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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27. 2024

폭설이 내린 고궁 산책-경복궁 설경

폭설이 내린 경복궁에 폭설을 맞으며 산책을 하다

어제저녁, 늦은 밤에 비가 섞인 눈이 내렸다. 첫눈이라 반가운 마음에 베란다 창을 열고 눈을 맞았다. 바람이 세차서 눈송이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발은 쉼 없이 흩날렸다. 추위도 함께 찾아와 한기에 곧바로 창문을 닫아야 했다. 톡에 첫눈이 왔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첫눈은 의미가 남다르다. 덩달아 즐거운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밤에 내리는 눈/ 아침 눈 사진

아침에 일어나서 폭설이 내린 것을 알았다. 부지런한 친구들이 눈으로 뒤덮인 사진을 보내왔다. 보기 드문 폭설이었다. 핸드폰에서 사진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역시 온통 눈 세상이다. 올해 단지 내 수목들을 강전정을 해서 나무들의 눈꽃은 허술해서 볼품이 없었지만 단지는 흰 눈으로 덮였다.

아파트 단지

오늘은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이다. 고궁이 무료고 아내도 마침 쉬는 날이어서 경복궁으로 눈 구경을 가기로 했다. 경복궁을 돌아보고 여유가 되면 인왕산도 돌아볼 계획이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부지런하게 차비를 서둘렀다. 눈이 녹기 전에 고궁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워진 날씨로 오리털 파카를 꺼내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세상이 되었다. 아내는 눈이 쌓인 풍경에 눈이 반짝였다. 나는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아내는 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경복궁에 가서도 이런 실랑이가 계속 이어질 같다. 기쁜 마음으로 아내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경복궁역 입구 벽면 연출 영상

전철을 타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전철 파업이라 걱정을 했는데 지연되지 않고 순탄하게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경복궁으로 나가는 입구의 전광판 장식이 눈길을 끈다. 벽면을 스크린 삼아 우리나라의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데 특이하게 자개장에 장식한 문양의 그림이다.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좋다. 우리의 아름다움을 전통 공예 기술로 독특하게 선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경복궁역 출구

경복궁 입구에 들어서자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마치 딴 세상에 들어선 느낌이다. 두터운 눈옷을 입은 나무들이 우리를 반긴다. 나뭇가지가 눈 무게로 축 처졌다.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도 북적인다. 눈을 보기 힘든 시기에 이들은 정말 운이 좋다. 밖으로 나와보니 기가 막힌 장관이 눈에 들어온다. 희고 깨끗한 풍경이 시야에 가득하다. 경복궁 전체가 하얀색으로 채색한 하얀 나라가 되었다.

경복궁


바닥은 녹은 눈으로 질퍽거렸고 물웅덩이가 되었다. 신발이 방수가 되지 않아 물에 젖는다. 날도 추운데 오늘은 발이 고생할 것 같다. 발은 마른 데를 찾아 바빴지만 시선은 풍성한 눈이 빚어낸 절경에 정신이 없다. 눈꽃이 핀 나무는 눈이 부셨고 눈으로 성장한 고궁은 아름다웠다.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로 횡재한 기분이 들어 마음은 들떴다. 제대로 된 눈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첫눈이 이렇게 폭설로 내리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인 것 같다. 밤 사이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소나무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눈이 많이 쌓였다. 폭설이 내린 날 고궁을 찾아 설경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산수유

경복궁의 눈 덮인 나무들도 장관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깊은 산에 올라야 볼 수 있는 눈꽃이 피었다. 잎이 진 느티나무의 앙상한 자태가 가지마다 눈을 입어 근사한 모습이 되었다. 붉은 단풍은 흰 눈과 대조되어 더 붉은 자태를 뽐낸다. 루비 같은 산수유 열매는 흰 눈을 장식 삼아 한층 요염하다. 눈은 상대방을 돋보이게 만드는 마법이다. 평범한 풍경이라도 눈이 내리면 특별한 경치가 된다. 각박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의 여유가 없던 이들도 누구나 동심으로 돌아가 말랑말랑한 마음이 된다.

근정전


눈 내리는 근정전의 모습이 시선을 빼앗는다. 폭설이 내린 위에 함박눈이 쏟아지니 보기 힘든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중이다. 평소에는 근엄하던 모습이 오늘은 눈 속에 갇혀 움츠러든 모습이다.

눈세상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눈에 사로잡힌 눈의 포로가 된다. 눈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눈의 미로에 빠져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회루

경회루의 풍경은 백미였다. 눈 얹은 소나무와 웅장한 경회루의 자취가 호수에 비친다. 어디를 어떻게 사진에 담아도 오늘은 모두 다 작품이다.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눈이 빚어내는 풍경에 매혹이 될 수밖에 없다. 젖은 발은 얼어서 감각이 없지만 놀라운 풍경이 연이어 펼쳐지니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

향윈정

한참을 걸어서 찾아간 눈 내린 향원정도 우아하고 격조 있는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여름날의 향원정도 아름답지만 눈 내린 겨울 풍경이 훨씬 뛰어난 것 같다. 향원정이 평소보다 더 단정해 보이고 나무다리도 더 희게 보여 깨끗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잘 단장한 신부같이 예쁜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발이 얼어 감각이 없다. 아름다운 풍경은 끝이 없지만 몸은 돌아가야 한다고 발길을 재촉한다. 이어진 전각의 지붕들이 선이 곱다. 열린 문 사이로 비치는 궁궐은 숨겨놓은 아름다움을 살며시 펼친다. 나가는 걸음이지만 자꾸 풍경에 멈춰 선다. 바라볼 때마다 놓치기 싫은 정경이 자꾸 발길을 붙잡는다. 아내는 멀찍이 앞서서 가고 있다.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마음은 바쁘지만 어느새 발길은 옆길로 빠져 사진을 찍고 있다.

고궁을 나오는 길에 개인 하늘 사이로 궁궐 너머 북악산과 인왕산이 보인다. 폭설로 뒤덮인 산세가 그림 같다.

인왕산의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운무가 심해서 아스라한 자취만 보인다. 점심을 먹고 인왕산을 둘러보려 했으나 온통 운무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포기를 해야 했다.

북악산
인왕산


깜짝 폭설로 절경이 빚어진 고궁을 돌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젖은 발은 얼어서 힘들었지만 최고의 눈 풍경을 감상하고 즐겼다. 아내와 기쁨을 함께 나눠 더 행복하다. 올 겨울의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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