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기자였다. 증권/금융/경제 전문 기자. 좀 오래 했다. 22년.
지금 나는 금융회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부서에서 UX 라이터를 하고 있다.
22년 묵은 금융기자는 어쩌다 UX Writer라는 낯선 커리어로 넘어왔는가?
몇 년 전에 문득 후반생을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매체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글쟁이업에 뛰어들었다. 투자서 번역을 하고 싶어서 번역아카데미를 다니며 번역공부를 했다. 투자서 번역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에는 금융 전문 글쟁이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문인들은 숫자나 돈벌이와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처럼 재테크니, 투자니, 주식이니 하는 소재를 좋아하는 글쟁이는 좀 특이한 편이었다.
2019년 어느날, 예전 직장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모 증권사의 콘텐츠를 윤문하는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늘상 하던 일과 비슷할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 증권사의 PC용/모바일 홈페이지, 브로셔, 임원 연설문, 지점이 고객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 고객센터 전화 상담원의 대화 스크립트 등 생각보다 다양한 유형의 글을 다듬었다.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이 일은 2021년 8월까지 하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 자산운용사의 의뢰로 MZ를 타깃으로 하는 쉬운 연금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뉴닉이나 어피티의 사촌 같은 느낌으로 만드는 요즘 스타일의 뉴스레터였다. 이걸 만들다 보니 이 일은 기자가 아니라 콘텐츠 에디터라고 불러야 하는 일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다.
창간 후 10호까지 만들어 놓고 회사를 그만둔 나는 조용히 두꺼운 투자서를 번역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그렇게 살던 중... 2022년 6월 지금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MZ 대상으로 뭔가 투자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는데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9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서비스를 함께 만들면서 어울리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도입하고 편집하고 필요하면 내가 직접 쓰기도 하며 콘텐츠 에디터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비스 구석구석의 여러 텍스트에 나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사실 2019년부터 2021년 8월까지 했던 그 일이 바로 UX 라이팅이었다는 걸. 그 당시에는 그게 UX 라이팅인지도 몰랐다. 그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고객언어 혁신 프로젝트였고, 나에게 일을 맡긴 매체에서는 '윤문'이라고 했으므로.
아무튼 요즘 사람들은 이 일을 'UX 라이팅'이라는 좀 있어보이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UX 라이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