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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아 Aug 15. 2021

고래 무덤

그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는 고래와 인어의 전설이었다.

사막의 낮은 언제나 뜨겁고 사막의 밤은 언제나 추웠다. 모래 위에 버려진 고철로 엉성하게 만든 나의 집은  

더위도, 추위도 막아내질 못해서 나는 매일 잠들고 매일 눈 뜨는 것이 괴로웠다. 내가 굶주린 짐승처럼 누군가를 찾아 사막을 헤매고 다녔던 건, 순전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부터 달이 온전히 떠오르기 전, 조심스럽게 집 밖으로 나가면 나와 같은 표정을 한, 삶에 찌든 사람들이 좀비처럼 사막을 어슬렁거린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껴서 괴로움을 잊게 해 줄 운명을 찾는다. 그러면 반드시 나만큼이나 가난한 영혼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고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손을 잡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밤새 서로의 상처를 내 보이며 서로가 얼마나 아프고 비참한지를 쏟아내다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잠에 든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나는 또 혼자다. 너무 많이 드러내 징그러운 상처까지 내보인 게 아닌가 자책하지만, 다시 시간이 되면 나는 또, 우리는 또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고래무덤 앞에서였다.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어떤고래꽃이 무덤 주변에 가득 피었던 날이었다. 어떤고래꽃은 무척이나 예뻐서 나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주변이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갑자기 추위가 엄습했다. 팔과 다리에 소름이 돋고 이가 덜덜 떨리며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나에게 옷을 벗어주었고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는 내가 만나본 적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내 집과는 다른, 튼튼하고 견고한 집과 상처라고는 하나 없는 몸, 어느 한 구석 모난 곳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너를 왜 만나냐고 물었다. 너희는 너무 달라서 얼마 가지 않아 끝날 거라고도 덧붙였다. 나는 애써 쿨한 척했지만 그가 나를 떠날까 봐 종종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제법 오래 만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헤어짐을 통보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사람들의 말처럼 그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처음엔 아무 상관없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므로. 그러나 그는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었고 나의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나와 같은 눈높이로 끌어내리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생채기 하나 없는 그의 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내가 느낀 더위와 추위를 직접 느끼게 하고 싶었다.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억누를 수가 없었고 결국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뾰족하고 날카로운 말들을 꺼내 그를 찌르고 베었다. 그의 몸엔 피가 흘렀다. 나는 그를 한낮의 햇빛 속으로 끌고 들어가 화상을 입히고 한밤의 추위로 내몰아 덜덜 떨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 특유의 인내와 포용력으로 나를 감싸 안았지만 점점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그는 나와 비슷해져 갔다.


그가 고래무덤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 준건 우리가 더 이상 운명이 아니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그만하자는 말이 거의 목구멍까지 가득 차서 튀어나오기 일보직전이던 때였다. 고래무덤 앞에 서서 나에게 고래무덤의 전설에 대해 아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무슨 얼어 죽을 전설이냐고, 너는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몽상가라고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나의 멸시 가득한 대답에도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 고래들은 육지에 살았어. 그러다 어느 날, 고래 한 마리가 바닷가에서 우연히 아름다운인어를 보게 된 거야. 고래는 처음 보는 낯선 존재에 이끌려 바다에 발을 닮그고 아름다운인어에게 다가갔어. 아름다운인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래를 보고는 바닷속으로 몸을 숨겼다가 다시 빼꼼 얼굴을 내밀어 고래를 바라보았어. 아름다운인어 역시 낯선 존재인 고래에게 이끌린 거야. 고래는 자신의 발이 닳을 수 있는 곳까지, 아름다운인어는 스스로 헤엄칠 수 있는 곳까지 다가가 서로에게 인사를 했어. 처음엔 대화가 끊겨 정적이 흐르고, 그래서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 만난 사인인 것처럼 가까워졌어.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팔려서 창백한 달이 바다 위에 떠오른 후에야 헤어져 각자의 세상으로 돌아갔지. 둘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매일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 그러다가 사랑이라는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었지. 어쩌면 사랑이라고 착각한 걸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그래서 고래와 아름다운인어는 시간이 흐를수록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어느 날 아름다운인어는 말했어. 

"바닷속은 너무 춥고 숨쉬기가 힘들어요. 나도 다리가 있었으면, 두 발로 저 초원을 달릴 수 있었으면,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렇게 초원에서 당신과 평생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고래는 아름다운인어를 육지로 데리고 가고 싶었어. 그래서 바닷가 근처 바위틈에 사는 마법사에게 찾아가 말했어.

"마법사님, 아름다운인어를 고래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하고. 드릴 수 있는 것은 뭐든 드리겠어요"

마법사는 고래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어.

"너희는 사는 세상은 다르지만 서로의 세상 경계로 나가면 얼마든지 만 날 수 있어.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는 거니"

"바닷속은 너무 춥고 어둡고 힘듭니다. 그런 곳에 아름다운인어를 둘 수 없어요"

"바닷속을 가보지 않은 네가 바닷속이 추운지 어두운지 힘든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가보지 안 아도 알 수 있어요."

"왜? 아름다운인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너는 어째서 아름다운인어와 네가 같은 세상을 볼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마법사는 고래를 말리려고 했어. 마법의 대가는 크고 무서워서 대부분 결말이 안 좋으니까. 마법사는 안 좋은 기운을 먹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가끔 순수한 영혼을 지켜주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들기도 했거든. 그러나 고래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결국 마법사는 다음날 고래와 함께 아름다운인어를 만났어. 고래는 아름다운인어에게 육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지. 아름다운인어는 행복해했어. 그러나 아주 잠시였을 뿐,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지. 그리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어.

"나는 가지 않을래요"

아름다운인어의 말에 고래는 당황해하며 물었어.

"바닷속은 춥고 힘들다고 육지에 가고 싶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너무 무서운걸요. 나는 육지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요. 평생 물속에서 살아온 내가 고래가 된다 한들 어떻게 육지에서 살 수 있겠어요. 나는 당신만 있다면 바닷속 생활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고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바닷속이 두려웠지만, 아름다운인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어. 고래는 마법사에게 말했어.

"제가 인어가 되겠어요. 이 두 다리 대신 반짝이는 비늘로 덮인 꼬리를, 폐 대신 아가미를 주세요. 대가로는..."

"대가는 네 다리와 폐로 받을게. 이번이 처음이니까"

마법사는 고래를 향해 마법의 주문을 외웠어. 고래는 새하얀 빛에 휩싸여 정신을 잃고 말았지. 고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바닷속이었어. 고래는 숨쉬기가 버겁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불안했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인어를 보자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어. 고래는 이제 아름다운인어와 평생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한동안은 그 생각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냈고.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는 것이잖아. 우리 마음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아름다운인어는 고래에게 수영하는 법을, 숨 쉬는 법을 알려주며 바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랑을 나눴어. 둘은 제법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갔어.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다운인어는 그 안정감이 지겨운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평범한 인어가 되어버린 고래가 더 이상 아름다운인어 눈에는 매력적이지 않게 보였나 봐. 아름다운인어는 다시 외로움에 휩싸였고 함께 있어줄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어. 그 변화를 눈치챈 고래는 절망했어. 변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랑에 절망했고 자신이 너무도 쉽게 버리고 온 것들이 생각나 괴로웠어.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광활한 대지. 초원을 달릴 때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다신 못 볼 것들이 자꾸 떠올랐지. 

고래의 마음엔 인어의 마음과 닮은 어둠이 생기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어둠이 고래의 마음 가득 찼을 때, 마법사가 나타났어.

"어때, 지금 행복하니?"

마법사의 물음에 고래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지. 마법사는 고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에 작은 단도를 쥐어주었어. 

"얼마 전에 어떤고래가 찾아와 너의 행방을 물었어. 나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주었단다. 어떤고래는 나에게 네가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단다. 이건 어떤고래의 다리뼈로 만든 단도야. 그는 너를 위해 이 다리를 기꺼이 내놓았어. 너를 사랑하는 이의 강한 염원이 담겨있는 신체여야만 마법을 끊어놓을 수 있거든. 다시 육지로 올라오고 싶다면 이걸로 인어를 깊게 찌르렴."

"...인어와 육지로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가엾은 아이야. 아직도 그들에 대해 모르겠니? 그들은 절대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아."

"육지로 올라가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죠?"

"내가 너를 다시 고래로 만들어 주마, 대신 이번의 대가는 좀 크단다. 너에게서 소중한 것을 받아가겠다."

"가져가세요. 죽은 것도 상관없다면. 전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걸요"


고래는 생각에 잠겼어.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하고 단도를 들고 서성였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을 인어를 죽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고래는 단도를 다시 내려놓으려고 했지. 그런데 그 순간, 아름다운인어와 다른 인어가 함께 있는 것을 본 거야. 고래는 엄청난 분노와 질투에 휩싸였고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벌어지잖아. 고래가 단도를 내려놓은 후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텐데...

맞아. 고래는 아름다운 인어를 찔렀어. 무참하게 여러 번. 아름다운인어는 비명소리도 내지 못했어. 쏟아지는 아름다운인어의 피를 보면서 고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서로를 만나기 전으로. 행복하기만 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고래도 잘 알고 있었어. 아름다운인어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갑자기 바다가 요동치더니 바닷속 땅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고래와 함께 수면 위로 솟아올랐어. 고래가 있던 곳이 육지가 되어버린 거야. 고래는 처음으로 햇살이 뜨겁게 느껴졌어. 피부가 타들어갈 것 같은 고통도 느꼈어. 물속에 오래 있었던 탓이었을 거야. 고래 주변에 있던 물고기들은 모래 위에서 팔딱거리며 괴로워하고 있었어.

그때 마법사가 나타났어. 마법사는 작은 유리병을 흔들며 고래에게 보여주었어. 그 작은 유리병 속엔 고래가 그리워했던 가족들과 초원, 바람이 들어있었어. 고래는 마법사를 붙잡고 매달렸어.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애원했지. 하지만 마법사는 고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어.

"고작 너의 목숨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겠니."

마법사는 이 말을 하고는 사라져 버렸어.


고래는 울었어. 육지로 올라왔어도, 다시 고래가 되었어도 행복하지 않았어. 소중한 건 다 사라진 후였으니까. 고래는 후회했어. 왜 소중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왜 인어만 떠올랐을까. 고래는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누워있었어. 움직일 이유가 없었어. 고래에겐 더 이상 돌아갈 곳도, 만날 누군가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어. 고래는 점점 형상을 잃어갔지. 결국 하얀 뼈만 앙상하게 남았어. 그리고 또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고래에게 잊힌 어떤고래가 지친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와서 고래의 뼈 위에 모래를 덮어 무덤을 만들어 주고는 그 위에 쓰러져 잠들었대. 그리고 그 자리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고 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물었다.


"그게 어떤 고래 꽃이다 이거지?"

"응"

"그러면 이곳이 사막이 된 게 고작 고래 한 마리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다.

"고작 너 하나 때문에 내 세상도 무너졌잖아."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못 했던 것 같다.

"나 너무 그리워. 나도 모르는, 내가 버리고 온 고래 한 마리가, 어떤 때는 너무 그리워"


그랬다. 그의 세상은 강한만큼 쉽게 깨져버렸다. 

나로 인해 부서진 세상의 잔해에 깔려 너는 죽어가고 있었고, 나는 뒷걸음질 치며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다시 한낮의 더위와 한밤의 추위를 홀로 견뎌야 했다. 그러나 나는 견디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태생이 외롭고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이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괴로움을 잊게 해 줄 운명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견디게 해 줄 사람을 만나 밤을 보내고 아침에 눈을 뜨면 불현듯이 네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에겐 네가 어떤고래 한 마리가 아니었을까. 이제와 서야 아무 소용없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언젠가 네가 나를 찾아올 거라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지친 몸을 이끌고 나를 찾아와 안아줄 거라고 오늘도 공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며 너를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든다. 


사막의 밤, 어둠을 틈타 몰래 옷 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면 네가 해준 이야기가 기다렸다는 듯 내 머릿속을 휘져어댄다. 나는 문득, 네가 없는 현실이 비참해서 이건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그러면 막막한 어둠 속에서 네가 나타나 내 옆에 조용히 눞는다. 나는 너의 품에 안겨 내 차가운 발을 너의 따뜻한 발등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얼었던 마음까지 모두 녹아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진다. 슬프지만 너무나 가슴 벅찬,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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