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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콜드 Jun 09. 2022

만남은 쉽고 동거는 어려워

15년, 여전히

윗사람과 세대 차이로 힘든 에게, 필자의 본 글을 전합니다. 작은 위안이 되길 바라며-!








나는 오늘 퇴근 후, 두 할머니와의 해피엔딩을 계획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나? 안다. 정말 많이 경험해봤기에 잘 안다. 결국, 저 말에 아울러 오늘  행복할 계획'그 일'로 인해 물거품이 됐다.





희소식(1), (2)이

생겼습니다


오늘 출근 후, 회사에서 할머니를 위한 두 가지 희소식이 생겼다. 먼저 하나는 회사 PB 상품 중 온열찜질기가 있는데 이걸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다른 하나는 공유 주차에 관한 소식이다. 할머니 집의 주차장 자리는 공유 주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저번 달에 결제한 사람이 이번 달에 결제를 연장하지 않아 기다리던 판에, 오늘 오후에 6월 결제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




자, 위 두 개 소식을 확보한 후 나는 오늘 퇴근 후 할머니와의 일상을 계획했다. 집에 도착해, (매일 오래된 전기 찜질기를 허리와, 다리에 달고 사는) 할머니께 회사 PB 상품인 온열찜질기를 보여드리며, 손자가 선물하겠다는 소식 전달과 이번 달 주차장 자리를 누가 결제해서 할머니께 해당 비용을 전해주겠다고 얘기하는 것을.



그래, 이거란 말이지!




인생은-

오늘 물티슈 뚜껑을

열던 순간과 같다


퇴근 후, 밥을 안 먹었다는 할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거실에 앉아 할머니께 얘기를 전하려는데 피나가 화장실에 응가한 걸 목격했다. 응가를 치우고 피나의 뒤를 닦아주려 거실 한가운데 있는 물티슈 뚜껑을 여는 순간, 할머니가 말했다.


"왜 얘는 그거 닦는데 아깝게 물티슈로 하고 X랄이야?"


/(...)



0.5초, 아니 0.7초? 짧은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당황했다.





사실, 난 알고 있었다. 내가 물티슈 뚜껑을 여는 순간, 혹은 물티슈 뚜껑을 열고 물티슈를 꺼내는 순간 할머니가 뭐라고 할 것을. 그럼에도 위처럼 너무 놀라 당황한 것은 오늘은 그 세기가 다소 세서이다.


내 할머니는 평소 (다른 부분도 예민하지만) 물티슈를 사용하는 거에 굉장히 예민하다. 당신이 생각하기로 물티슈 한 장 한 장이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때문에 당신보다 아랫 사람ㅡ주변에 윗 사람이 없으니 주변 모두를 칭함ㅡ이 물티슈를 사용할 시 온갖 신경이 곤두선다.


논란의 그 물티슈


결국 나는 할머니 덕분에(?) 물티슈를 반에 반, 혹은 반으로 잘라서 쓰는 착한 습관을 들이게 됐다.


"얘가 아까운 줄 몰라?!"

"잘라서 써"

"그거 닦는데 왜 그걸 써 그냥 휴지로 닦아"


위는 평소, 즉 어제까지 내가 물티슈를 사용할 때 그녀가 주로 뱉은 말이다.


그래, 오늘도 저 정도의 말이 당신의 입에서 나오리라 먼저 생각하고 물티슈 근처에 손을 가져갔고 뚜껑을 열었다. 근데 오늘은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다른 거다.


가령 평소 내가 예상하고 맞던 할머니의 말이 5톤 트럭이었다면, 오늘은 예상하지 못한 20톤 트럭이 내게 부딪친 거다.





00:00, 도착했습니다.
하필 그 알림이, 지금.


짧은 당황과 함께, 나는 할머니에게 그간 속에 있던 말을 뱉었고, 이날 저녁 우린 큰 소리로 싸웠다. 결국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고, 나도 방문을 닫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자정에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핸드폰을 보니, 다음의 알림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할매가 잠자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잘해 진짜-(하략)

=> 매일 자정에 울리도록 내가 설정해놓은 리마인더


할머니, 피나랑 멀어지는 날 D-100


=> 오늘 자정에 울린 디데이 알람. 난 100일 정도 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할머니 둘과의 15년 동거를 마감할 예정이다..




하필 지금, 이 알림이 울리다니.



저 알람 이후, 피나가 자꾸 설사를 한다. 아까 그 사건 때도 약간 변이 이상한가 싶더니..



말기암(Grade 3)을 가진 반려견을 닦아주는 건데, 그게 아까워서 뭐라고 하는 할머니, 손자와의 싸움에 방문을 굳게 잠근 내 할머니.



피나 설사의 원인을 찾다 부엌에 놓인 상한 거 같은 삶은 달걀을 봤다. 이걸 평소,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당신이 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는 것과 같이 준 거 같다.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하는 지금이다.



참, 만남은 쉽고 동거는 어렵다,

15년이 되어도, 여전히.




사족: 글을 쓰며 내 할머니가 물티슈를 그렇게 각별히(?) 여기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물티슈가 일반 휴지와 달리 패키지가 예쁘지 않은가? 이런 맥락에서 갑 티슈 또한 그렇게 아끼려 하는 거 같다.


잠깐, 아닌 거 같다. 키친타월도 아끼려 하는 것을 보면 그냥 뭐든지 다 아껴야 사는 거다.







"이봐, 젊은이" 그 이후, 할머니 둘과 살며 관찰하고, 돌보며, 쓰는 글 중, '동거'에 관련한 글입니다. 글을 통해 보다 가깝고, 가장 소중한 주변에 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관련 매거진 연재 중(아래)

https://brunch.co.kr/magazine/2b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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