 말입니다.”

야고보는 그렇게 말하며 기어이 남자에게서 가방을 뺏어 들었다. 그것은 남자가 형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걸음을 멈추었기에 가능했다.

“남은 게 이거밖에 없는데. 함부로 가져가지 마세요.”

야고보는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메었다. 남자는 물끄러미 야고보를 보고는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그 두 눈은 왠지 물기가 어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형이랑,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야고보는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후로,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은 없었다. 가족들과도 이야기하기 껄끄러웠고,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할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형은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남자를 보지 않았다. 어차피 이 남자와 계속 알고 지낼 것도 아닌데,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낸다고 별다른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도 아주 잔혹하게요. 자기가 메시아라고 하더니, 결국 그렇게 됐습니다.”

“메시아라고요? 세상에, 그래서 죽은 겁니까? 도대체 왜 그랬답니까?”

야고보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한 두 눈을 보자 야고보는 화가 났다.

“이유가 있었겠죠. 남들이 뭐라 하든, 형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고 확신했어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고 이 땅에 왔다고도 했고요. 그러니 비웃지 마십시오.”

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비웃음을 당해야 하는 것이 야고보는 싫었다. 그러려고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동생들이 형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기죠. 십자가형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습니다.”

야고보는 먼 곳을 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나도 비웃음 당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게 형의 뜻이었다면, 그런 형을 나는 지키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그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형을 많이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침묵 후에 남자가 야고보와 같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사랑했죠. 아니, 사랑한다고 믿었죠. 하지만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형의 면전에 대고 험한 소리도 했죠.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형을 사랑했던 것인지.”

야고보는 이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한 말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제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형의 마음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형이 미쳐서 죽었든, 악귀에 씌여서 죽었든, 형은 나를, 이 가족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말이죠. 그래서 나도, 형을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이 낡은 연장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 이유고.”

야고보는 목이 메어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바보같이 형이 또 보고 싶었다. 낯선 사람에게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그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가십시오. 괜히 말이 길어졌습니다.”

남자는 야고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같이 일하죠.”

“네?”

“내가 손재주가 나쁜 편이 아니라서. 방해는 안 될 겁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야고보의 가방을 뺏어 들었다.

“아니, 그거 막 뺏어가지 말라니까요!”

야고보가 다급하게 남자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저히 남자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세포리스 극장의 보수 공사 때문에 일꾼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야고보는 말도 안 되게 빨리 배당된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남자가 굉장히 손이 빠르고 일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야고보는 제 몫의 빵을 나눠 주었고 남자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서 둘로 나누어 다시 야고보를 주었다. 식사까지 하고 나서 나머지 일을 마쳐도 아직 해가 중천이었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생선이나 사러 갑시다.”

마치 예수와 야고보가 세포리스에서 일하고 난 다음 행선지를 다 아는 듯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시장에 갔다. 넉넉하게 생선을 사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이른 야고보는 남자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히 오늘 저 혼자 일하는 날이라 많이 떨렸었는데요. 시간이 되시면 오셔서 같이 저녁 식사 하시죠.”

“그럴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서 야고보에게 다가섰다. 그때, 야고보는 그 익숙한 향기가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자가 고개를 숙여 야고보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야고보의 심장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세게 뛰기 시작했다. 야고보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남자를 마주보았다. 분명 모르는 남자였다. 그런데.

“야고보.”

귓가에 제 이름이 들렸을 때였다. 야고보는 왠지 모를 소름에 눈을 크게 떴다. 눈앞의 남자에게서, 어느 순간에 빛이 나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아주 거룩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야고보의 앞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맞아.”

음성은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야고보는 그와 비슷한 음성을 들었을 때를 기억해 냈다. 십자가 아래서였다.

- 야고보, 조금만 기다려. 내가 돌아가서 모든 것을 설명해 줄게.

그때에 바람 속에 섞여 있던 향기가 지금 눈앞의 남자에게서 나고 있었다. 야고보는 주저앉듯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확연히 보였다. 그는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형!”

야고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몰랐을까, 일하는 모습이 똑같았는데. 연장을 쓰던 모습도 놀랍도록 익숙했는데. 자신이 만든 연장이니 누구보다도 잘 다루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눈앞에서 보고서도, 야고보는 끝끝내 알지 못했었다.

“그리고 내가 너와 가족들을 끝까지 사랑한 것도 맞아.”

예수는 몸을 굽혀서 야고보를 안아 일으켰다. 야고보는 예수의 품에 그대로 안긴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제껏 참고 견디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면서 끝도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내 눈앞에 있어, 형은 분명, 분명 죽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이거 꿈이야?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줘, 제발, 그렇게 해줘.”

예수는 눈을 감은 채 야고보의 등을 다독였다. 그 역시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야고보. 내가 온다고 했잖아.”

야고보는 서서히 포옹을 풀었다. 제 뺨을 꼬집어 보았으나 예수는 여전히 우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꿈이 아니다. 그가 정말로 나타났다. 분명히 죽었던 형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형이 여기 있어? 정말, 제자들이 말한 대로 부활한 거야? 다시 살아난 거야, 형이?”

“그래. 내가 메시아고,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야고보는 묵묵히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환한 빛이 나고 있었으나 외모와 태도와 말씨 그 모든 것은 제 형이 맞았다. 그의 눈에는 야고보를 향한 자애로움과 따스함이 어려 있었다. 야고보를 인정해주고 그를 귀한 사람으로 여겨 주었던, 그에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그 형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알던 형보다 더 거룩하고 존귀한 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형.”

야고보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형이, 정말 메시아였구나.”

야고보가 예수의 얼굴을 더듬었다. 예수가 그 손을 단단히 잡았다. 야고보는 제가 좋아했던 그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에는 못이 박혔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야고보는 손으로 그 구멍을 매만졌다. 문득 십자가 아래서 제 마음이 찢어졌던 것이 떠올랐다. 형은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다시 눈물이 났다.

“네가 십자가 아래서 깨달은 게 맞아.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내셔서, 인간과 하나님을 화해시키셨어. 인간이 지은 죄를 내가 담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 내가,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은 제물이 된 거야.”

예수가 그런 존재라는 것보다 놀라운 것은, 십자가 아래서 홀로 야고보가 했던 생각을 예수가 정확히 말한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야고보는 그제야 예수의 말이 온전히 믿어지기 시작했다.

“가버나움까지 온 가족이 왔다가 소득 없이 돌아가야 하는 건 내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돌려보내야 내가 우리 가족도 구원할 수 있었어. 야고보, 너도.”

야고보는 더 뭐라고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과거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고 그런 자신을 기다리고 이곳까지 와준 형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먹먹한 기분에 예수를 마주보고 있었을 때였다.

“형!”

집안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던 것인지, 요셉이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요셉, 잠깐, 멈춰.”

요셉은 예수가 그렇게 죽고 난 후 자신들에게는 형이 없다며 예수를 증오했었다. 그렇게 말렸음에도 결국 스스로 죽을 길로 가고 만 예수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야고보는 요셉이 예수에게 주먹질이라도 할까 겁이 났다.

“요셉, 나하고 먼저 얘기해.”

야고보가 요셉을 붙들었으나, 체격도 힘도 더 센 요셉은 야고보를 가볍게 뿌리치고 예수에게 갔다. 밀쳐진 야고보는 넘어질 뻔하고는 겨우 중심을 잡고 섰다. 그러나 이미 그때에 요셉은 예수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간 후였다.

“안 돼, 요셉!”

야고보가 소리쳤을 때였다. 손을 높이 쳐든 요셉이 예수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곧 짐승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요셉을 야고보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셉.”

분명히 형이 없다고 하면서 공공연하게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았나. 당황한 와중에 유다와 시몬, 에스더와 안나까지 우르르 몰려나왔다. 울고 웃으며 예수를 환영하는 그들을 보는 야고보의 눈에서도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날 밤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언제나처럼 예수의 주변에 동생들이 둘러 앉았다. 예수가 떠난 후에는 없어진, 이야기 시간이었다. 예수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아마도, 오늘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아서 모두들 숨을 죽였다.

“오늘 이야기는, 메시아에 관한 거야.”

예수의 눈이 먼 별빛을 향했다. 곧 약속된 메시아가 해야 할 일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가 어둔 밤 하늘 밑에서 이어졌다. 여느 때보다도 재미있고, 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



야고보 이야기는 끝입니다. 조만간 후기로 돌아올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야고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