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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pr 23. 2024

봄밤의 악몽

봄밤 라이딩에서 생긴 일

친구 따라 강남을 간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  친구 따라 강남을 다녀왔다. 그게 뭐냐고? 근 3-4년 방치되었던 MTB를 타고 잠실까지 봄밤 야간 라이딩을 하게 된 것이다. 자전거그간 흘러간 세월만큼 먼지가 덕지덕지 쌓였고 타이어는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라이딩하기 전에 손을 봐야 했다.


다이소에 가서 기계용 오일을 사고, 청소용 타월도 구입했다. 아무래도 오래 방치된 기계라 기름을 쳐줘야 원활하게 굴러갈 것 같았다. 그래서 더러워진 자전거 몸체를 닦고 여기저기 오일을 마구 뿌렸다. 특히 기어나 바퀴 부분에 중점적으로 반복해서 기름칠을 했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기구를 손보는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아무리 닦아도 세월의 풍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아파트 앞에 비치된 자동 공기 주입기를 찾아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기구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은 내가 워낙 기계치인지라 어떻게 할 줄 모른다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주입구에 기구를 대고 시도를 해보는 데 도대체 바람이 들어가는지 마는지 반응이 별로 없다. 거기에 더하여 기계도 작동이 원활하지 않다. 자꾸 꺼져 버린다. 기계와 30여분을 쩔쩔매며 전투를 치렀다.  그렇게 어찌어찌 바람을 넣었다. 다행히 펑크는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래 방치된 자전거라 염려가  되었지만 주위를 돌아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그대로 타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한 자전거를 끌고 8시에 약속장소로 나갔다. 중랑교 밑에서 만나기로 해서 조금 일찍 나섰다. 그런데 약속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3명이 야간 라이딩을 하기로 하고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다.


"어디야? 나 중랑교에 나왔는데?


우리는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세요? 안 보이는데요?


무슨 소리야 나 중랑교라고


아! 건너편인가 보네요? 중랑교 건너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왜 거기 계세요?


헐! 이것은 무슨 시추에이션? "


내가 제대로 톡을 보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가던 방향에서 만나는 것으로 단정을 했다. 내가 잘못했지만 구태여 건너편에서 만나야 하는 사실에  입에서 불만이 담긴 말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머리에서는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리를 건너 친구들을 만났다. 사실 나는 길치에 어수룩한 면이 많다.


"뭐야 왜 건너편에서 만나자고 한 거야! 너무 번거롭잖아


응, 오른편에 강을 두고 달려야 시야가 좋아서..."


웃으며 대답하는 친구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구시렁거렸다. "아이고 너 잘났다!


그렇게 야간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자전거가 잘 나갔고 강바람이 차갑긴 했지만 견딜만했다. 그런데 기어 변속이 잘 안 되었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끼익 소리가 몸서리처지게 났다. 달리는 것은 별 지장이 없어서 무시하고  그냥 달렸다. 조명에 비친 한강다리와 도시 건물의 야경이 볼만했다. 그래도 은근 불안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펑크 나면 안 되는 데...."


뚝섬에서 라면을 먹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봄밤에 청춘 남녀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좀 더 가서 한적한 곳을 찾아 먹기로 했다. 친구는 관련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잠실철교를 지나  찾아간 매점은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라이딩 나와서 먹는 라면은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참 좋은 세상이다. 조리기구에 라면을 넣고 물만 부으면 뚝딱 라면이 되어 나온다.

그렇게 후루룩 순식간에 먹고 나서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온도 조금 쌀쌀하고 오랜만에 타는 라이딩이어서 피곤했다. 그래서 원래 계획보다 단축해서 마치기로 했다. 성수대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를 건넜다. 집 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자전거가 이상했다. 바퀴에서 소리가 나고 덜컹거렸다. 자전거를 멈추고 살펴보니 뒷바퀴에 바람이 빠졌다. 일단 휴대용 주입기로 공기를 넣었더니 들어가는 것 같았다.  대충 손을 보고 다시 타고 갔는데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멈추고 공기를 집어넣어 봤지만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우려하던 일이 생긴 것이다. 자전거로 가면 30분이면 갈 거리지만 걸어가기는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남기로 하고 친구가 먼저 집에 가서 차를 가져와 픽업하기로 했다. 친구의 차가 SUV여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먼저 보내고 홀로 큰 거리로 터덜터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시간이 밤 11시를 훌쩍 지났다.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옷차림도 자전거 복장이어서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염없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간다. 추워서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봄밤의 악몽이 아닐 수 없었다. 추위를 떨치려 제자리를 뛰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해보지만 별 차이가 없다.


 " 이게 웬 낭패람, 자전거를 확실히 손을 보고 나올 것을..."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낙오병처럼 축 처진 체  오매불망 친구 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렸다.


완전히 지칠 무렵 친구가 나타났다. 새벽 한 시가 꼴랑 넘은 시각이다. 왜 그렇게 늦었냐고 했더니 친구도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차를 가지고 온 것이라고 했다. 나도 힘들고 친구도 힘들고....


그렇게 봄밤의 고난이 막을 내렸다. 추위에  한참을 떨었어도 다음 날 다행히 감기에 걸리진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기막힌 사실은 브레이크가 끽끽거린 것은 무식하게 오일을 뿌려댄 결과이고 기어가 작동이 안 되는 이유는 연결선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대책 없는 내 삶이여!


#라이딩 #펑크 #봄밤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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