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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pr 07. 2024

수녀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

광화문 대한성공회 성당에 가면 수녀님을 만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렇다. 모든 삶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소중하지만 나이가 들면 사람들과 유대관계가 더욱 중요해진다. 사회생활을 한참 할 때는 원치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은퇴 후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진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곁에서 함께 삶을 나누는 이들은 매우 귀중한 존재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시도도 필요하지만 기존에 알고 지내던 벗들과도 잘 지내기 위한 노력도 힘써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이들과 사귀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고 알게 된 이들과는 자주 연락하려고 힘쓴다.

대한성공회성당

한 달에 한 번은 광화문에 나갈 일이 있다. 정기적인 독서와 글쓰기 모임이다. 이런 모임이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된다.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될 뿐 아니라 나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시내 나온 김에 들르는 곳이 있다. 대한성공회 성당이다. 성당을 출석하지는 않지만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관심이 있고 개인적으로 성당이 마음에 쏙 든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건축물이고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다. 아울러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서 잠깐 들러 휴식을 취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도 갖는다. 성당을 방문하는 더 큰 이유는 아는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성공회 수녀원도 성당과 붙어 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덕수궁 돌담길에서 수녀님 사진을 찍어드린 일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꾸준하게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수녀님은 소녀의 순수함과 감성을 지금도 지니고 계시고 해맑은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다. 수녀님을 뵙게 되면 저절로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수녀님 덕에 당당히 수녀원에도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내 삶에서 수녀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수녀님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보고 듣게 된다.

카테리나 수녀님

오늘은 늦은 오후에 성당에 들렀다.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정원을 먼저 둘러보았다. 뜨락에는 봄꽃들이 심어져 알록달록 생기가 넘친다. 가장 두드러진 꽃이 수녀원 입구에 피었다. 명자나무 또는 산당화로 부르는 나무에 꽃이 한창이다. 이 꽃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은 신기하게도 나뭇잎 속에 숨듯이 핀다. 그래서 가지치기한 경우에는 꽃이 피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진한 초록 잎 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붉은 꽃은 장미나 동백꽃과 비슷하다. 꽃이 탐스럽게 듬뿍 피어나 아주 화려하다. 명자나무라는 이름은 꽃에 비해 너무 수더분하다. 직박구리도 날아들어 꿀을 따먹는지 분주히 부리를 움직이며 꽃송이를 쪼아댄다.

명자나무

낮은 곳에는 돌단풍이 피었다. 주교관 앞에 피어난 꽃은 순백의 정숙한 자태로 성당과 잘 어울린다. 앵두나무에도 꽃이 만발했다. 한참 꽃구경 중에 수녀님과 연락이 되었다. 밀린 빨래를 하느라 바쁘셨단다. 아직도 마무리를 못했다고 하셔서 ' 빨래 제가 널어 드릴까요?" 했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웃으신다. 일하다 나오셔서 그런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 새롭다. 늘 정갈한 수녀복을 입고 계신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 빨래 건조기를 사용하시면 편하실 텐데 없나요?" 여쭈니 "예전에는 있었던 것 같은데 전기가 많이 든다고 안 보이네." 하신다. 편리함을 추구하기보다 절약과 근검의 삶을 사시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명자꽃 사진을 보여드리니 너무 예쁘다고 환호하신다. 너무 잘 찍은 사진이라며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하셨다. 수녀님은 꽃을 아주 좋아하시고 산책도 즐기신다.

돌단풍

수녀님들이 제주도 여행을 가서 수녀원 안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수녀님은 왜 안 가셨느냐 여쭈니 병원 예약 때문에 못 가셨다고 해서 '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제주도에 함께 가셨어야죠! 했더니 "그럴 걸 그랬나?" 하시며 미소를 지으신다. 영국문화 영향으로 티타임이 생활화되어 있어 덕분에 나도 홍차를 맛본다. 늘 대접해 주시는 홍차와 비스킷은 담소를 나누는 데 잘 어울리는 간식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나눈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어도 스스럼없는 시간이 평화롭게 흘러간다. 건강하시라고 덕담을 건네며 수녀원을 나온다. 굳게 닫힌 수녀원 문이 열리며 남자가 걸어 나오니 길 건너 앉아있던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만큼 특별한 경험이고 시간이 아닐까?

수녀원

서울 도심 한복판이 낯설지 않고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정한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살아가는 데 작은 힘이 된다. 때로는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고독을 즐기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삶에 활력을 준다. 광화문에는 항상 미소로 차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정한 수녀님이 계신다. 내게 참 좋은 일이다.


#수녀님 #대한성공회성당 #만남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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