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시작한 독서가 어느새 내 삶의 한 축이 되었다. 마흔 무렵부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5년이 흐르자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300권이 넘는 요약이 쌓였다. 자기계발서와 인문 분야의 글에서는 기억해 둘 문장을 따로 옮겨 적거나 핵심 내용을 간추렸고, 소설이나 역사책처럼 흐름이 중요한 책들은 그저 온전히 몰입해 읽기만 했다. 지금까지 손에 든 책을 헤아려보면 400권에서 500권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읽는 시간이 쌓이면서 내 삶도 조용히 달라졌다. 사람들과의 모임은 자연스레 줄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보다 활자를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큰 기쁨이 되었다. 일상도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에는 일밖에 몰랐던 내가,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며 몇 페이지라도 더 읽으려 하고, 퇴근 후에는 업무 연락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되었다. 부서 이동 기회가 생겼을 때도 망설임 없이 흘려보냈다. 지금처럼 조용히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은 내게 삶의 여백을 만들어주었고, 언젠가 퇴직 후 어떤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상상하게 했다. 북카페와 도서관은 빠짐없이 즐겨찾기 해두었고, 조용한 미술관이나 작은 카페를 찾아가 활자와의 궁합을 맞춰보기도 했다. 도서관 사서를 준비해 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동기를 건네는 강연자나 코치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머릿속을 스쳐갔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렸다.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읽은 것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지만, 정리되지 못한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수많은 문장과 통찰들이 체한 듯이 응어리져 있었다. 왜 쓰지 못했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저 읽는 데서 멈추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책을 읽다 글쓰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읽는 데서 멈추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단순히 능력이나 시간이 아니라, 태도와 욕구, 감당하려는 마음의 방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쓰는 사람은 읽은 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엮으며 스스로를 정리해 간다. 읽은 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글을 부른다. 반면, 읽기만 하는 사람은 감동을 수용하는 데서 충분한 만족을 얻고, 스스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굳이 시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쓰는 일은 두려움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잘 쓸 수 있을까, 혹여 비웃음을 사진 않을까. 그런 불안을 견디는 마음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만든 세계를 따라가는 독서와 달리, 글쓰기는 나만의 세계를 조심스레 그려보는 일이다.
나는 이제 그 문턱을 넘으려 애쓰고 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껴온 것 같다. 내 안에 쌓인 것들을, 조금은 엉성하더라도 꺼내어 문장으로 엮어보고 싶다. 조용히, 차분히, 활자를 좋아했던 그 마음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