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다 문득, 그릇에 대해 생각한다.
흙이었던 이것이 물에 반죽되고 형태를 갖추고 유약을 입고 불에 구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변화와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을까.
한때는 형체도 없던 흙가루가 그 인고의 시간을 견뎌 마침내
단단하고 쓸모 있는 그릇이 되어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시련도 나를 더욱 단단하고 쓸모 있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러다 또다시 문득, 그릇이 되지 못한, 명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형태가 어긋나 버린 것들과
높은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것들과
그 모든 걸 견뎌내고도 깨져버려야만 하는 불완전한 것들은 형체도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버려진다.
가마 뒤편에서 불완전한 것들을 망치로 내려치는 조물주의 어두운 표정은 그것들이 불쌍해서일까 그것들에 투자한 자신의 시간과 정성이 아까워서일까.
구워지기 전이라면 흙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높은 온도에 노출된 흙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흙도 그릇도 아닌 분해되지 않는 무언가로 남는다. 차라리 한춤 흙이었다면 꽃이라도 피워냈을 것을.
나는 살면서, 피해 갈 수 없었던 불행을 맞이했고 이후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불행을 처음 겪었던 날에도, 그것이 무슨 일인지도 몰랐지만, 이제 절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몸은 뻣뻣하게 굳은 채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어차피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은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는 격언은 잘 알지만 그 앞과 뒤에 붙은 말은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지 못한 모든 시련은, 그리고 살아있는 한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 시련이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면, 시련은 그저 시련일 뿐
그 어떤 동기도,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
나는 죽고 말 것이므로, 그리고 어쩌면 당신들도.
사실 딱히 쓸모 있고 싶었던 것도 딱딱해지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누군가는 그릇이 되지도 흙으로 남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커다란 가마에 기어코 들어가고야 마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