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멀어지는 중

by Erasmus Kim


“진짜 친밀감은, 내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니, 혼자 있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그 시간은 도망이 아니라, 다시 관계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일 수 있다.”

요즘 내 마음속에 계속 맴도는 고민 하나가 있다. 동창회나 동문모임 같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숨 가쁘게 살아온 시간, 거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는 줄어들었고, 굳이 나가야 할 모임이라는 것도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그나마 남은 건 대학 동창, 학군단 동기, 회사 입사동기 정도인데, 이들도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다.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잠잠했던 카톡방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기 시작하고 모임의 날짜와 장소를 잡는다. 가능한 날짜가 투표에 부쳐진다. 평일 중 하루를 일찍 퇴근해서 수원에서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지레 몸이 피곤해온다. 그나마 모임의 장소가 강북이나 강서 쪽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멀어서 못 나간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요리조리 이유를 만들어 몇 번을 빠졌고, 그쯤 되면 자연스레 나 없이 모임이 굴러갈 법도 한데, 이놈의 우정은 또 나를 향해 걸음을 맞춘다. 가까운 곳에서 모임을 잡아주고, 오랜만이니 꼭 얼굴 보자고 정겹게 말을 건넨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지만, 이상하게도 나가고 싶지 않다.

그 이유를 곱씹으며 한동안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 끝에서 나는 결국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시간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책을 읽는 시간, 내면을 정리하고 몰랐던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그 고요한 시간이, 웃고 떠드는 모임보다 더 나를 숨 쉬게 한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대학교 때, 혹은 사회생활 초반에는 누구보다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고, 빠짐없이 모임에 나갔다.

그땐 그것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함께 있음’이 아니라, 내 어려움을 말하고 싶어 나간 자리에 가까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듯했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 결국 나만 말하고, 나만 풀어놓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씩 다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그날을 기다린다. 모임이 싫은 게 아니라,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나에게 묻고, 나에게 조금 더 몰입하고 나면, 언젠가는 친구들의 말을 진심으로 귀담아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살짝 미안한 마음을 마음 한편에 조용히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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