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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협아 Dec 29. 2023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다행이야

스마트폰을 미워하는 어느 영어 선생님의 추억 팔이

제목만 보면 스마트폰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스스로를 절제하며 아주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어느 위인의 글이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실상은 이놈의 작은 괴물에 중독되어 하루에 몇 시간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 그런 평번한 치의 한숨 정도 되시겠다.


본론부터 들어가자면, 나는 2008년 9월에서 2009년 8월까지 약 11개월의 시간 동안 영국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대학교 졸업 전 1년을 휴학하고, 다녀온 일정이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때는 아직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어오기 전, 혹은 직전인 때였다. 스위스 친구 한 명이 기억난다. 같은 어학원에서 꽤 친해진 친구였고, 나중에는 계속 인연이 닿아 그의 (무려 한국인) 와이프와 함께 어학원 졸업(?) 15년 만에 이곳 한국에서 밥도 같이 먹게 된다. 


이 친구가 왜 기억이 나느냐면, 내 주변에서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아이폰]이라는 물건을 사용하던 녀석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정말 갓 출시되었지만, 세상은 아직 스마트폰의 세상이 아니었다. 전세계에는 삼성, 엘지, 노키아, 모토로라 등의 다양한 핸드폰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고, (특히 나에게) 아이폰은 ipod이라는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전화기 기능이 추가된 무거운 기기에 불과했다. 





본론인 척 하던 서론이 길었다. 

현재는 한국에서 돌아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 때 어학 연수 시절을 아주 즐겁게 보냈고, 그곳에서 만났던 영국인 선생님들을 동경했더랬다. 그 때쯤 나도 언젠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이 일을 즐기며 수업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데 그 때 그 시절을 자주 생각난다. 내가 진행하는 영어 수업과 내가 기억하던 영어 수업에 차이가 꽤 많이 난다. (사실은 정말 많이 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이 영어 학습을 하는 데에 어떻게 방해 요소가 되는지를 강조하려는 것도,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옛날 폰으로 돌아가야 한다 뭐 이런 걸 외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외국어를 배울 때에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과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나는 왜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지 한 번쯤 끄적여 보고 싶었다.



넘치고 넘치는 컨텐츠, 손가락 몇 번만 두드리면 나오는 온갖 영어 드라마, 한국어 음성만 입력해도 문장이 해석되는 이 엄청난 시대에 살면서 그래도 그 때가 더 그리운 이유!!



1. 수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 그 때는 아직 지금처럼 핸드폰이 내 손 안에 24시간 붙어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절이 아니었다. 특히나 수업을 듣는 학생이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거나 (메세지 확인이든, 영어 단어 검색이든) 수업 중에 폰을 두드리는 행위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때였다. (물론 몰래 문자는 많이 보냈다.)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비싼 돈 내고, 만리타역까지 나가서 듣는 수업에, 선생님의 한 마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좋았다. 지금은 나도 그렇게 못한다. 60분 수업을 들어도 머릿 속에는 온갖 SNS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올라온 건 없나, 내가 그걸 놓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수업을 들을 일이 생기면 여전히 폰은 무음으로 바꾼 채 가방 안에 넣어둔다.)


멀리 외국까지 나가서 수업을 들으며 온라인 세계에 정신이 팔려 정작 내 눈 앞에 펼쳐진 귀중한 수업 내용을 놓치지 않아도 되었던 그 때가 참 그립다. 





2. 진짜 사전을 사용해 단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전은 [사전의 기능만 가지고 있는 물건]이 되겠다. 종이 사전과 (추억 속의) 전자 사전 정도가 여기에 속하겠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들어가있는, 혹은 포털 사이트의 사전은 제외한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어떤 단어의 뜻을 찾기 위해 예전 방식의 사전을 뒤적거리던 그 때가 더 좋았다. 내가 공부하던 어학원에는 교실마다 두꺼운 사전 (이때는 사실 종이 사전이라는 말도 많이 쓰지 않았다. 사전이라고 하면 종이로 된 게 가장 흔했으니깐)이 몇 권씩 있었고, 학생들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종이책 사전을 열어 단어를 찾았다. 


가끔 한국이나 일본에서 온 학생들이 꺼내는 전자 사전에 유럽의 학생들이 신기해하는 광경도 펼쳐졌다.


시간이 들더라도 사전 속에서 단어의 뜻을 찾으면서 단어의 어원, 종류, 스펠링, 다양한 뜻에 예문까지 살펴볼 수 있는 그 때가 참 그립다.




3. 온라인과 현실 세계(?)가 완전히 겹쳐지지 않았던 때였다 : 지금은 SNS 속의 지인, 실제로 만나는 친구들 사이의 경계가 정확하지 않다. 그 둘을 구분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내가 영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던 때에는 조금씩 희미해져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그 구분이 존재하던 때였다. 


온라인 (그 때는 아직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페이스북도 외국 생활을 해 본 친구들 사이에서나 많이 사용되었다.) 에 사진을 올리는 것은 현실 세계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다 보낸 후에 집에 가서 부차적으로 하는 추가적인 활동이자 유흥(?) 이었다. 그날 함께 공원에 가거나 펍에 갔던 친구들의 사진을 올리고, 그들을 사진에 태그하는 것으로 하루의 즐거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말은 즉슨, 낮에 외국 친구들과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 동시에 온라인이나 나의 SNS를 동시에 확인하는 일은 아직 일상이 되지 않았었다. 그건 꽤나 무례한 일에 속했다. 한 마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특히나 영어를 사용하고 배우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어학 연수생의 입장에서 그것만큼 소중한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 때는 이 소중함을 그렇게까지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스마트폰에 휘어잡혀 소중한 몇 시간을 흘려 보내는 대신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외국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는 유흥일지라도 [실제의 내]가 실제로 영어를 사용해 가면 해낸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반복되고 쌓여서 지금의 내 영어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사람을 좀더 적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 사람과 소통을 하려면 사람과 직접 만나야 하는 시대였다. 물론 온라인 세상에서 반복적으로 영상을 보고 들으며 영어 실력을 늘리는 방법도 있지만, 실전을 통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기에 나는 사람을 만나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던 그 때가 참 그립다. 


어학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혹은 친했던 선생님들과 삼삼오오 모여 공원, 시내 구경, 박물관 구경도 할 수 있었고, 카페나 펍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았다. 스마트폰에 중독되어있는 지금의 내가 그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분명 나는 터덜터덜 걸어 집에 가서 침대에 쏙 들어가는 것을 택했으리라. 



5. 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 그것이 꿈같은 이야기일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외국어를 공부해야 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말이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어느 나라에 있더라도 온갖 한국 드라마를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 이만큼의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NO일 것 같다. 


영국에 가자마자 중고로 티비 부터 장만했고, 온갖 DVD를 대여해서 영국 드라마와 뉴스 등을 봤다. 내 일상이자 습관으로 만들었다. 그 습관은 지금으로도 이어져서 라디오와 영상 등을 계속 본다. 한국 드라마가 재미없다는 불만족에서 나온 행동도 아니고, 외국 컨텐츠가 더 재미있다는 사대 주의 사상도 아니다. 외국어 실력을 하루라도 빨리 발전시키고 싶었고, 어떻게 해야 영어를 내 일상 속에 구겨 넣을까 고민하던 어느 유학생의 고민의 결과 정도였다고 해 두자. 



그렇다면 영어 공부를 위해 당장 이놈의 스마트폰을 서랍 속에 쳐박아 두어야 하나? 


그건 아니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가 있어야만 더 훌륭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사실은 이런 엄청난 발명품들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도 외국어를 배우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고,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다는 걸 한 번 쯤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영어 단어를 찾겠다고 사전앱을 켜는 척 하다가 유투브에서 온갖 동영상을 보며 몇 시간을 날려버린 어느 불쌍한 영어 선생님의 넋두리라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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