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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칼 오렌지 Mar 15. 2020

'브랜드'는 중요하지 않다

6년차 퍼포먼스 마케터가 물건 사는 법

30대가 되고나니, 왠지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저마다 명품백이나 지갑, 신발, 시계를 매고 차고 신고 나오곤 했다. 성별을 떠나서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하는 나이가 된 것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쓰는 가방은 이렇게 생겼다. 작아보이지만 무려 맥북 프로 13인치가 쏙 들어간다. 가방 자체가 앞 주머니 하나, 뒷 공간 하나, 끝. 재질도 폴리에스테르여서 그런지 무척 가볍다. 맥북프로와 충전기, 무선마우스와 노트 몇권을 넣어도 전혀 무겁지 않다. 한국에 갈때도, 클라이언트를 만날때도, 직장에 갈때도 항상 매고다니는 가방이다. 


이 가방의 가격은?

단돈 삼천원.


벌써 세번째 같은 가방을 사서 헤질때까지 쓰고있다. 맥북 모서리 부분 탓인지 6개월쯤 매일 매고다니다보면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구멍이 지름 0.5cm를 넘거나 지퍼가 더이상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면 바꾸곤 한다.


어릴때부터 '명품'을 왜 쓰는 걸까 이해가되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에야 친구들이 으레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을 신어야 말이라도 섞어줬으니 부모님을 졸라 브랜드 운동화를 사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돈을 벌게 되고, 원하는 소비를 하게 되었다. 내가 입고 신는 브랜드가 나의 '노는 레벨'을 정해주는 시기가 지났으니, 브랜드에 대한 지름욕구는 당연히 현저하게 줄었다. 


명품을 사본 적도, 가져본 적도 없으니 명품을 사용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 물건은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충족해주면 그만이다.


나같은 소비자만 있었으면 너네 다 망했다.


그러다 어느날 한국의 결혼식장에서 '가방순이'가 되었고, 나는 친구의 명품백에 친한 지인들의 축의금을 담아 안전하게 보관하는 역할을 맡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명품가방을 반나절이나 손에 들고 있어보는 기회(?)였던 것이다.


뭐야 별거 없잖아.

가죽의 질이 어떻고 프린트가 고급지네 명품의 철학 브랜드의 가치 그런게 뭐가 중요하랴. 가방순이에게 가방은 축의금만 안전하게 넣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가죽가방은 쓸데없이 무거웠고, 혹시나 축의금 봉투 모서리에 긁혀 스크레치라도 날까 전전긍긍하기 바빴다. 크기에 비해 가방 입구부분이 좁아 축의금을 넣고 식권을 빼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아마 그 날 내가 가방에 담은 축의금 총액보다 그 가방의 가격이 더 나갔으리라.


마케팅을 하면서 브랜드의 가치를 이해하고 설명하며, 판매 증진을 도와 브랜드의 성공을 이끄는 것이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면 할수록 나에게 '브랜드'의 가치는 오히려 더 떨어지기만 할 뿐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에 품질이 좋고 사용하기 편하며, 물건의 용도를 다 할 수 상품이 이렇게 많은데 왜 우리는 브랜드를 사는 걸까.


같은 공장에서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노동자들이 만드는 물건이, 브랜드 로고가 다르다는 이유로 3~10배 비싼 가격에 팔리곤 한다. 나의 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제까지그래왓고아패로도개속 '사용 용이성', '필요성', '내구성'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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