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발표가 두렵다
스무 살 3월,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봄이었다. 나의 전공은 광고홍보학. 즉, 발표를 좋아하고 자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좋아하는 친구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모든 게 새로워 두리번대는 말간 아이들을 두고 교수님은 '이 수업은 발표가 전부인 수업'이라고 공표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발표가 너무 부담스럽고 싫은 사람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감고 투표하기를 제안했다.
눈을 꼭 감은 척했지만 한쪽 실눈을 뜬 채 바라본 결과는 나에게 실로 큰 충격이었다.
'발표가 부담스럽다'에 손을 든 사람 0명. '발표하기를 즐긴다'에 손을 든 사람은 무려 70% 이상, '중간'은 나머지 30%였다. 아, 물론 나도 중간에 손을 들었다. 발표를 부담스러워하는, 그러면서 광고학을 선택한 이단아가 되기 싫어 허겁지겁 주류에 편승했다.
이렇게 발표를 사랑하는 인간들 사이에서 앞으로 4년을 헤쳐나가야 한다니.(진지하게 그 순간엔 자퇴를 고민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초등학교 4학년 땐 모두가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고 대답해야 했다. 교실 앞문에는 반 전체 이름 스티커가 붙어있는 큰 게시판 같은 게 있었는데, '발표 O'와 '발표 X'가 크게 적혀있었다. 선생님은 발표를 한 친구들의 스티커만 '발표 X'에서 '발표 O'로 옮겨주었고, 마지막까지 '발표 X' 칸에 있으면 그 사람이 청소 당번이 되는 식이었다. 손을 들려고 하면 하도 심장이 콩닥대서 대답을 머릿속으로 3번은 다시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면 늘 대답할 타이밍은 다른 친구에게 가있었다.
어느 날은 마지막까지 발표를 하지 못한 사람이 딱 나 하나였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발표 X'칸에 혼자 떡 붙어있는 게 못 견디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생님을 잡고 아까 분명히 발표했다고 거짓말을 쳤다. 선생님은 '아닌데~ 분명히 오늘 안 했는데~'라며 웃음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보자 당황하며 칸을 옮겨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는 이제 먼저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수업 반장을 맡으며,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의 TMI를 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끝없는 시행착오의 결과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청심환을 들이켰으며, 발표 스크립트를 달달 외워갔는가. 자기를 피력하는 게 더 중요해져 가는 세상에서, 나는 이런 발표 공포증을 없애기 위해 몇 년째 노력 중이다.
발표 직전엔 입이 바싹 마르기 때문에 물과 립밤을 꼭 챙기며,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발표를 하고 나면 기분 좋은 미련과 후련함이 남는다. '아, 안 떨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한 번 맛 본 자만이 할 수 있는 허세 가득한 미련, 그리고 막힌 속이 쑥 내려가는 후련함. 생각보다 사람들은 발표자를 비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깨달음. 이런 것들을 맛보기 시작하니 두려워도 계속 말하고 싶어 진다.
여전히 나는 발표가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떨면서, 입이 바짝 마른 채 염소 소리를 내면서 발표를 시도할 것이다. 이젠 '두렵다' 뒤에 '재밌다'라는 형용사도 따라오고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