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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Jul 24. 2024

지연으로 시작된 여행

세부를 가다1

필리핀 세부. 휴양지로는 많이 들어본 곳이었으나 단 한 번도 간 적은 없는 곳. 남편이 싸다는 이유로 패키지 여행을 질렀다. 둘째 아주버님과 둘째 형님 가족까지 같이 질렀다. 둘째 아주버님이 딸이 둘이고 우리가 아들이 하나여서 총 일곱 명의 대부대가 출동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가지 않으려 했다. 출발 비행기가 밤비행기였기 때문이다. 밤비행기 하면 참 안 좋은 추억이 있는데, 때는 십여년 전, 신혼여행을 갈 때였다. 그때의 나는 여행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냥 신혼여행은 무조건 먼 곳으로 가야 한다고 믿을 때였다. 우리는 하와이를 여행지로 선택했고 일본 경유하는 비행기라서 1박은 일본에서 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하와이 여행은 망했고 1박을 했던 일본이 오히려 더 좋았던 아주 이상한 신혼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하와이 여행을 망쳤던 것은 바로 일본에서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가 밤비행기였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인 반면에 나는 예민해서 좁아터진 비행기 안에서는 절대 잘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성격은 스스로도 잘 몰랐던 탓에 그저 남편이 계획한 대로 따랐고, 나는 비행기 안에서 전혀 자지 못한 채 하와이에 도착해서 아침을 맞았다. 지금 같았으면 남편 혼자 돌아다니라고 하고 나는 숙소에서 오전 반나절이라도 쉬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요령도 없던 때라 무조건 아침에는 움직여야지 하고 매일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움직였고, 나중에는 헬리콥터를 타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세부도 밤비행기로 출발해서 새벽 3시쯤에야 숙소에 도착한다는 것을 보니 이건 도저히 소화할 일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새벽 3시이지, 나처럼 잠자리 예민한 사람은 잠 때를 놓치면 아예 날을 꼴닥 새고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정말이지 3일 내내 비몽사몽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여행은 영 질색이었기에 나는 처음에는 빠진다 하였으나, 아이가 간절한 얼굴로 '엄마 같이 가자' 하는 데는 결국 이기지 못하고 뒤늦게 대부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른 넷에 아이 셋. 총 일곱 명의 가족은 저녁을 먹기 위해서 여섯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모이는 시간은 7시였고, 비행기 출발 시간은 10시 15분경이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어떤 일이 있을지 몰랐기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저녁을 다 먹고 체크인 카운터에서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줄이 생각보다 길고 무엇보다 줄지를 않았다. 아이가 가만히 줄을 기다리기는 힘들어 아이 손을 잡고 공항 구경을 하다가, 나는 우리 비행기가 지연되었다는 사실을 전광판을 보고서 알았다.


우리 비행기는 밤 12시 출발로 지연되었다. 아니 10시 15분도 늦은 시간인데, 12시에 출발하면 대체 세부에는 언제 도착하는 것인가. 다시 체크인 카운터로 돌아온 나는 허둥대는 직원들을 보았고, 안내 방송을 들었다. 무슨 이유인지 컴퓨터가 모조리 다운이 되어서 지금 다 수기로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있다고 했다. 80년대 김포공항에서도 안 할 일이 2024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줄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공항을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왼쪽으로 돌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벌었지만 그래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겨우 티켓을 끊고 게이트로 온 우리는 그 사이 밤 12시에서 새벽 1시로 또다시 지연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남편은 의자에서라도 자라고 나를 억지로 눕혔다. 자지는 않아도 눈이라도 감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준비해 온 안대를 썼다. 그러니 잠이 오지는 않아도 적당히 의식이 몸밖와 안을 오가면서 몽롱해지는 상태까지는 왔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까지 다 막을 수는 없어서 여전히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누워 있고 나서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안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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