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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Jun 21. 2021

내 나이 스물여섯, 엄마는 스물여섯에 나를 낳았다.

스물여섯 생일이 되기 전 날, 언니와 예전 사진들을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킥킥 웃고있었다.

나와 언니의 최애짤, 내가 엄마 어깨에 매달려있고, 언니는 카메라를 바라보고있는 사진.


여느때와같이 웃기다며 카톡을 주고받다가 문득 오늘따라 엄마 표정에 더 시선이 갔다.

사진을 찍고있음에도 무뚝뚝한표정, 지쳐보이는 얼굴

지금까지 사진을 수십번, 수백번 봐도 알아채지 못했던게 오늘따라 마음에 콕 박혔다.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였을까? 엄마는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기억력이 나쁜 내가 유일하게 외우는 책 구절이다. 내가 23살이던 당시 유행하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 나오는 문장이다. 앞뒤 문맥도, 책의 다른 어떤부분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부분만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내 마음속에 선명히 새겨져있다. 그것은 내가 하필 이 책을 23살에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에 적힌 날짜, 97.4.7

나는 이 때 2살이었고, 언니는 5살이었고, 엄마는 27살이었다.

엄마는 23살에 엄마가 되었다.


내가 대학교에서 배우고싶은 공부를 배우고, 인턴이니 스타트업이니 한창 꿈을 꾸고 있을 때 엄마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한창 좋은나이에, 한창 꿈 꿀 나이에.


어릴 적 우리집은 풍족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한가할 때 다함께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는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되기까지 엄마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언니와 나를 위해 무수히 많은 불안을, 서러움을, 때로는 답답함을 감내했을 것이다.


나는 늘 집에서 무뚝뚝한 딸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밖에서는 그렇게 사람좋은 척, 활발한 척, 긍정적인 척을 하고 다니면서 집에만 오면 늘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서운해하는 엄마를 알면서도 혼자 알아서 자란 척, 지혼자만 잘난 이기적인 딸이었다. 나이가 들고, 그나마 철이 좀 든 후에야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살가워지려고 하지만, 언니에 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우리 언니는 성격이 좀 지랄맞다. 조금만 화나면 빽 소리를 지르고 내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거에도 길길이 날뛴다. 반면 작은 거에도 웃음이 넘치고 엄마 앞에서 조잘조잘 대화거리를 꺼내놓는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어디 아픈데가 있어도, 다친데가 있어도 나한테는 꽁꽁 숨기고 언니한테만 드러낸다. (그것도 아주 조금)


엄마랑 나는 무뚝뚝하고, 무신경한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언니는 예민하고, 섬세(지랄맞은)한 사람이다. 엄마랑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언니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가끔은 왜 저런걸로 저렇게 화를낼까? 의아하기도 하고 귀찮..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길 때 털어놓고 같이 욕해줄 상대, 위로를 받을 상대로는 언니같은 사람이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길다면 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언니덕에 요즘은 마음 한 구석이 꽤 든든하다.


스물 세 살에 엄마가 된, 쉰 한 살의 엄마에게 스물 여섯이 된 막내딸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스트레칭은 하는지, 단백질은 섭취하는지. 요가, 수영, 등산 등등 운동을 해 볼 생각은 없는지. 틈틈이 엄마 귀찮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내 최대의 애정표현이다. 앞으로도 내가 다정하고 애교넘치는 막내딸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엄마가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꿈을 꾸고, 도전을 하고 더 재밌는 삶을 만들 수 있도록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을 지지해줄 것이다.


생일을 맞아, 나를 낳아 준 엄마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늘어놓는  일종의 각서이자 다짐의 글!

26살 아직 스스로도 다 책임지지 못하는 막내딸이.


"엄마 나는 애기는 안낳을거야! 무섭고 아플 것 같아."

"그래~ 너 하고싶은대로 해라. 근데 그러면 인생에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못느껴보는거야."

무뚝뚝한 엄마의 최대의 애정표현이었을 그 날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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