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말은 결국
사람은 주위 환경에 맞춰 살아간다. 스무 살부터 스물셋까지 해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나는 뭔가 다르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직장인은 싫어! 자유롭게 살고 싶어! 술 먹을 때마다 얼굴이 뻘겋게 된 채로 외쳤는데, 막상 그런 삶은 살지 못했다. 인턴 중에도 퇴근하면 카페 가서 자소서 쓰고, 주말에는 자격증 공부하고. 아무것도 안 한 날이 오히려 더 울적했다. ‘아-남들은 다 열심히 사는 것 같던데, 나는 정말 쓰레기야.’
남들보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싶어서,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기업에 들어가고 싶어서가 주된 이유가 됐다. 얼른 좋은 기업에 들어가 탄탄한 커리어를 쌓으며 내가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 마음은 유효하다. 취준이 길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내 세계를 좁힌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못 보게 만들고, 자꾸만 타협시킨다. 네가 이런 걸 생각할 시기가 아니라고. 글이고 사진이고 환경이고 나발이고 일단 취직부터 하라고. 그다음에 취미로 삼으라고.
분명 대입 때도 그랬다. 선생님과 엄마,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일단 학교 간판 먼저 생각해야 돼, 나중에 전과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당시 곧 죽어도 나의 전공인 언론정보학부에 오고 싶었던 나는 그때의 내 고집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학교가 달라졌더라도, 나의 전공이 아니었다면 평생의 후회로 남았을 것이다.
나의 기업은 나를 대표할 수 없다. 그저 나의 선택 중 하나일 뿐, 그것이 나를 압도해선 안 된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그 안에 있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왜 사회는 자꾸만 보이는데 집착할까. 그리고 나도 왜 그렇게 변해갈까.
어차피 평생 일하며 살아야 될 거라면, 네임밸류에 집착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따라가야겠다. 배부르고 철없는 소리라고 할 지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겠다.
흔들리고 불안정할 지라도. 원래 젊음은 그런 걸 먹으며 자라는 거니깐. 분명 미래의 나는 똥고집 있던 나에게 고마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