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Aug 20. 2020

난 십대 때 뭘 했더라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지난 5월 하자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코로나로 달라진 일상을 다룬 영상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우스갯소리로 이제 나는 할미네, 늙었네 하지만 십대 때의 멘탈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들을 만나보고 처음으로 십대와 나의 거리감을 느꼈다. 그들이랑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네 지금 뭔 생각하고 있을까?

뭐라도 사진 올리고 싶은데 올릴 거 없어서 하자에서 회의 끝나고 퇴근하던 길에 찍은 사진 올린다.

인간 대 인간, 혹은 같은 일을 하는 작업자 대 작업자가 아니라 연장자로서 그들을 대하는 나를 발견했다. 하자센터는 이런 ^나이^로 인해 자연스레 생기는 권력관계를 지양하고자 나이와 관계없는 호칭과 상호 존댓말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내가 ‘알려줘야’ 하는 존재, 나보다 잘 ‘모르는’ 존재로 전제하고 있는 듯했다. ‘듯’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나조차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개꼰대인가 하는 생각에 이른 순간 싫거나 소름이 끼친다기보단 조금 슬펐다. 뭔가 그들이 나와는 다른 종족 같았다. 내가 이들 나이일 때 뭘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십대의 나는 술만 안 먹었지 지금보다 더 잘 놀았던 것 같다. 체벌하는 선생님한테 바락바락 대들기도 했다. 전교 회장 선거에서 아쉬운 표 차로 낙방한 것에 안타까워하거나 친구들 사이의 무리 싸움이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아, 시험 점수를 받아들고 은근히 으스대거나 혹은 충격 받아서 몰래 질질 짜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것들이 하나같이 귀찮고 부질없다고 느껴져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따지고 보면 그게 부질없다기보단 그냥 깊이 생각하는 일이 그만큼 큰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미루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보다 책도 훨씬 많이 읽었고 특히 한동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에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사 모은 책이 집에도 여러 권 있는데, 작년쯤 서점에서 이끌리듯 산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집은 아직 첫 작품도 완독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는 한 소설에 꽂히면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죄다 읽었다. 지금은 어디가서 ‘책 안 읽는 국문과에요’라고 하고 다니지만, 확실히 십대 때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다. 철저히 문학에 치우치긴 했지만. 그나마 지금까지 유지되는 취미가 있다면 드라마 보기와 음악 듣기려나. 그거라도 없었담 나는 정말 답도 없는 노잼 인간이 될 뻔했다.


지금은 나이가 드는 것이 싫지만 그때는 시간이 가는 것이 싫었다. 나에게 더딘 시간이 부모에게 빠른 것이 싫었고 누군가의 장례를 치를 때면 그 누군가의 시간은 이제 끝났다는 사실이 싫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늘 재밌게 살고 싶었다. 있어 보이고도 싶었다.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고 잘해야 했다. 공부를 한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앉아있는 것은 힘들었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또한 재미있는 일이었다.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미끄러지고 답답할 때는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미래가 막막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이렇게 보니 딱 지금만큼의 깊이를 가진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십대는. 그때는 그때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텐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참 고생 없이 운 좋게 살아왔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또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는 영상 기획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저번 프로젝트보다는 나의 의도와 기획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일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 같이 일하는 분이 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대부분 밤에 놀러 다니는 청소년이 많았는데, 그들은 별로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이런 거에 참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들은 너무 행복해하기 때문이라 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집안 사정 등 여러 상황이 있을지언정 그들은 삶의 만족도가 너무 최상이라고. 엥. 그 말을 듣고 약간 ‘띠용’ 싶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내가 학생 때였다면 친구 중에 누가 배달 알바를 한다 해서 그를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는 가여운 청소년’이라고 보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바이크를 탈 줄 아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이런 프레임이 싫어서 깨보겠다는 영상을 기획하면서 나부터가 청소년을 ^청소년^으로 가두어 생각하는 게 보여 조금 쪽팔렸다. 노는 애면 노는 애고 일하는 애면 일하는 애지 그걸 무슨 가엾고 문제 있고 혹은 사회 구조의 피해자고 이렇게 대상화시키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진짜 우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기성세대를 보고 꼰대짓하지 말라 불평하면서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고…


그냥 어제 회의를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짧게 남긴다. 이런 것도 적어야 남는 거고 여긴 내 일기장이나 마찬가지니까. 참고로 필터링 없이 쏟아내는 감정은 자필로 남기는 편이다. 언젠가 불태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그게 가능하기도 하고, 자필 일기장은 나도 두 번은 안 읽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기획을 하지. 이번 주 내내 생각해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MBTI 신봉자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