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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코스에서 만나는 불암산

애기봉 암벽길로 불암산 정상을 오르다

by 정석진

전 날 비 예보로 월요 정기 산행을 못 갈 줄 알았다. 일기예보가 바뀌어 불암산을 오르기로 했다. 산행 전에 등산 멤버 한 분이 별내에 살고 있어서 그곳에서 차를 들고 가기로 했다. 처음 방문으로 서재 쪽 전망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서 내심 기대가 되었다. 아파트 16층에 올라 통로에서 밖을 내다보니 불암산 정상이 바로 보였다.

실내를 둘러보니 전망이 아주 좋았다. 거실 쪽은 공원이 접해 있어서 숲 속에 있는 것 같고 서재는 듣던 대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 둘러앉아 부드럽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의 깊은 음색에 귀를 기울였다. 그 와중에 좋은 책도 만났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앵거스 플레처'라는 책으로 추천사 내용도 놀라웠고 실제 책을 훑어 보니 문장도 매혹적이었다.


'먼동이 들 무렵이었다. 손가락이 장밋빛으로 물드는 어슴푸레한 햇살 속에서 경이로운 발명품이 탄생했다. 그것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어둠 속에서 희망을 되살릴 수 있었다. 황홀감을 자아내고 믿기 어려운 나날로 이끌 수 있었다. 지루함을 몰아내고 하늘의 빗장을 벗길 수 있었다. 그 발명품은 바로 문학이었다.'


'문학은 마음을 치유하고 영혼을 고양시킨다. 문학은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 감정적 테크놀로지다. 아울러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 이 책을 통해 문학에 대한 식견을 넓힐 기회를 얻었다. 클래식에 이어 재즈도 함께 즐겼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맛있는 점심을 들고 바로 불암산으로 향했다.


잎이 다 떨어진 가을 산 풍경은 휑한 기분이 들지만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산길은 나름 운치가 있다. 마른 잎들로 가을 냄새가 풍겨나고 밟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좋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은 아쉽게도 낙엽이 이미 다 바스러져 버렸다.

오늘 코스는 애기봉 바윗길로 정상까지 새로 만들어진 루트를 따라 올랐다. 불암산은 정상부근이 죄다 바위로 구성된 돌산이다. 경사가 급한 암벽에 철제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밟고 올라설 수 있게 디딤쇠를 박아놓아 수월하게 올랐다. 경사가 심해서 상급자 코스로 정해 놓았는데 위험하지만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한동안 기온이 떨어지더니 오늘은 봄날처럼 푸근하다. 시야가 맑지 않아 미세먼지인 줄 알았는데 날이 흐린 탓이었다. 정상 부근에 오르니 하늘도 맑아졌다. 산 정상은 소나무들로 풍경이 달라진다. 암벽에 자라는 소나무들은 그 자체가 풍경화다. 이 번 코스에서는 너른 암벽 위를 걸어 보는 새로운 경험을 맛본다.

그다지 힘들지 않게 정상 부근에 올랐다. 산마루에 비치된 평상에 앉아 여유를 즐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언제나 좋다. 들렀던 애기봉과 불암산 품에 안긴 가람이 장난감 같이 작아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며 간식도 나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통통한 까마귀가 소나무 가지에 앉아있다. 무에 먹을 것이 있다고 저렇게 건강한지 자연이 지닌 힘이 놀랍다.

내려가는 길은 삼육대 방향이다. 하산 길 소나무 숲길이 싱그럽다. 능선을 따라 걷기에 편하고 빠르다. 얼마 내려온 것 같지 않은 데 불암산 정상이 저 멀리 보인다.

삼육대 산정호수인 제명호가 눈에 들어온다. 고요한 호수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파문을 일으키며 유유히 물을 가른다. 짝은 어디다 두고 홀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그다지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정갈한 문인화 한 폭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그간 여러 번 불암산을 올랐지만 같은 산이라도 새로 열린 길을 따라 만나는 풍경은 새로웠다. 산을 많이 다닌 보람인지 오늘은 힘들지 않게 산행을 즐겼다. 건강한 현재를 감사드린다.


#불암산 #애기봉코스 #산행 #제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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